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높아진 공공의료 중요성
거창권에서 음압병상 필요 대두
신축 적십자병원에 설치하기로

생명과 직결된 문제에 대해서
경제 앞세운 논리는 배격해야

거창적십자병원에서 수납 신청을 하고 있는 환자들. <사진: 서부경남신문>

19명의 코로나19 환자들이 나왔던 지난 2월말에서 3월초 거창의 환자들은 모두 거창군 보건소에서 123㎞ 떨어진 마산의료원으로 가야했다. 2013년 진주의료원이 사라지지 않았다면 86㎞의 거리였겠지만 서부경남 유일의 공공의료기관이 폐원하면서 더 늘어난 것이다.

보건소를 기준으로 함양의 경우 마산의료원까지는 122㎞로 거창과 차이가 없으나 옛 진주의료원까지는 71㎞로 더 가까워진다. 산청과 합천은 마산의료원까지 각각 86㎞와 81㎞의 거리가 있고, 옛 진주의료원까지는 절반 정도인 43㎞와 48㎞의 거리다.

코로나19가 발생하면서 공공의료에 대한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홍준표 전 지사가 진주의료원을 폐원시킨 이후, 공공의료기관의 공백은 결국 거창·함양·산청·합천 가운데 거창에 가장 큰 부담을 안겼기 때문이다. 진주의료원에 음압병상을 신설했다면 집단 감염이 전파되는 과정에서 원거리를 오가는 불편을 줄일 수 있었다.

당시 진주의료원의 폐쇄 이유는 누적되는 재정 적자였지만 국민의 생명을 경제 논리로 판단한 것으로 공공의료의 중요성을 망각했다는 지적이다. 공공의료시설이 진주의료원처럼 적자가 누적된 서울은 다르다.

2011년 서울의료원의 적자는 진주의료원이 기록했던 적자의 두 배가 넘지만, 2012년 서울시는 서울의료원 한 곳에만 총 179억원의 운영금을 지원했다. 같은 기간 경상남도는 진주의료원과 마산의료원 두 곳에 18억원을 지원했다. 재정 적자와 비효율성을 이유로 공공의료시설을 폐원한 홍준표 전 지사와 과감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 서울시의 태도는 대비됐다.

공공의료기관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민간병원은 할 수 없고 공공병원만이 할 수 있는 공익적 역할 때문이다.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소외 계층 진료는 말할 것도 없고 코로나와 같은 감염병이 발생할 경우 이에 대처할 수 있는 필수 시설이 공공의료기관이다. 감염병 격리 병상의 경우 수익성이 낮아 민간병원에서는 설치를 꺼려하는 경향이 있다.

거창시외버스 터미널 입구에서 보건소 직원들이 열감지 카메라를 이용해 발열체크를 확인하고 있다. <사진: 거창군>

최근 코로나19 상황에서 서울의료원은 환자 수요를 감당하며 필요한 역할을 해 낸 반면에, 거창과 함양, 합천의 환자들은 멀리 마산의료원까지 가야 했다. 진주의료원을 폐쇄하면서 마산의료원에 음압병상을 8개 늘렸다고는 해도 서부경남 공공의료기관의 부재에 따른 부담은 지역민들의 떠안아야 했다.

공공의료기관을 없애고 당장에 얻을 수 있는 재정적 이익은 미미하다. 그러나 거기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은 상대적으로 크다. 우리의 세금은 바로 이런 데 쓰라고 내는 것인데, 근시안적인 생각으로 이를 망각한 것이었다. 코로나19의 발생은 앞을 내다보지 못한 결정에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잘못된 정책의 태도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경남도는 최근 공공의료시설 신설을 위한 공론화 과정을 진행해 압도적 다수의 지지로 공공병원 설립을 확정했다. 없앨 때는 밀어 붙이기 식으로 문을 닫게 했지만 정작 다시 만들기 위해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사회적 비용이 커진 셈이다.

경남도의 공청회는 공공병원 설립 이후에도 정치적 영향으로 뒤집히지 않도록 하자는 취지에 있다. 경남도는 지난 6월13일부터 공론화 작업을 시작해 도민 토론회를 열었고, 20일 2차 토론회와 27일 3차 토론회를 거친 후 진주와 남해, 하동 등 3곳의 후보지를 추천했다. 7월4일 4차 토론회에서 공공병원 신설을 최종 합의한 뒤 부지는 보건복지부의 협의해 결정하기로 했다.

진주권역에 공공의료시설이 들어선다고 해도 혜택 대상 지역은 진주·사천·남해·하동·산청이다. 이 때문에 경남지역 자치단체 중 상대적으로 마산의료원과 거리가 먼 거창과 함양의 경우는, 지역을 중심으로 한 공공의료시설의 필요성이 더욱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거창교도소 이전 문제가 불거졌을 때 경남도가 거창 공공병원 설립 유치를 검토했으나 진전을 이루지는 못했다. 이 때문에 교도소 부지 이전을 원했던 측은 “교도소가 공공병원보다 거창에 더 필요하고 군민들에게 더 큰 이익과 삶의 질을 높여 줄 거라는 게 구인모 군수와 국회의원의 생각 아니냐”고 비판했다.

지난해 11월 보건복지부는 양질의 공공·민간병원이 없는 전국 9개 지역에 지방의료원과 적십자병원 등 공공병원 신축 추진 방침을 발표했다. 서부경남의 경우 거창권(거창·합천·함양), 통영권(고성·거제·통영), 진주권(산청·하동·남해·사천·진주) 등 3개 권역이 포함됐다. 앞으로 연구용역을 통해 신축규모 등을 구체화하고, 예비타당성 조사 등을 거쳐 검토하겠다는 방침이다.

경남은 의료권역이 창원권, 진주권, 통영권, 김해권, 거창권 등 5개로 나눠져 있는데, 거창권의 의료 환경이 가장 열악하다. 다른 권역은 입원의료이용률이 창원권 78.01%, 진주권 79.04%, 통영권 62.51%, 김해권 64,54%로 60% 이상인 반면 거창권만 37.61%로 최하다.

다른 4개 권역은 상급종합병원이나 종합병원 권역응급센터, 뇌혈관. 심혈관 인증병원 등이 있으나 거창은 종합병원이나 지역응급센터는 물론 심혈관, 뇌혈관 인증병원이 한 곳도 없다. 이 때문에 입원사망비율이 적정 기준의 1.52배에 달하고 있고, 응급사망비율은 1.37배, 뇌혈관 사망비율은 1.58배, 재입원비율은 1.21배로 적정수치보다 모두 높게 나타나고 있다.

입원을 필요로 하는 지역 환자들이 대구·진주·창원 등으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그러다보니 입원의료이용률이 낮을 수밖에 없다. 공공의료 확충은 그래서 중요하다.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를 재정적자와 강성노조 등의 이유로 없애버리는 무모한 행동이 생명에 대한 위협으로 되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거창적십자병원 전경. <사진: 거창적십자병원>

정부는 2025년까지 지역의료 상황을 개선하겠다는 계획인데, 공공의료기관 확충에 더해 감염병 대처를 위한 음압병상 신설도 필요해 보인다. 지난해 정부 발표는 코로나19 발생 전이라 뇌혈관과 심혈관 대처 등 응급환경을 우선 고려한 측면이 있다. 감염병의 심각성이 더해진 상태에서 구체적인 실행에 있어 별도의 음압병동이나 음압병상 신설도 중요하다.

감염병이 발생할 경우 굳이 창원이나 진주로 가지 않고도 지역 내에서 치료가 가능한 환경이 제공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거창군보건소 김용수 공공의약담당은 “신종코로나가 종식되지 않고 계속 확산되고 있는 상황뿐만 아니라 다른 감염병도 발생할 수 있어 음압병상 확보는 필수적인 상황”이라며 “신축하는 거창적십자병원에는 음압병상이 설치될 계획으로 규모나 시기에 대해서는 이전이 구체화 될 때 결정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수 경남도지사는 지난 3월 코로나19 대응 브리핑에서 “국립을 제외한 도내 시·도립 공공병원 병상 1개당 1만1280명을 감당해야 할 상황”이라며 “공공병상 1개당 인구수가 전국 평균 4104명으로, 경남은 2.7배 수준의 인구를 감당해야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서부경남의 인구 1000명당 공공병상 수는 0.33개로 경남 전체 1.53개에 견줘 매우 적다. 음압병실도 경남에 총 36개가 있는데, 대부분 마산의료원, 창원 경상대병원, 양산 부산대병원 등 동부권에 있고, 서부권에는 진주 경상대병원 4개뿐이다.

한편 ‘거창군·합천군·함양군’ 서부경남 지역책임의료기관으로 선정된 거창적십자병원은 현재 부지면적 3143㎡(952평), 건축면적 5342㎡(1619평), 진료과 12개(내과 3곳, 외과, 정형외과, 성형외과, 산부인과 2곳, 소아과, 마취통증학과, 영상의학과, 야간진료실), 91병상을 운영하고 있다.

이에 거창적십자병원은 진료과를 16개 과로 확충하고 300병상으로 확충하기 위해서는 2만6400㎡~3만3000㎡(8000~1만평) 정도의 부지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거창군은 부지면적에 대해 예정후보지 등을 두루 살펴 본 다음 정확한 면적을 확정할 계획으로 올 하반기 윤곽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은정 기자  newsnur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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