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얼마나 기다렸던 야간 새벽 일출 산행이던가!     

▲ 너무 많은 사람들로 천왕봉 아래에서 멈춰 맞이한 새해 일출, 정말 멋진 감동이었다. ⓒ지리산커뮤니티 다볕

2005년 1월1월 새벽2시!
새해 떡국을 한 그릇 먹고 집을 나와 온도를 보니 영하 4도였다.
곧장 중산리로 향하여 차를 달리니 밤하늘에 별빛만 반짝이고 온도는 점점 내려가고 있었다. 중산리에 도착하니 조용하면서도 분주함이 가득했다. 관광버스, 승용차로 인해 주차장은 만원. 어렵사리 주차하고 시계를 보니 새벽 3시, 바깥 기온 영하 7도였다.

지금부터 시작이다. 그 얼마나 기다렸던 야간 새벽 일출 산행이던가. <지리산커뮤니티>에서 자료를 검색하고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준비하였고, 드디어 첫발을 힘껏 내디딘다. 약간의 추위가 야릇한 기분을 느끼게 하고 매표소를 지나 적십자 봉사회원들의 따끈한 보리차를 한잔하고 헤드랜턴에 불을 밝혔다. 20여분 오르니 앞에 사람들이 밀려 차량 정체처럼 가다 서다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땀이 나기 시작할 때쯤이면 어김없이 정체, 너무 많이 기다리니 발이 시려왔다. 칼바위를 지나 법계사로 향하면서 능선에서 법천골 쪽을 보니 거기에도 랜턴불빛들이 줄을 이었다.

오늘은 지리산이 사람들 천지구나 생각하며 망바위쯤 지나는데 계곡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그야말로 칼바람, 하지만 이 바람은 나중에 맞게 될 바람의 전주곡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오르면서 뒤를 돌아보니 저 멀리 진주와 광양 쪽에서 밝은 불빛들이 보였다.

아까 매표소에서 흘러나온 방송에는 천왕봉 영하20도라고 했는데 점점 위력을 느끼기 시작한다. 이미 준비가 소흘한 사람들은 하나 둘 포기하고 주저앉고 만다. 저 멀리 법계사의 신년 등불이 보였다. 헬기장 부근에서 헤드랜턴 불을 껐다. 밤하늘 가득히 있는 별빛과 어둠 속에 있는 천왕봉을 보며 좋은 일출을 기대한다.

로타리 산장에서 봉사대원들이 핸드마이크로 방송을 한다. 지금부턴 반드시 아이젠 착용을 하라고. 준비를 단단히 하라고. 모든 준비를 마치고 올라가려는데 병목현상이 발생한다. 산에서 병목현상이라. 한참을 기다려도 줄은 진행하지 않고, 성미 급한 분들 끼워들고, 그 사이 땀은 식어 손, 발은 시리고, 드디어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주위의 여러 사람들도 제 자리에서 가볍게 뛴다. 어제 저녁 아이젠을 사러갔는데 상점의 총각 얼굴이 떠올랐다. 장갑을 만지작거리며 생각보다 비싸 망설이니까 그냥 집에 있는 장갑 가지고 가보시란다. 그래서 결혼 전 마누라가 선물한 가죽장갑을 가지고 왔는데, 손끝부터 아려오기 시작했다. 장갑을 벗었다가 끼웠다가, 아 그것을 사 가지고 와야 했는데 이제 후회해봐야 소용없다.

오늘 일출이 7시 30분경이라 했는데 이러다 천왕봉 일출은 놓치겠다 싶었다. 서서히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하니 바위가 온통 얼음과 눈투성이라 많은 사람들로 인해 더욱 미끄러웠다. 뒤를 돌아 동쪽을 바라보니 붉게 여명이 들기 시작했다. 군시절 동해안 해안경비를 한 적이 있었다. 일출은 여명이 밝기 48분 후에 한다. 지금부터 48분 후 일출은 시작될 것이다. 오늘 정말 지리산 일출을 볼 수 있을까?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보여준다고 했는데. 군생활 하면서도 6개월 동안 제대로 된 동해안 일출은 2, 3번밖에 보지 못했다. 점점 동이 터 오면서 오늘의 날씨가 정말 좋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제 일기예보는 일출이 힘들 것이라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리고 감사했다. 살아 있음에, 건강하여 이곳까지 오게 됨에.

▲ ⓒ지리산커뮤니티 다볕

드디어 일출 15분쯤 전, 가던 길을 멈추고 전망 좋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조망하기 좋은 장소로 이동하고 새해 첫 일출을 기다렸다. 기다림. 기다림, 드디어 붉게 물든 동녘 하늘로 새해 첫 해돋이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탄성, 감탄사가 온 산 위에 넘쳐나고 살포시 모습을 보이던 해님은 그 힘찬 시동을 걸고 힘차게 솟아올랐다. 나는 덕을 쌓지 못했는데 나에게도 이런 행운이. 그리고 감사했다. 살아 있음에, 건강하여 이곳까지 오게 됨에.

일출을 보고 천왕봉 가는 길은 또 다른 기다림의 연속. 좁은 길을 오르는 사람 내려오는 사람들 때문에 일방통행을 했으니. 중산리를 출발하여 6시간 30분만에 천왕봉에 도착했다. 천왕봉은 세찬 바람 때문에 사진 찍는 몇몇 사람들 빼고는 한산했다. 정상 부근 눈이 많이 내려 눈 구경도 할 겸 장터목을 거쳐 법천골 쪽으로 하산키로 작정하고 방향을 잡았다. 이쪽으로는 한산했다.

그렇지만 세찬 바람은 몸을 날려 버릴 것 같았고 또다시 손은 시려오고, 눈 덮인 천왕봉 제석봉 구간의 설경은 정말 아름다웠지만 최신형 디지털 카메라는 배터리가 잘 작동치 않아 사진을 많이 찍지 못했다. 어떤 분의 산행기에 제석봉 칼바람이 무섭다 했는데 온몸으로 제석봉 바람을 맞으니 정말 그 말이 실감이 났다. 몸이 날려갈 것 같은 기분. 멀리 남해의 반짝이는 정경을 한 컷 찍고 장터목산장에 도착하여 간단한 요기를 마치는데, 많은 사람들로 인해 취사장은 사람과 쓰레기로 가득했다. 자기 쓰레기는 자기가 가져가면 될 것을 사람들이 많다보니 공중도덕이 실종 된 건가? 몇 번을 대피소에 들렀지만 오늘 같은 모습은 처음이었다.

법천골 쪽으로 하산하며 눈길을 조심조심 내려오는데 무릎이 아프기 시작했다. 무릎이 아파 스틱도 두개나 사용했는데 성능 안 좋은 아이젠 탓인가. 고통의 연속에서 한 발짝 한 발짝 하산했다. 나이를 조금 드신 아저씨 한 분도 거의 걸음마 수준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쉬면서 물 한 모금 나누어 마시고 한참을 내려오니 119 대원들이 서둘러 산을 오르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다리를 삐신 분이 구조 요청이 들어왔다고 출동하는 길이란다. 오늘 벌써 두 번째 출동길이라고. 아까 그 분일 것 같은 생각이 들어 하산 위치를 알려 주고 살금살금 내려왔다. 구조대장님이 안쓰러워 보였는지 조심해서 내려가라고 당부하신다. 내려오면서 엉덩방아 두 번 찍고 2시간 30분 거리를 3시간 정도 걸려 드디어 중산리에 도착하니 적십자 봉사대원이 따끈한 보리차 한 잔 권한다. 시계를 보니 2시15분이었다.

해마다 새해 일출 야간 등산로를 개방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몰리다 보니 공단 쪽에서 많은 준비를 한 것 같았다. 중간 중간 베이스캠프도 설치하고 안내요원도 많이 배치했다. 추운 날 수고하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한다. 천왕봉으로만 너무 많이 몰리니 다른 코스도 개방을 하고 홍보했으면 좋았겠다고 느꼈다. 그리고 겨울 산행은 모든 준비를 완벽하게 해야 후회되지 않는다는 말을 실감했다. 지금 이 순간도 손끝 감각이 무디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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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커뮤니티( http://www.ofof.net )>의 산행기에 게재된 아이디 다볕님의 글과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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