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가장 오랜 친구인 개
충직스러움과 친근함을 상징
반려동물은 정신건강에 도움
치유와 위안까지도 가져다줘

개가 오동나무 아래에서 달을 쳐다보고 짖는 오동폐월도(梧桐吠月圖). <사진: 전주역사박물관>

올해는 개의 해이다. 개는 쥐, 소, 호랑이, 토끼,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개, 돼지 등 12띠를 상징하는 12동물 중 11번째 동물이다. 개는 전통적으로 악귀를 쫓고 공간을 지키는 충성스런 존재였다. 새해를 맞아 임금이 신하들에게 주던 그림인 세화(歲畵)에 개가 자주 등장했던 이유다.

개는 인류가 최초로 가축으로 삼은 동물로 알려져 있으며 역사적으로 애완견, 사냥견, 구조견,도우미견, 썰매견 등으로서 길러왔다. 인류가 초라한 모습으로 숲 속에서 살기 시작할 무렵, 지구에는 몹시 추운 기후가 여러 번 닥쳤다. 지구의 북반구는 무서운 추위 속에 빙하에 묻히고, 생물계는 큰 변화를 일으켜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추었다.

인류도 이 동안에 매서운 추위와 야생동물의 위협에서 몸을 지키고자, 떼를 지어 떠돌아다니며 공동으로 생활을 개척해 나갔다. 개는 바로 이때 인간의 친구가 되었다. 인간은 개에게 먹이와 안식처를 주었고, 개는 길들여지면서 운동량이 적어지면서 크기가 작아졌다. 개는 냄새를 잘 맡고 소리에도 민감하여 인간에게 다가오는 위험을 알려 주었다. 개는 캄캄한 밤중에 물체의 움직임을 잘 살펴볼 수 있으며 낯선 곳에서도 생활에 잘 적응한다.

개는 낯선 사람을 보거나 주인에게 아양을 떨기 위해 짖는다. 개가 짖는 행위는 인간과 함께 살기 위해 발달한 습성임을 알 수 있다. 개는 여러모로 유용하였기 때문에 모든 원시 인류사회가 개를 길렀다. 개는 사냥, 목축, 운송, 경비와 같은 일에 사용되고 있으며 애완동물로 기리기도 하였다. 사람들은 이러한 일에 적합하도록 오래전부터 개를 다양한 품종으로 육종하였다.

한자에서는 개를 크기에 따라 달리 표기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견(犬)은 큰 개를, 구(狗)는 작은 개를 뜻한다. 색깔로 보면 노란색이 대부분이며 검은색도 적지 않다. 또한 집에서 키우는 작은 개는 똥도 망설이지 않고 먹기에 ‘똥개’라고도 불렀다. 한자로 쓸 경우 싸움을 목적으로 키우는 덩치 큰 개는 ‘투견(鬪犬)’, 사냥할 때 쓰는 개는 대체로 몸집이 크므로 ‘엽견(獵犬)’이라고 하고, 남은 음식을 처리하거나 애완 삼아 기르는 개는 ‘황구(黃狗)’라고 표기한다.

이에 의하여 주인이 상(喪)을 당해 챙겨주는 사람 없는 처량한 ‘상가지구(喪家之狗)’ 즉 천대받는 상가 집의 개 신세의 애완 개는 몸집이 작은 개이고, 토끼를 잡은 뒤 쓸모없어져 주인에게 잡아먹혔다는 ‘토사구팽(兎死狗烹)의 사냥개는 작은 체구의 개임을 알 수 있다. 개는 떼 지어 생활하며 무리의 지도자에게 충성하고 명령에 잘 따른다. 개는 주인을 지키는 충성심은 나아가 귀한 것을 지키는 방범의 상징이 되었다.

새해에 액(厄)을 쫓고 복을 빌면서 대문이나 벽장에 붙였던 세화(歲)의 일종인 개 부적(犬符作).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 개는 자기 주인에 대한 충성를 다하는 동물로 묘사되고 있다. 고려시대의 최자가 쓴 설화집<보한집>에는 오수마을의 충성된 개 이야기가 나온다. 전북 임실군 둔남면 오수리 마을에는 옛날 김개인이라는 사람이 개 한 마리를 기르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이웃 마을 잔칫집에 갔다가 술에 취한 나머지 돌아오는 길에 잠시 들판에서 잠이 들었다. 그런데 입에 물고 있던 담뱃대에서 불똥이 떨어지더니 잔디를 태우기 시작했다. 이를 본 개가 멍멍 짖으면서 주인을 깨웠으나 잠에 곯아떨어졌기에 아무 소용이 없었다. 개는 물에 뛰어들어 몸을 적신 다음 몸을 흔들어 털어서 주인 주변에 물을 뿌렸다. 그렇게 여러 차례를 반복하다가 나중에는 아예 불길을 몸으로 뒹굴며 껐다. 주인은 결국 개가 지쳐 쓰러진 다음에야 뒤늦게 눈을 떴다.

주인이 눈을 비비고 주변을 둘러보니 자기 몸만 멀쩡하고 온통 불에 탄 흔적뿐이었다. 또한 개는 시커먼 몸이 되어 이미 죽어 있었다. 그제야 주인은 사태를 파악하고는 개의 충성심에 감동하여 눈물을 흘렸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개의 무덤을 만들며 명복을 빌었다고 한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개의 충성심을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점에서 놀랄 일도 아니다. 그만큼 개는 자기 주인에 대한 충성이 남다르다.

개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주인을 모시고 지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개의 상징은 ‘충성’으로 통했고 그림에서도 그렇게 표현되었다. 조선시대의 민화에 개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조선은 항시 반역을 경계하며 충성심을 강조했는데 개가 그려진 그림은 그런 차원에서 공공연히 장려되었다.

조선시대의 개 그림의 특징은 반드시 나무와 함께 그려져 있거나 혹은 누워있는 모습이라는 점이다. 나무와 개가 어우러진 데는 이유가 있다. 나무 ‘수(樹)’와 지킬 ‘수(守)’자 는 발음이 같다. 게다가 열두 띠의 개 ‘술(戌)’자도 ‘수’와 소리가 비슷하다. 그래서 나무와 개를 한데 그림으로써 재앙으로부터의 ‘지킴’을 강조한 것이다.

개는 경계할 때 서 있지만, 몇몇 그림에서는 누워있는 자세로 그려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개가 서 있든 누워 있던 지킬 ‘수’의 상징은 마찬가지인 까닭이다. 개와 나무가 그려진 그림은 인기를 끌었는데, 이는 단순히 친근한 애완동물로서의 분위기뿐 만아니라 ‘도둑 퇴치’의 지킴이로서의 상징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집에서 실제로 개를 길렀으므로 개의 속성이 이미 잘 알려져 있어서 그러했다.

개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여름철 보양음식으로 종종 희생되어왔다. ‘복날 개고기를 삶아먹고 땀을 흘리고 나면 허한 기운을 보충할 수 있다’하여 보신탕을 먹는 것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중국에서는 향육, 북한에서는 ‘단고기’라 하여 개고기 식용이 오랜 역사를 지닌 음식문화이지만 개를 반려동물로 여기는 가정이 늘어나고 절에 다니는 사람이 많아 개고기 식용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불교를 믿는 사람들은 소고기나 돼지고기는 먹을지언정 개고기를 일체 먹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학설이 분분하다. 어떤 사람은 호랑이가 수시로 출몰했을 때 개고기를 먹고 절이 있는 산으로 가면 개고기 냄새가 나서 호랑이에게 변을 당하므로 개고기를 먹지 않게 됐다고 주장한다. 그런 논리라면 돼지고기나 닭고기도 먹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설득력이 약하다.

그보다는 고려 때 제작된 해인사 팔만대장경에 있는 다음의 설화가 더 설득력이 있다. 옛날 이거인이라는 사람이 길을 가다 눈이 셋 달린 강아지를 발견하고는 주워 길렀다. 이거인은 다른 개와 달리 눈이 하나 더 많은 개를 불쌍히 여겨 잘 돌보아 주었다. 그러다가 어찌 된 일인지 3년이 지나자 아무 이유 없이 죽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이거인도 죽었다. 이거인은 두려운 마음으로 저승길을 걷다가 첫째 관문에 들어섰다. 그 곳에는 눈이 셋 달린 삼목대왕이 지키고 서 있었는데, 삼목대왕은 자신이 죄를 지어 이승에 개로 태어났을 때 정성껏 보살펴 준 주인을 알아보고 반가이 맞아 주었다. “염라대왕께서 할 말이 있느냐고 하면 이렇게 말을 하시오.” 삼목대왕으로부터 귀뜸을 받은 이거인은 염라대왕 앞에 가서 마음을 침착하게 다지며 물음에 답했다. “그래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거든 말하여라.” “법보(法寶)의 고귀함을 판에 새겨 세상에 널리 알리지 못하고 온 것이 후회스럽습니다.” 염라대왕은 그 말을 기특하게 여겨 귀록(鬼錄)에서 그의 이름을 지워 다시 살아나게 해 주었다고 한다.

이 설화는 동물의 생명조차 소중함과 아울러 불경의 신성함을 강조한 이야기이지만, 이에 영향을 받아 개를 삼목대왕의 환생으로 여겨 이후 개고기를 먹지 않게 된 것이라 풀이된다. 이 외에도 저승길의 안내자라거나 저승길의 지킴이라는 전설도 많다. 하지만 그 어느 것이든 주인에 대한 충성심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개는 인류의 영원한 친구임에 틀림없다.

사도세자(思悼世子, 1735~1762) 작(作)으로 알려진 견도(犬圖)이다.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개는 오늘날에도 충직하고 용맹하며 친숙한 동물로 인식된다. 그래서 말이 통하지 않는 인간보다는 마음을 알 수 있는 개와 동반하는 게 더 낫다는 말이 있다. 지금은 개나 고양이등을 사람의 장난감이라는 뜻의 애완동물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반려동물로 부르고 있다. 반려동물과 함께 지내는 것이 정신건강에 큰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현대사회는 핵가족이 많아지고 혼자 사는 사람들과 노령인구가 증가 되고 있다. 반려동물은 심리적 안정감과 자신감을 높여준다는 실험결과도 있다. 그래서인지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정이 늘고 있다. 정확한 숫자파악은 안되지만 국내 반려동물숫자는 1000만 마리에 육박하며 그중 80%정도가 개로 추산되고 있다. 문제는 애지중지 기르다가 병들거나 다른 사정으로 내다버리는 유기견이 많다. 개는 주인을 선택할 수 없지만 주인은 개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기에 우리 모두 미물의 생명존중으로 ‘개 팔자가 상팔자’인 무술년이 되도록 노력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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