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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왔다네
  • 서부경남신문
  • 승인 2019.10.29 15:23
  • 호수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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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규 소설가, 2008년 경남일보 신춘문예 등단.

어느새 가을이 깊다. 들판에는 벼가 누렇게 익어가고 사방 천지에 널린 밤과 감나무에는 각각

탐스러운 밤과 고운 빛깔의 감들이 열렸다. 천고마비의 계절, 수확의 계절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이 가을은 사계절 중 시골에서 가장 살만한 기간이다. 그래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하는 옛사람들의 말이 시월 중반이 넘어가지만, 아직은 유효하다.

사는 곳은 산청이지만, 합천 덕곡(경남문화예술진흥원)에 입주 작가실이 있어 필자는 일주일에 사나흘은 그곳에 머무른다. 종일 글 쓰느라 몸과 마음이 지치면 해거름 때 주위를 산책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예전 학이 자주 출몰하여 ‘학리’라는 동네 이름이 붙여진 마을 근처를 지나다 보면, 대형콤바인으로 벼를 수확하는 광경과 양파 수확이 끝난 빈들에 다른 작물을 심는 농부들을 종종 본다.

한쪽은 현대화된 농기계를 이용하고, 또 다른 쪽은 예전 방식 그대로 허리를 굽혀 농사짓는 모습에 ‘비대칭’ 또는 ‘현대와 전통의 공존’ 같은 단어가 떠오르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농사지천하대본(農事之天下大本)을 실천하고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는 그들의 모습에 절로 고개가 숙어진다.

필자는 2012년 가을에 도시에서 아무런 연고도 없는 시골로 귀촌하였다. 정년이 십 년이나 남은 직장을 그만두고 올 때는 시골을 그저 낭만적 생활공간으로 보았고, 농사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다. 도시에서 첫 직장에 들어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업무를 수행할 때, 몸으로 부딪혀 해결했듯이, 농사도 그리하면 되지 않겠는가, 하는 무지하고 안일한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작물을 심기 위해 땅을 일구는 작업부터 키우고 관리하는 게 얼마나 힘든 것인가는 이내 몸으로 깨달았다. 겨우 200여 평의 밭을 일구는 데에만 삼 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고(기계 도움 없이 오로지 수작업), 마침내 비닐하우스를 지어 상추와 고추, 깻잎 등을 심어 정성스레 길렀다. 이후 약 한 번 치지 않은 유기농이라 하여 읍내 식당에 직거래하였는데, 그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그때의 일화를 소개하자면 이렇다. 아내가 직접 식당 주인과 만나 납품을 하기로 했기 때문에 필자는 비닐하우스에 있는 상추를 따서, 갖다 주기만 하면 되었다. 그런데 작은 상자에 들어가는 상추의 양이 얼마나 많은지 필자는 오전 내내 허리를 굽혀야 했다. 그래도 겨우겨우 시간에 맞춰 식당 여주인을 만나 상추를 전해주었지만, 그녀는 자신의 저울에 달아보더니 양이 적고 몇몇 잎에 벌레가 먹었다는 이유를 들어 책정한 가격의 삼분의 이만 주는 게 아닌가. 필자는 분한 마음에 항의했으나, 그녀는 매몰차게 “싫으면 다른 곳에 가라.” 하며 강짜를 부렸다. 할 수 없이 그 금액만 받고 집으로 돌아오는 데, 괜스레 눈물이 흘렀다.

그때 필자는 괜한 고집으로 청춘(靑春)들이 그리 들어가고 싶어 하는 직장을 너무 빨리 그만둔 게 아닌가, 나야 그렇다 치더라도 오기 싫은 아이들 역시 힘든 게 아닌가,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아야 하는가, 등등의 생각을 한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그렇게 시작한 비닐하우스 농사로 ‘월’이 아닌 ‘년’ 삼백만 원을 벌었으니 말이다.

돌이켜 보니 참으로 힘들었고 때론 우스웠던 귀촌 초기 때의 삶이었다. 물론 지금은 8년 차로 아내와 필자는 그 시기를 잘 극복하여 지금은 각자 안정된 삶을 누리고 있다. 아내는 이제 농사 외에 읍내에서 ‘친환경 로컬 푸드점’을 잘 운영하여 얼마 전에 예비 사회적 기업으로 선정되었고, 필자는 서두에 밝혔듯이 산청과 합천을 오가며 즐거운 마음으로 창작활동에만 전념하고 있다.

들어올 때 중2,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아들과 딸은 각각 대학 3학년과 중 3이 되었다. 그들은 처음과는 달리 이곳 시골 생활에 퍽 만족하는 눈치이다. 아들은 제 또래의 도시 친구들과 비교하여 독립적이고 강하게 성장했고, 특히 막내딸은 “시골은 하늘과 바람, 별 그리고 좋은 친구들과 독특한 우리 아빠, 엄마가 있어 너무 행복하다.”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

이제, 바람이 있다면 나와 아내는 비록 이런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내 아들과 딸은 학교를 마친 후, 시시하게 도시로 나가지 말고, 시골에서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는 참 농부가 되었으면, 한다.

서부경남신문  newsnur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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