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이 수필가, 소나무5길 문학회.

버스에서 내려 네댓 걸음을 걷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뒤에서 “잠깐만요” 하면서 나를 불러 세운다. 무슨 일인가 돌아보니 그냥 서 있으란다. “왜 그러세요?” 그녀가 내 어깨에 손을 올려 뭔가를 떼어냈다. “여기 거미가 붙어있어요.”

그러고는 길바닥에 옹크리고 있는 거미를 가리키더니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가던 길을 마저 갔다. 이 더운 여름날 거미가 내 목을 기어오르고 있다는 상상만으로 온몸이 근질근질했다.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고맙습니다.’ 꾸벅 인사를 했다.

요즘 남 일에 신경 써 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녀가 베풀어준 작은 배려를 떠올리며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지난해 가을, 경남 하동 최 참판 댁으로 나들이 갔다가 겪은 일이다. 길가 늘어선 가을꽃들을 배경으로 문학축제가 한창이었다. 느긋한 가을햇살은 평사리 황금들판에 서 있는 허수아비와도 잘 어우러져 여유로웠다. 지붕에 토란대 말라가는 풍경도 한가로웠다. 그런 나의 맘을 뒤흔든 것이 있었다.

보면 볼수록 신기한 운동화였다. 앞서가는 S선생 운동화에 눈이 자꾸만 가는 것이 어쩔 수가 없었다. 아무리 무시해보려 해도 이미 내 눈은 그 운동화에 딱 꽂혀 버렸다. 운동화 디자인이 저토록 입체적이라니! 하면서 내 두 발은 S선생 옆에 바싹 붙어있었다. 아뿔싸, 내가 지금 무엇을 본 것이야. S선생 운동화에 붙은 건 왕지네였다. 녀석에게 물리면 죽지는 않겠지만 말도 못하게 쓰라리고 퉁퉁 붓는다. 운동화에 들러붙은 녀석이 그냥 물러설 것 같지가 않았다.

‘요놈 봐라! 내가 너를 본 이상 그리 호락호락하게 당할 성 싶으냐?’ 나는 시골에서 자란 탓인지 지네가 그다지 징그럽거나 무섭지는 않다. 어떻게 하면 호들갑스럽지 않게 대처할 수 있을까 생각해봤다. S선생의 귀에 대고 ‘선생님, 운동화에 지네가 붙었어요.’라고 조용히 말해도 당황하실 일이었다. 그렇다고 큰소리로 말하면 주변사람들마저 놀라게 만들 게 분명했다. 나는 잠시 생각 끝에 S선생에게로 다가갔다.

“선생님, 아무 것도 묻지 마시고 이쪽으로 오셔서 오른쪽 발을 최대한 높게 들었다가 쿵 소리가 나도록 내리쳐 보세요.”라고 했다. S선생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내가 시키는 대로 쿵하고 발을 내리쳤다. 그러자 운동화 옆면에 길게 딱 붙어 있던 커다란 지네가 길 한쪽에 벌러덩 뒤집혀 패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제야 함께 한 분들이 “지네다! 왕지네다!” 소리치면서 왕지네를 구경하느라 길을 막고서 야단법석이었다.

요즘 남의 일에 신경 써 주는 사람이 드물다고 한다. 되레 그런 사람을 오지랖 넓다고 손가락질하기도 한단다. 하지만 내 어깨에 거미를 떼 내어준 그녀가 있고 또 그녀를 닮은 내가 있다. 그리고 어딘가에는 우릴 닮은 사람이 또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웃음이 나왔다.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자연스럽게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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