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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거열산성’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지정 예고

신라와 백제 영토 확장 각축장
문헌기록에서 실체가 확인되는
거창지역 삼국시대 산성 중 최대

1차성과 2차성의 독특한 형태
대규모 집수시설 확인되면서
고대 수리사 연구의 중요한 유적

문화재청이 20일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 예고한 거창 거열산성 전체 전경. <사진: 거창군>

거창군에 있는 삼국시대 때의 석성 거열산성이 국가 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 예고된다.

문화재청은 20일 경남 거창군 거열산성(居列山城)과 서울시 종로구에 있는 의정부지(議政府址)를 국가 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 예고한다고 밝혔다.

거열산성은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의 영토 확장 각축장으로 문헌기록에서 실체가 확인되는 거창지역 삼국시대 산성 중 최대 규모다.

특히 거열산성은 건흥산(乾興山·해발 572미터) 정상부를 둘러가며 돌로 쌓은 신라 산성으로 1974년 경상남도기념물 제22호로 지정된 데 이어, 1983년에는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체계적인 관리와 보존정비가 이루어져 온 거창군의 대표적인 문화유적이다.

그동안 학술조사와 연구를 통해 거열산성은 신라시대에 축성된 1차성과 통일신라 시대에 증축된 2차성으로 이루어진 독특한 형태가 확인되어 신라산성의 변화과정을 밝힐 수 있는 핵심유적으로 확인됐다.

1차성의 둘레는 약 418미터. 2차성의 둘레는 1차성에 덧붙여 축조해 약 897미터. 현재 전체 산성 길이는 2차성과 연결되지 않는 1차성 안쪽을 헐어낸 구간과 1·2차성 중복 구간 등을 제외한 1115미터이다.

문화재청은 학술조사(지표조사 1회·시굴 2회·발굴 2회)와 2차례의 학술대회를 통해 1차성은 6세기 중엽 신라가 백제 방면으로 진출하면서 거창지역에 축조한 산성이라고 밝혔다.

거열산성 1차성 집수시설 및 성벽. <사진: 거창군>

거열산성의 1차성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관련 기록이 등장한다. 삼국사기에는 백제 멸망 후 3년간 백제부흥운동이 전개되다 신라 문무왕 3년(663년) 신라 장군 흠순(欽純)과 천존(天存)에 의해 함락되어 백제 부흥운동군 700명이 전사한 ‘거열성’으로 알져져 있다.

이후 1차성에 증축된 2차성은 문무왕 13년(673년) 나당전쟁을 대비하기 위해 신라가 거점지역인 거열주에 축조한 만흥사산성(萬興寺山城)으로 파악되며 대동지지지(大東地志) 기록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서쪽 계곡에 조성된 1차성의 집수시설(集水施設·성내에 물을 모으는 시설)과 동쪽 계곡의 2차성 집수시설은 축조방법과 구조 등에서 차이를 보이며, 축성기법의 변화와 함께 고대토목공법 복원과 수리사(水利史) 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거열산성 2차성 집수지 원경. <사진: 거창군>

2차성의 집수시설은 가파른 경사면에 조성되어 있으며 수거시설·호안석축·축대가 유실되는 것을 방지하는 여수로 설치, 영조척(營造尺·토목건축에 사용된 자)을 이용한 계획적인 축조기법 등이 확인됐다. 이러한 형태의 집수시설은 발견사례가 매우 드물어 희소성이 높다.

거창군은 거열산성의 역사적 가치를 조명하기 위해 2004년부터 2019년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학술조사와 학술대회, 문화재청 방문 등 국가지정문화재인 사적 승격을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왔다.

구인모 거창군수는 “거창군민과 관계 전문가의 많은 성원과 관심 속에 거열산성이 국가사적으로 승격할 수 있게 되었다”며 “거창의 고대문화를 상징하는 거열산성의 역사적 가치를 재정립하고 거창군민의 자긍심을 더욱 높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앞으로 30일간의 예고를 통해 의견을 수렴한 후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할 예정이다.

이은정 기자  newsnur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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