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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주주의 “세도, 환국 그리고 얼마 남지 않았다”
  • 한의준 칼럼리스트
  • 승인 2020.01.05 17:28
  • 호수 34
  • 댓글 2

여당과 야당 모두 국가를 위한
백년대계 아닌 자당대계 우선

낯 뜨거운 선거법 논쟁
유권자는 정치적 산술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 명심해야

거대양당 기득권 논하기 전에
다당제 합당한지 고민해야

존중과 승복, 상생의 정치
유권자의 역할 더욱 중요한 때

부마민주항쟁 40주년 기념 상황재현시민한마당. <사진: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세도정치(勢道政治)는 기이한 통치구조였다. 국왕과 대전(大典)의 권력을 특정 가문이 대신하여 국익보다 사익을, 민생보다 자신의 안위를 우선하였다. 무도했던 세도정치는 흥선대원군의 집권으로 막을 내리지만, 그간 누적된 모순은 이미 조선을 망국의 길로 인도하기 충분하였다.

세도정치의 등장 배경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중요한 요인으로 붕당정치의 몰락을 꼽을 수 있다. 원래 조선은 국왕이 신하들과 함께 성리학적 법률을 바탕으로 나라를 운영하는 이상적인 체제였다. 같은 시대 동아시아의 다른 나라와 달리 신권(臣權)이 합법적으로 보장되어 군왕은 결정권자임에도 불구하고 전제(專制)적일 수 없었고 철학과 신념에 따른 붕당의 형성은 필연적이었다. 붕당은 당쟁(黨爭)으로 폄하되기도 하나, 전근대적 시대에서 정책결정권자인 군왕은 붕당의 주장과 논리로서 숙고를 제공받았기에 대체로 바르게 작동하였다는 견해가 중론이다.

조선 중기부터 작동한 붕당정치는 권력구조 균형의 바탕이 되었으나 환국정치(換局)로 파멸한다. 조선왕조에서 유례없는 정통성을 가진 숙종은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집권세력을 급작하게 교체하며 정국을 주도하였다. 환국에 따른 숙청은 각 붕당을 생사의 문제로 내몰게 된다. 실각이 곧 죽음이었던 사대부들은 이상을 잃고 정치를 생존으로 인식하고 만다. 영·정조의 탕평책은 순기능을 잃은 붕당정치를 회복하기 위함이지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었음을 상기해야 한다. 오랜 기간 탕평에 경주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두 임금 사후 등장한 세도정치는 한번 무너진 정치체제와 세력 간 상호불신이 얼마나 회복하기 어려운지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부마민주항쟁은 1970년대 유신체제 하에서 쌓였던 정치·사회·지역·경제·문화·종교 등 각 부문에 걸친 여러 모순의 폭발이었고, 시민·학생들의 반정부 민중항쟁으로 사실상 유신독재의 붕괴를 아래로부터 촉진한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사진: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오늘날 정국을 보면 환국정치에 대한 상당한 기시감(旣視感)이 든다. 물론, 주권자는 임금에서 국민으로 바뀌었고 체제 역시 군주정에서 공화정으로 변했다. 그러나 2년 넘게 이어지는 집권세력의 ‘적폐청산 드라이브’와 ‘보수 궤멸론’, ‘50년 집권론’ 등은 그들이 가진 정치적 사생결단을 엿보기 충분하다. 걱정스러운 것은 제1야당 역시 이러한 구도에 편승하고 있다는 점이다. 합리적 전략의 부재와 끝없는 장외투쟁 그리고 ‘반문형통’식의 대결구도는 생산적이지 않다. 여야 모두 국가를 위한 백년대계가 아닌 자당대계(自黨大計)를 우선하고 있다.

예컨대, 제21대 총선에 대한 선거법 논쟁은 낯 뜨겁다. 우선, ‘4+1 협의체’라는 생소한 기표(記標)에 대한 설왕설래(說往說來)는 그 정통성을 단적으로 부정한다. 특정 법률안에 선거법을 묶어 신속처리법안으로 지정, 가결한 것은 정치공학적으론 성공적이나 민심과 불협할 것으로 보인다. 집권 여당이 선거법을 일방적으로 밀어 붙인 사례가 처음은 아니다. 노태우 정부 당시 여당이 주도한 선거법으로 치룬 제13대 국회의원 선거는 집권세력의 기대와 달리 헌정사 처음의 여소야대 국회를 만들었다. 유권자는 정치적 산술에 의해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을 대표적으로 보여준 경우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지났으나 선거법으로 촉발된 혼란은 거기에 각 정당의 생존이 달렸기 때문이다. 제20대 총선에서 국민은 3당 구도를 만들었다. 이는 양당제에 대한 염증과 새로운 정당체제의 변화 욕구가 상당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원내 정당은 9개로 난립하고 있다. 분당이 이미 예견된 바른미래당을 비롯한 나머지 군소정당은 생존을 위해 합종하였으며 그 결과가 ‘4+1 협의체’라는 기괴한 정치 도구다. 이는 정치권이 자당의 이익을 위해 지난 총선 민심에 분명히 역행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또한, 많은 원내 정당 중 교섭단체 지위를 가진 정당은 여당과 제1야당, 2곳뿐이란 것은 더욱 비극적이다.

모든 권력의 발로인 국민은 조선조 군왕보다 더 강력하며 이는 ‘4·19’를 비롯한 여러 민주운동으로 증명되었다. ‘87년 체제’ 이후 선거 결과를 보면 우리 국민이 얼마나 권력의 균형을 추구하였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제20대 총선에서 당시 여당은 180석을 장담하였으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그러나 이러한 국민의 선택을 정치권은 생존정치로 기만하였다. 무려 39석을 받은 ‘국민의당’은 사라지고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으로 갈라졌다. 그뿐인가. 민주평화당과 정의당이 저들의 신념을 버리고 교섭단체로 등록했던 ‘평화와 정의의 의원모임’은 우리 제도에서 다당제가 어디까지 민심을 왜곡 가능한지 시사 하는바가 크다.

부마민주항쟁 40주년 기념 민주대동큰잔치. <사진: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대한민국은 대통령중심제 국가이다. 국가원수와 행정수반인 대통령은 강력한 국정 동력을 가지며 여당은 효율적 행정집행을 위해 예산, 법률안제출 등에서 협조한다. 반대로, 야당은 의회에서 행정부를 견제하고 충돌하며 수권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안함으로써 정치·사회 발전의 토대를 이룬다. 대표적 대통령중심제 국가인 미국이 극단의 양당 정치체제에서도 거듭 발전하는 정치적 요인이 여기에 있다. 거대양당의 기득권을 논하기 전에 대통령중심제 국가에서 다당제가 합당한지 다시 한 번 고민해야하는 이유다.

그렇다고 종래의 양당제가 마냥 바람직하다는 것은 아니다. 뿌리 깊은 지역주의와 안보상 특성으로 빚어진 이데올로기 전쟁은 올바르지 않다. 그렇다고 이러한 연유로 양당제가 부정되거나 다당제가 정당화될 순 없다. 예컨대 미국은 인종·민족·지역·이념 등 다양한 요인이 선거에 영향을 끼친다. 우리보다 대단히 복잡다단한 대결적 구도 속에서 정치가 움직인다. 그런데도 미국민은 양당제를 선호하고 유지하고 있다. 그 까닭은 미국정치에는 있고 우리의 그것에는 없는 것, 존중과 승복 이른바 상생(Competitive coexistence)이다.

정치는 환국이 아닌 공존을 전제로 경쟁하는 게 마땅하다. 또한, 정의를 추구하기 위한 방편이 아니라 합리를 향한 도구로써 정치가 탄생했음을 잊어선 안 된다. 그것을 인정할 수 없다면 정치권 모두 안중무민(眼中無民)으로 세도(勢道)를 누려도 좋다. 다만, 몰락은 원래 어리석음이 아니라 오만에서 기인하며 오만은 ‘민의에 대한 착각’에 뿌리를 둔다는 것을 잊지 않길 바랄 뿐이다.

따라서 유권자의 역할이 더욱 중요한 때다. 한 번의 선거를 통해 거듭나는 세상은 없다. 다만, 정치권이 그들의 이해에 따라 국정을 좌우하며 사생환국(死生換局)을 반복할 때 이를 제지할 힘은 오로지 주권자에게만 있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숙종 이전 각 붕당이 균형 잡힌 권력구조를 감히 넘볼 수 없었던 까닭을 환기해야 하는 이유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정당 간의 지지부진함을 과연 국민이 인내할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4·15 총선’의 투표함이 열리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음은 분명하다.

한의준 칼럼리스트  newsnur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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