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규 / 소설가, 2008년 경남일보 신춘문예. 내안의 아이(2009), 지리산 가는 길(2012). 장편: 아름다운 사람(2014), 동굴 파는 남자(2015), 웹소설: 폭염이 온다(2017), 그해 여름 교도소장 살인사건(2017).

새해다. 올해는 기해년, 황금돼지띠라 모두 난리다. 벌써 복권을 사재기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이는 사업을 확장하고 또 다른 이는 신규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 모두가 부자를 꿈꾸지만, 누구나 부자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들은 잊었나 보다. 하긴 이런 꿈이라도 있는 사람은 그나마 행복한 편이다.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삶에 아무런 희망도, 애착도 없는 사람들이 대다수인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사실 시간이란 건 작년에 이어 올해도 그냥 흘러가는 것뿐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연말, 연시를 정한 것은 이 시점에서 작년을 뒤돌아보고 잘못된 게 있으면 반성하고 올해는 의지와 뜻을 굳게 하여 모든 일을 새롭게 시작하자고 만든 것이 아닐까 싶다.

얼마 전, 우연히 어떤 지자체 장의 신년사를 보았다. 여러 미사여구는 접어두고 그는 생소한 고사성어를 들었는데, 그게 바로 억강부약(抑强扶弱)이란 단어였다. 이는 억울함 없이 공정한 풍토를 만들겠다는 강한 의지의 발호요, 누구도 규칙을 어겨 이익을 꾀할 수 없다는 경계였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어른들로부터 ‘농사지천하대본(農事地天下大本)이란 말을 귀가 따갑게 들었다. 이 말을 필두로 2019년을 맞이하여 필자 도 행정과 도민에게 간곡히 말하고 싶은 게 있다.

일전에 필자는 어떤 매체를 통해 ‘농민월급제’와 ‘예술인 월급제’의 전격 시행을 주장하였다. 농민월급제는 수확기 전 수입이 없는 벼 재배 농업인에게 가을철 일시금으로 받던 농협수매약정체결금액자금의 50%를 농번기(6개월)에 매월 월급개념으로 선지급하는 제도이다. 지역에 따라 약간 차이가 있지만, 현재 몇몇 지자체에서 이미 시범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아는 사람은 다 알지만, 이 땅에서 부농을 제외하고 농사지으며 먹고사는 일은 수월치가 않다. 이 정책에 대해 도민 대다수의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고 행정에서 제대로 준비하여 제도적으로 뒷받침된다면, 도내의 농민과 시골로 들어오고 싶어 하는 예비 귀농인, 특히 청년실업에 꿈과 희망을 포기한 젊은이들에게 크게 환영받을 것으로 생각한다.

두 번째는 ‘예술인 월급제’이다. 도내에서 농민과 마찬가지로 허기지고 수고스러운 작업을 하지만, 결과적으로 돈이 되지 않아 힘겹게 창작활동을 하는 예술인이 부지기수다. 팔 년 전, “며칠 새 아무것도 못 먹어서 남은 밥이나 김치 있으면 우리 집 문 좀 두드려주세요”라는 쪽지를 남기고 빈곤 속에서 고독하게 하늘로 떠난 시나리오 작가이자 영화감독인 최고은 씨가 생각나는가? 필자는 아직도 그녀를 기억하면 울컥, 하고 눈물이 나오려 한다. 그녀는 명문인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학과를 졸업하고 영화제에서 수상하는 등 나름대로 촉망받던 예술인이었다.

그녀의 뒤를 이어 김운하(본명 김창규) 배우가 고시원에서 사망한 지 닷새가 지나 발견되었다. 그들이 이럴진대 아직 숨 쉬고 사는 많은 무명작가를 비롯한 예술가들의 삶은 과연 그들보다 나을까? 아니면 세월이 흐르고 문화융성을 꿈꾸는 새 정부가 들어섰으니 그보다 나아졌을까?

유럽의 경우 문화예술에 있어 국가의 정책적 개입이 적극적이고 예술인과 국가, 사용자 간 사회적 합의에 근거한 정책이 설계되어 있고 보편적 복지와 개별 지원정책이 잘 발달하여 있다.

특히 프랑스는 두 유명한 장관 앙드레 말로와 자크 항 이후 부단히 노력한 결과, 몇 년 전부터 국가 예산의 1%를 문화예산으로 편성하고 있다. 물론 우리 정부도 이제 인식을 달리하여 예술인의 창작 지원과 불공정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예술인복지재단을 비롯한 여러 기관과 단체가 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정말 갈 길이 멀다.

농민을 다른 직업을 못 가져서 땅을 파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거나, 예술인을 우리 사회의 잉여인간이라 취급하는 것은 무지한 까닭이다. 좋다. 농민과 예술인을 그렇게 판단하자 치자. 그렇게 하면 이 땅에 사는 젊은 청춘들은 앞으로도 모조리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거나 4차 산업 등 첨단산업 쪽에만 매몰될 것이다. 그러면 누가 소를 키울 것이며, 어느 누가 시와 소설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음악을 할 것인가.

경계해야 한다. 오직 돈 버는 사람들, 돈만을 추구하는 사람들만 이 땅에 득실댄다면, 우리는 머지않아 삶에서 가장 중요한 먹거리를 놓치게 되고, 최소한 누려야 할 인간다움을 훼손당할 게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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