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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부조리에 맞서는 상고 출신 여성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불합리한 문제 바꾸려 하는 건
학력도 빽도 없는 여사원

정의 말하나 선택적 술수 불과
결국 평범한 이들이 세상 바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90년대 여성들이 전하는 ‘나답게, 당당하게 살아가자’는 울림이다. <사진: 더 램프(주)>

대기업인 삼진그룹에서 새벽부터 영어공부를 하는 여직원들은 상고를 나온 여성들이다. 직장 생활 8년차로 업무능력도 뛰어나고 회사에 없어서는 안 될 인재와도 같지만, 그들에게 맡겨진 업무는 단순하고 초라하다.

이른 아침 출근해 부서 직원들의 취향에 맞게 커피를 타거나 간식을 사오는 등 단순한 업무가 대부분이다. 아이디어도 있고 개인적인 역량도 우수하지만, 좋은 학교를 나와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 앞에서는 초라해진다.

한 가지 희망이 있다면 일정한 토익점수를 얻으면 승진을 할 수도 있다는 것. 제대로 능력을 인정받으면서 평사원으로 끝나기 보다는 뭔가 도약할 수 있다는 실날 같은 기대를 갖고 그들은 영어공부에 몰두한다. 그러나 그들 앞에 여러 난관들이 닥쳐오는데….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이를 극복하려는 세 여성의 성장기다. 하지만 능력보다는 학력 중심의 세상과 부조리를 비판하는 영화기도 하다. 좋은 학교 나오거나 좋은 부모 만나서 부를 누리는 똑똑한 사람들이 온갖 술수를 부리며 힘없는 사람들을 무시하는 걸 보면서 상고 출신 여사원들은 대충 넘어가지 않는다.

뭔가 한참 불합리하고 문제가 많은 데도 대충 덮고 무마하려는 것을 두고 보지 않고 바꾸려는 건 평범한 여사원들이었다. 시골에서 대도시의 직장에 취업한 여성들의 이야기는 우리네 누이들과 여동생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고졸과 상고가 강조되는 영화에서 막연하게 떠오르는 건 우리 곁을 떠난 어떤 대통령이다. 재임 시절 상고 출신이라고 온갖 비하와 무시를 당했지만 훼손된 정의를 바르게 세우기 위해 노력했던 대통령의 모습은 부조리를 넘기지 못하고 바로 잡기 위해 부딪히는 여사원들의 모습에 투영돼 있다. 고졸과 상고가 강조될 때 자연스럽게 연상될 수밖에 없다.

1995년 말단 여사원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사진: 더 램프(주)>

학력 중심의 세상에 대한 비판이 많음에도 구조가 쉽게 바뀌지 않는 것은 여전히 좋은 학력을 강조하고 있는 사람들이 기득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정의를 말하고 있으나 매우 선택적이고 술수에만 능하다. 잘못을 반성하기 보다는 감추기에 급급하다. 영화 속 삼진그룹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지만 생생한 캐릭터는 주변의 모습을 그대로 비추게 한다.

비록 고졸 여사원이라 존중받지 못하고 정의로운 선택은 온갖 벽에 가로 막히지만 그들의 멈추지 않는 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와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기본적인 소양을 갖췄기 때문이다. 부도덕한 기업과 사회의 모습에 눈감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이 결국 세상을 바꿔나간다는 것을 보여준다.

1995년을 배경으로 하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새로운 도약을 꿈꾸는 여직원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기업의 경영구조와 환경오염, 내부 고발 등을 다룬다. 고졸과 여성이라는 전형적인 우리사회 비주류를 내세웠지만 정신이나 삶의 태도만큼은 번듯한 학교 나와 폼 잡고 사는 사람들보다 훨씬 건전하고 건강하다.

온갖 나쁜 짓을 저지르고도 힘 있는 몸통은 빠져나가고 힘없는 쭉정이만 처벌받는 세상에서 양심적인 이들과 연대해 불공정하고 반칙하는 세상에 맞서 좌충우돌하는 모습은 희망적이다. 상고 출신 세 여성의 성장기가 주는 감동이 유쾌한 이유다.

성하훈 기자  doomeh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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