60세에 수필가 등단한 늦깎이
‘연금수필문학상’ 은상 수상

장애가진 외손자의 이야기를
덤덤하고 감동적으로 풀어내

60세에 수필가로 등단한 노청한 재경 향우.

노청한 재경 함양군 향우가 공무원연금공단에서 공모하는 연금수필문학상에서 은상을 수상했다. 올해로 16번째 맞이하는 이 문학상은 퇴직 공무원과 그 가족을 대상으로 한다. 

작품모집에는 총 868편이 접수, 지난해 471편보다 무려 182% 증가해 역대 최다 기록을 세웠다. 입상작은 총 8편이 뽑혔다. 금상 1편에 공단 이사장상과 상금 100만원, 은상 3편에 상금 각 70만원, 동상 4편에 상금 각 50만원이 수여됐다. 입상작은 월간 <공무원연금> 10월호에 실렸다. 

노 향우가 쓴 수필은 ‘만나고, 사랑하고, 알게 되고’가 글 제목으로 올해 여덟 살인 외손자가 주인공이다. 한 아이에게 온 마을이 필요하듯이 아직까지 말문을 열지 않고, 말(馬)처럼 날뛰는 자폐1급 외손자를 돌보면서 가족끼리 티격태격하면서도 따스한 결속이 아픈 결손을 이길 수 있다는 깨우침을 배우는 내용이다. 

노 향우는 지난 2010년 12월 정년퇴직 하자마자 매주 한나절, 서울서부지방법원 민사조정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간간이 월간지에 투고하면서 만사를 따뜻하게 보려고 애쓰고 있다. 공무원으로 퇴직한 지인, 선배들의 입소문과 귀띔으로 무려 100대 1의 경쟁을 뚫고 수필가로 등단한 노청한 향우를 만났다.

- 이번 수필 입상작은.

‘만나고, 사랑하고, 알게 되고’가 글 제목으로. 올해 여덟 살인 외손자가 주인공입니다. 한 아이에게 온 마을이 필요하듯이 아직까지 말문을 열지 않고, 말(馬)처럼 날뛰는 자폐1급 외손자를 돌보면서 가족끼리 티격태격하면서도 따스한 결속이 아픈 결손을 이길 수 있다는 깨우침을 배우는 내용입니다. 심사평에서 “장애를 안고 태어난 손자를 돌보는 할아버지의 사랑과 노고가 가슴 아프게 읽히는 글이다. 그러면서도 봉사하는 삶의 자세가 귀감이 된다”고 밝혔다.

- 밖으로 드러내기가 힘들었을 텐데 응모하게 된 동기는.

주어진 수필 주제가 올해에는 마침 ‘어른의 시간’이었습니다. 퇴직 후 경험한 희로애락을 통해 ‘진짜 어른’으로 성숙해 가는 과정을 내용의 진솔성, 글의 구성과 문체, 글감을 통한 깨달음 등을 심사한다고요. 바로 나를 위한 ‘맞춤형 주제구나’ 하면서도 뜸 들이는데 한 달이 훌쩍 지나고, 글 쓰는 내내 우울하고, 막판에는 글을 쓰기가 싫었습니다.

- 소설을 쓰는 것도 아닌데요.

‘내 손자는 장애가 있습니다, 우린 이렇게 힘들게 키우고 있어요’라는 집안 우환과 슬픈 얘기다보니 짐작되는 가족들의 시선이, 아이 부모의 반응이 부담스럽더군요. 언제까지 장애를 숨기고 부끄러워 할 것이냐, 이번 글을 통해 고생하는 가족들이 더 결속하고, 더 따뜻하게 손자를 돌볼 수 있는 디딤돌이 될 수 있다며 가족들 몰래 접수 마지막 날 제출하였습니다.

- 이제 향우님 신상 얘기 좀 하죠.

황석영의 대하소설 <장길산>에 자주 등장하는 그 유명한 황해도 풍천(川)이 본관인 풍천 노(盧)가 집안입니다.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 개평마을에서 1950년에 태어난(68세) 범띠고요, 7남매 중 둘째입니다. 지곡초(40회). 함양중(20회). 함양종합고(17회, 함양제일고). 방송통신대 행정학과와 국비로 한양대행정대학원을 졸업했습니다.

- 공무원 이력은.

1974년 4월에 군에서 제대하고 두 달 후인 6월에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여 이듬해 4월, 김해소년원에 첫 출근했습니다. 1년 후 서울소년원으로 옮겨, 그 곳에서 79년 7급 공채에 합격해 서울소년감별소(현 소년분류심사원)를 거쳐 82년부터 89년까지 법무부(소년과)에서 근무했습니다. 광화문에 있는 세종로청사와 과천청사 다 근무했죠. 89년 6월에 보호관찰소가 신설돼 보호관찰직으로 전직했습니다. 사무관 말년에 다시 법무부 근무를 했죠. 소년원, 보호관찰소, 법무부 등에서 고르게 각 10년 이상 총 35년을 근무했습니다.

- ‘보호관찰’은 생소한데요.

영화 ‘빠삐용’을 떠올려 봅시다. 죄를 지으면 죄 값의 경중에 따라 벌금이나 집행유예, 수용 또는 징역으로 사회와 격리됩니다. 소년원, 교도소에서는 성행이 교정됐다고 자타가 인정하여 석방을 합니다만 출소 후에는 빠르게 변한 사회에 적응하기가 무척 힘들죠. 자칫 재범하여 또 담 안으로 들어갑니다. 보호관찰은 죄는 지었지만 수용보다는 집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면서 보호관찰관의 지도·감독과 원호를 받고, 주변 환경을 개선시켜주는 선진 형사정책입니다. 사회봉사명령. 전자발찌도 보호관찰소의 업무죠. 본격 실시 28년이 된 지금은 집행유예자의 절반 이상이 보호관찰을 조건으로, 교도소 가석방자와 소년원 가퇴원자도 일정 기간 보호관찰을 받도록 하여 거물 코처럼 촘촘하게 이중삼중으로 재범예방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보호관찰이 ‘사회속의 감옥’이란 불평도 있습니다만 구금 비용 등 국가 예산 절약은 물론 학업과 취업생활도 도와주는 사회복지 측면도 강합니다. 현재 거창보호관찰지소 등 전국적으로 법원과 검찰청이 있는 곳에는 모두 보호관찰소가 있습니다.

- 재직 중 업적이나 기억나는 일은

소년원에서 공민반 담임을 맡아 한글과 숫자를 깨우치게 하여 상급반으로 월반시키고, 원생들과 같이 공을 차고, 피부병을 뿌리 뽑고자 가마솥에 양잿물을 붓고 이불을 삶던 총각 선생님 시절, 보호관찰 학생들에게 복학 주선과 사회복지시스템과 연계한 장학금 전달, 보호관찰 초창기에 길라잡이 책으로 <보호관찰편람>을 기획·제작해 법무부 대(大)친철상을 받고 부상으로 미국 연수를 다녀오고, 보호관찰을 인연으로 주례 선생이 되고 그 신랑을 지금도 멘토역을 하고 있습니다. 94~96년 울산보호관찰소장 재직 시 신축 청사 부지를 울산시로부터 무상으로 기부 받고, 보호관찰 청소년들의 문신 제거 무료시술 등 공로로 대통령표창을, 퇴직 시 홍조근정 훈장을 받았습니다.

- 향우님 가족사항은요.

함양읍 용평리가 고향인 아내 박연희(61)와 결혼한 두 딸, 손주가 넷입니다. 첫째 딸 내외는 제 직장 후배입니다. 딸은 서울북부보호관찰소에, 사위는 법무부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둘째 딸은 보육교사로, 사위는 외국계(이태리) 회사에 다닙니다. 고향에 가면 아내는 인당다리 건너기 전 오른쪽에 있는 동양종합건재(대표 최덕주)로 달려갑니다. 가게 안주인 김남순 씨가 아내 절친 입니다. 갈 때마다 캔 맥주 1박스를 차 트렁크에 실어줍니다. 서울 집에 와서 그 술을 마실 때는 아내도 아무 소리 안합니다. 아직도 2층 단독주택 처가는 함양 중앙시장 통에 있으며, 아래층은 식육점과 반찬가게가 세 들어 있습니다.

- 향우님은 고향에 오면 어디로 달려갑니까.

굳이 들추자면 고 진병판 교장(함양 제일고 교장으로 퇴직)과 쏘맥 일잔 했지요. 발동이 걸리면 함양양조장에 쳐들어가 하기식사장과 막걸리로 입가심합니다. 그 곳서 중학동창인 노용성 정창희 이정호 박충성 이도 만나고요. 하 사장을 만나면 웃다가 허기집니다. 중학생 때 기식이 집에도 몇 번 갔지요. 상림 올라가는 오른편에 있는 기식이 집은 바로 앞에 논이 두어 마지기 있었는데… 몇 달 전에는 고향 병곡면에서 귀향생활을 즐기는 강한수(서울시청 국장 퇴직) 별채에서 친구들과 1박했네요. 한수가 서울 집에 올 때면 연신내 족발집에서 박강래(함양신문 서울지사장). 김문용(은평구청 팀장 퇴직) 등 친구들 몇 명이 저절로 모입니다. 칠선계곡에 있는 허광수(고교 동창) 별채도 가고 싶네요. 양평, 가평도 가끔 갑니다. 아내를 먼저 보낸 초등학교 동창들이 수도(修道)하는 곳이죠.

만나고, 사랑하고, 알게 되고

연금수필문학상 수상자들과 찍은 기념사진. 위쪽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노청한 향우. “아버지, 아버지가 현직에 계실 때 제가 꼭 손자를 안겨 드릴게요.” 큰딸은 약속을 지켜 첫째아들을 2010년 1월 1일에 낳았다. 그해 연말에 퇴직하는 나에게 첫 손자는 새 출발의 선물이었다. 손자는 잔심부름도 잘하고, 블록을 색깔별로 꼼꼼하게 쌓으며, 1에서 10까지 순서대로 붙이며 잘 자랐다. 동요와 동화를 들을 때면 집중력이 뛰어나 가족들을 설레게 했다. 그러나 삼십 개월이 지나도록 “엄마, 아빠”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애가 말을 안 해, 말을.” 입이 무겁다는 듯 은근히 자랑 섞인 내 말투에 친구들은 “말이 늦게 터지는 아이들이 많아”하고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손자는 세 살이 될 때까지도 말을 하지 않았다. 가족들은 ‘늦어도 너무 늦다’며 조바심이 나서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병원마다 좀 더 지켜보자고 했지만, 우린 입소문을 따라 이곳저곳 다니며 언어치료를 받게 했다. 그러나 여전히 말문을 열지 않았다. 결국 손자는 네 살이 되던 해에 발달장애 자폐 2급 판정을 받았다. 가족들은 말수가 줄어들었다. 큰딸은 아이를 돌보기 위해 육아휴직을 연장했고, 친정 도움을 바라며 우리 집 근처로 이사 왔다. 큰딸은 손자를 병원에서 운영하는 어린이발달센터에 3년 남짓 데리고 다녔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손자는 일곱 살이 되던 지난해에 1급 판정을 받았다. 퇴행성 자폐로 옛 ‘천재성’은 온데간데없어졌다. 저체중으로 태어났지만 지금은 몸무게가 20킬로그램이 넘고 키도 또래보다 한두 뼘 큰 편이다. “얼굴은 영화배우 ‘현빈’이요, 몸매와 날렵함은 체조선수 ‘양학선’이다” 선생님들의 한결같은 칭찬이니 ‘꽤 객관적일 것이다’며 슬며시 동의하지만 그 찬사는 금방 실체가 드러난다. 손자는 ‘만만한 할아버지’의 얼굴을 느닷없이 때리며 몸으로 대화한다. 늘 조심하지만 그때마다 속절없이 당한다. 놀이터에서는 다른 아이가 타고 있는 그네를 빼앗고, 여자 아이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겨 넘어뜨린다. 행인들의 핸드백을 툭 치고, 허벅지를 스치며 지나간다. 나는 연신 “미안해”, “죄송합니다” 하며 손자의 장애를 설명하고, 손자를 잡은 손목에 힘을 준다. 손자는 올해 초등학교 입학을 유예하고 개별 교육을 받고 있다. 과잉행동을 억제하고 바람직한 대체행동으로 이끄는 ‘행동수정반’에 가는 날, 손자는 장애인콜택시 안에서 내가 잠시 한눈을 파는 새에 운전기사의 머리를 만졌는가 보다. 비뚤어진 가발을 고쳐 쓰는 운전기사를 못 본 척, 나는 재빨리 손자와 자리를 바꿨다. ‘웃픈’ 순간이었다. ‘특수체육’은 소 근육을 단련시키면서 약한 완력을 키우고 인지기능도 향상시키는 교육이다. 블라인드 창을 통해 들여다보면 손자는 선생님을 따라 곧잘 하다가도 금방 싫증을 내고, 선생님이 설명을 할 때면 고개를 돌려 딴 곳을 본다. 손자의 대소변 가리기는 외부교사에게 맡길 수 없었다. 손자에게 언제까지 종이기저귀를 채울 것인가. 간이소변기를 벽에 부착하고 내가 본보기를 계속 보이자 지금은 소변기에 세우면 성공한다. 손자가 커튼 뒤, 침대 구석에서 조용히 뒤척이면 배변 기미가 있다는 신호이다. 재빨리 어린이용 변기 뚜껑을 양변기에 끼우고 앉힌다. 나는 “응가!”, “끄응!” 하며 배에 힘주는 시늉을 해 보이지만 손자는 자꾸 일어나려고 한다. 시간이 꽤 지나도 똥이 나오지 않을 때는 물러났다가 다시 시작해야 한다. 큰딸은 지난해 복직했다. 처제가 들어와 살림과 두 아이를 돌보았다. 아내도 딸집에서 살다시피 했다. 밥 먹는 시간조차 전쟁이다. 손자는 입이 까다롭고 식탁 의자에 잘 앉지 않는다. 아내는 손자를 따라다니며 밥을 먹인다. 손자는 음식이 입에 맞지 않으면 바닥에 뱉는다. 나는 울컥하여 “두어 끼 굶겨보자, 배가 고프면 가리지 않고 잘 먹게 될 거야” 하고 화를 내면 아내는 “당신에게 애 밥을 맡기면 굶길 거다” 하며 내 자존심까지 상하게 한다. 처제는 지친 몸에 갱년기까지 겹쳐 일 년을 버티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이젠 모든 게 오롯이 우리 부부의 몫이 되었다. “나는 로봇이 아니다!”는 아내의 푸념에 맞장구를 쳐주면서도 티격태격하는 우리에게 큰딸은 U자를 그리며 “아이가 퇴행하여 지금은 바닥까지 내려갔지만 곧 올라온다.”며 오히려 부모를 위로한다. 가족 간의 따스한 결속이 아픈 결손을 이겨내는 힘임을 딸이 깨우쳐준다. 나에게 제2의 인생은 짧은 여백조차 주지 않는, 손자에 대한 고달픈 짝사랑의 시간이다. 안타깝게 두드려도 대답 없는 벽 앞에서 숱하게 좌절감을 느낀다. 마땅한 선택지가 없는, 주도적이지 못한 내 시간이지만 매주 한나절은 법원에서 민사조정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자폐장애인의 그룹 홈을 구상하며 사회복지사 자격도 취득했다. 내년에는 손자가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손자의 등하교, 대소변을 도우려면 나도 함께 입학해야 한다. 정부에서 급여를 주는 장애인활동보조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할아버지만큼 아이를 돌볼까. 그런데 장애인의 직계존비속은 보조인 자격에서 제외되어 조부모는 ‘무보수 정규직’이다. 내가 받는 연금으로 지출이 많은 딸의 살림에 도움을 주지만 한계가 있다. ‘장애인부양의무자’ 기준을 완화해 조부모에게도 보조인 급여가 지원됐으면 좋겠다. 오늘도 손자는 내 손을 잡아끌며 싱크대로 간다. 내가 짐짓 딴청을 부리면 감춰둔 라면봉지를 찾아낸다. 꾸지람을 해도 웃고, 괴성을 지르던 손자는 요즈음은 가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린다. 말귀를 알아듣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손자는 나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

권선형 기자  kwonsh@seob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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