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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 위에 핀 연꽃’ 세상 시름을 잊는 산청 정취암

기암절벽 벼랑 끝에 암자 위치
의상대사 서광 쫒아 창건한 곳
적막과 고요는 속세 벗은 느낌

‘정취관음보살’ 모신 유일한 절
쌍거북바위와 탱화도 이름 떨쳐
정취암 너럭바위의 비경은 일품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686년 창건한 정취암은 기암절벽에 자리한 절로 그 상서로운 기운이 가히 금강에 버금간다하여 예부터 소금강(小金剛)이라 일컬었다. <사진: 산청군>

길이 끝나는 곳에는 산사가 있다. 남해 보리암과 여수 향일암의 길이 바다 앞에서 끝난다면, 산청 정취암의 길은 기암절벽과 맞닿은 곳에서 끝이 난다. 보이는 곳이라고는 온통 푸른산, 길이 끝나는 곳에는 산사가 있고 깨달음이 있다.

산청 정취암은 의상대사(625~702)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정취암을 품고 있는 대성산(593미터)은 일명 둔철산(812미터)이라고도 한다. 기암절벽에 매달린 정취암은 옛 단성현(丹城縣) 북방40리에 위치한 대성산(大聖山) 기암절벽에 자리한 절로 그 상서로운 기운이 가히 금강에 버금간다하여 예부터 소금강(小金剛)이라 일컬었다.

신라 신문왕 6년(686)에 동해에서 아미타불이 솟아올라 두 줄기 서광을 비추니 한 줄기는 금강산을 비추고 또 한 줄기는 대성산을 비추었다. 이때 의상대사가 두 줄기 서광을 쫒아 금강산에는 원통암(圓通庵)을 세우고 대성산에는 정취사(淨趣寺)를 창건했다.

정취암 가까이에는 목침을 짜 올린 대웅전 건축설화와 새신바위에 얽힌 미완성 단청설화가 전해오는 원효대사가 창건한 율곡사도 있어 두 분의 법력을 느끼기 위해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산청 정취사와 율곡사에서 수행하고 계시던 의상대사와 원효대사가 수시로 왕래하며 수행력을 점검한 일화가 전해진다.

정취암에 오르기 전에는 과연 그럴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굽이굽이 산비탈을 돌아 올라오는 아찔하면서도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길을 보노라면 전해지는 이야기와 일치해 보인다.

정취암은 바위들을 뒤로한 채 절벽 앞에 있다. <사진: 서부경남신문>

정취암 100미터 앞에는 잘 정비된 주차장이 있다. 주차장에서 잠시 내리막길을 걷다가 왼쪽으로 꺾어 돌면 암자가 눈앞에 펼쳐진다. ‘절벽위에 핀 연꽃’ 이라는 명칭이 정말 잘 어울리는 곳이다. ‘산청 9경’ 가운데 한 곳이다.

절이라면 그윽한 산속 중턱이 떠오르는데 정취암은 바로 마음속에서 그려왔던 산사(山寺)가 눈앞에 걸어온 듯 꿈속에서나 본 듯한 풍경이 펼쳐지는 곳이다. 정취암 바위 끝에 서서 올라온 길을 되돌아보면 천장만장 높은 곳에서 하계(下界)를 내려다보는 시원함과 함께 적막과 고요 속에 속세를 벗어난 느낌이 든다.

정취암은 조계종 제12교구 해인사의 말사로 넓지도 크지도 않다. 가람이라고는 원통보전(1987), 응진전(1995), 산신각(1996) 등 다섯 채에 불과하다. 하지만 정취암의 역사와 전통은 절의 규모에 반비례한다. 정취암 암자는 1300년의 시간을 가볍게 뛰어넘는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비롯한 조선 중기 기록에는 ‘정취사(正趣寺)’로 기록되어 있으며, 조선 후기에서 구한말 사이에 조성된 불화(佛畵)에는 ‘정취암(淨趣庵)’으로 기록되어 있다. 정취암은 정취관음보살(正趣觀音菩薩)을 본존불(本尊佛)로 봉안하고 있는 한국유일의 사찰이며, 다른 나라에서도 이같은 경우는 찾아볼 수 없다. 고려 말에는 공민왕의 개혁의지를 실현하고 원나라와 명나라의 간섭을 극복하려는 개혁세력의 주요 거점이기도 했다.

정취관음보살(正趣觀音菩薩). 뒤에 큰 바위가 자연스럽게 병풍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이색적이다. <사진: 서부경남신문>

원통보전에는 관음보살을 모셨는데, 정취보살이다. 정취암은 한국 사찰 중에서는 유일하게 정취보살을 모신 관음성지다. 정취보살은 관세음보살의 화현이라고도 하고, ‘화엄경’ 입법계품에서는 선재동자가 구법수행 중에 만난 53선지식 중 29번째 선지식이다.

화엄경을 보면 정취보살은 등장부터 예사롭지 않다. 선재가 찾아가기도 전에 직접 관자재보살이 계신 곳에 나타나는데, 도착하자마자 세상이 여섯 가지로 진동하고 몸에서 엄청난 광명을 놓으니 해와 달과 별, 번개의 빛이 무색하다. 정취보살의 광명 앞에 그 어떤 광명도 빛을 내지 못한다. 정취보살의 광명은 모두 육도에서 고통 받는 이들을 비추어 그들의 고통을 사라지게 하는 비장하면서도 장엄한 광명이다.

원통보전에 들어서면 선재동자에게 법을 전하고 있는 50cm 남짓한 키의 정취보살상을 만난다. 극락을 품은 보살의 눈을 바라보며 극락을 꿈꿔본다. 

현재 원통보전에 모신 정취암목조관음보살(경남 문화재자료 314호)은 조선 효종 5년(1654)에 정취암의 중창조인 봉성당 치헌선사가 재현해 새로 조성한 것이다. 특히 정취보살상을 자연스럽게 큰 바위가 보호하고 있는 모습은 이채롭기까지 하다.

원통보전 뒤에 있는 쌍거북바위. <사진: 서부경남신문>

원통보전 뒤에는 정취암의 명물이라는 쌍거북바위가 있다. 원통보전 옆에서 바위를 올려보면 영락없이 거북처럼 생겼다. 거북은 부부의 화합과 장수를 뜻하는 영물이다. 그래서 자식이 없는 사람들이 이곳에 찾아와 기도를 드린다고 한다.

또한 정취암은 탱화가 유명한 절이다. 원통보전 뒤로 돌계단을 오르면 응진전과 산신각이 나온다. 정취암 산신각의 산신탱화(경남 문화재자료 243호)는 호랑이를 타고 행차하는 산신을 협시동자가 받들고 있는 모습이다. 조선 순조 33년(1833)에 제작됐다. 산신각 밖에 조성되어 있고 전각 안에서 볼 수 있게 되어있다.

응진전 옆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 소나무숲이 발길을 붙잡는다. 응진전 처마에서 들려오는 풍경소리를 들으며 소나무 숲을 지나면 정취암을 품고 있는 바위 끝에 닿는다. 

너럭바위에서 잠시 긴 호흡으로 서면 발 아래로 암자가 한 눈에 들어온다. 암자와 함께 펼쳐진 사바가 다시 한 번 비경으로 다가온다. 말없이 눈을 감고 산과 들판을 내려다보면 이곳이 선계인 듯 착각에 빠진다.

주지원 기자  joojw@seob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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