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새옹지마
나답게 사는 법
  • 서부경남신문
  • 승인 2018.10.28 18:51
  • 호수 22
  • 댓글 0
김순이. 수필가, 경북 군위 출생, 가락문학회, 소나무5길문학회 회원.

울긋불긋 단풍이 고운 날이다. 저만치 나들이 나온 할머니 두 분이 나란히 한 발 한 발 조심스레 걸음을 옮겨간다. 굽은 등 언저리에 가을볕이 내리고 도로에는 낙엽이 뒹군다. 하늘은 티끌 하나 없고 파랗다. 시선 닿는 곳마다 눈부시게 빛나는 가을이다. 유모차를 세워두고 아가의 사진을 찍는 엄마도 가을에 빠진 듯 얼굴이 해맑다. 가로수 길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참 편안해 보이는 한 폭의 수채화다.

요즘은 어느 모임에서든 ‘나를 위해 살아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나 같은 중년에게 더 잘 어울리는 말일 수도 있겠다. 지금껏 가족을 챙기느라 앞만 보고 달려왔으니 이제 자기를 챙겨보자는 의미로 받아들이려고 한다. 가끔 주변에서 나에게 왜 그리도 답답하게 사느냐고 한다.

시아버님을 돌아올 수 없는 먼 나라로 보내드리고 왔을 때다. 내려놓고 살면 되는 것을 애쓰며 산다는 핀잔 아닌 핀잔을 들을 때도 많았다. 시어머님이 살아 계시는데 편찮으신 시아버님을 모신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럴 때면 나는 ‘제 마음이 이리 생겼나 봅니다’하고 너스레를 떤다. 이 길을 선택한 것도 나답게 사는 것이다.

하루는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해외여행 경품에 당첨되었는데 그날이 친척 결혼식과 겹치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난 1초도 머뭇거리지 않고 ‘여행’이라고 외쳤다. 두 번째 질문은 ‘그날이 부모님 제사입니다. 그래도 여행입니까?’였다.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내가 맏며느리기에 갈 수 없을 거라는 혼잣말이 흘러나왔다. 끝내 ‘예’라는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이런 나도 나에게는 나다운 것이다.

어느 샌가 세상이 이기주의로 변해가는 걸 느낀다. 느림보 같은 내가 첨단시대를 살아가기에는 힘겨울 때도 많다. 목욕탕만 해도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서로에게 스스럼없이 등을 내주며 때를 밀던 시절은 이제 지나간 듯하다.

하루는 옆에 앉은 사람이 혼자서 손이 닳지 않는 곳을 향해 애쓰는 모습을 보면서 “등 밀어드릴까요?” 했다가 거절을 당한 적이 있었다. 그 순간 왜 그렇게 어색하고 민망하던지…. 그래서 나도 앞으로는 그러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목욕탕엘 가면 꼭 혼자 온 사람이 온몸을 비틀며 때를 미느라 애태우는 모습이 눈에 띈다. 내 손이 서너 번만 가면 그곳을 뽀드득하고 매끄럽게 밀어 줄 텐데…. 이제 나도 누군가 먼저 도움을 청해오지 않으면 용기를 내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 마음에 문이 살짝 열릴지도 모른다. 이 모습도 어쩔 수 없는 나다.

나날이 생활의 변화는 많아진다. 이렇게 살다가는 아예 대화조차 필요 없는 세상이 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혼자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면 상대와의 교류는 단절될 게 뻔하다. 그렇게 되면 하루에 꼭 필요한 말은 몇 마디나 될까. 점점 기계화 되어가는 세상이 나는 겁이 난다.

‘나답게 살자’는 말에는 많은 것들이 포함되어 있는 듯하다. 참고 베푸는 것도 결국은 나를 위함이다. 무한 이기적인 삶만 추구하는, 오로지 나만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나답게 산다는 말이 좋다.

특수임종병동에서 죽음을 앞둔 사람들은 ‘좀 더 참을 걸, 더 베풀 걸, 좀 더 재미있게 살 것을 왜 그리 못했을까’라는 후회를 한다고 들었다.

이 가을이 가기 전에 여행을 떠나고 싶다. 그곳에서 길동무를 만나면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네며 진짜 ‘나다운 나’를 만나고 싶다.

서부경남신문  webmaster@seobunews.com

<저작권자 © 서부경남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서부경남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