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소 독림가.

70년대 초, 필자가 대학 새내기 강의실에서 이렇게 질문했다. “교수님, 철학이라는 학문은 사주. 관상 등과는 어떻게 다른가요”했더니, 교수님은 “철학이 그렇게 오만하지는 않다”고 대답했다.

지금도 길거리에 나가면 사주, 관상, 택일, 작명 등의 간판 속에 철학이라고 함께 많이 쓰여 있다. 이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에서 나온 기대심리일 뿐, 학문을 빙자한 하나의 상술행위로 봐야하며 강의의 대상도 아니었다.

가끔 철학과를 나왔다고 하면, 오갈 데가 없는 사람이나 가는 학과쯤으로 보고, 현실에서는 별 필요가 없는 학문으로 보는 게 일반인들의 인식이다. 과연 그럴까? 이러한 경시풍조는 구직수단으로서 철학과가 가지고 있는 우리사회의 구조적 취약성에 기인하며, 학과의 선호도는 나라마다 다르며 학문고유의 가치는 시공을 넘어 같은 것이다.

철학을 필수과목으로 하는 프랑스의 대입자격시험 ‘바칼로레아’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철학에 대한 일정수준의 지식이 없으면 입학을 허용치 않는 절대적 평가이며 창조적, 논리적 사고가 필요한 논술형 시험이다. 선택만 잘해서 등급만 잘 받으면 되는 상대적평가인 우리의 수능시험과는 많이 다르다.

철학이라는 용어는 원래 그리스어로 필로소피아(philosophia)이며 지혜를 사랑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으며, 우주의 근원과 모든 학문의 보편타당한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철학사를 보면, 서양에서는 소크라테스의 ‘자각’과 그의 제자 플라톤의 ‘대화편’으로 시작되는 고대철학에서 칸트의 3비판서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를 내놓은 니체철학. 오늘날 한계에 직면한 마르크스의 사회주의이론 등 근·현대철학으로 이어지고 있다.

동양에서도 공자와 맹자의 유가와 춘추전국의 제자백가 사상과 원효의 ‘실천 행’을 지나 이황의 ‘사단칠정론’으로 철학은 인류역사와 더불어 중단 없이 이어진다. 그 시대마다 위기를 보는 이들의 혜안으로 제시한 주장과 생을 바친 집념이 없었다면 오늘의 문명사회가 과연 있었을까?

철학이란 특정인만이 하는 학문이 아니라 가장 대중적이고 우리 곁에 늘 두어야 할 학문이다. 일반적으로 철학과 과학과는 거리가 멀 것 같지만, 고대로부터 과학자의 대부분은 철학자이다. 독일이 세계과학을 이끌어 온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래서 철학도에겐 독일어는 필수이다.

철학적 사고방식인 ‘왜?’와 ‘왜?’를 거듭하는 창조적 사고는 고대로부터 모든 학문의 산파역할을 하였다.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위대한 만류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것도 뉴턴의 철학적 사고의 결과였다.

탐구대상에 따라 철학은 법철학·수리철학·경제철학 등 여러 분야가 있으며, 인식론·존재론·논리학이라 부르기도 한다. 법철학의 한 예로 보자면, 판결도 판사의 이념이나 가치관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그곳에 법철학의 영역이 있게 되는 것이다. 물질문명에 정신문화가 따라가지 못하는 현대사회는 자연과학으로 풀 수 없는 많은 고민을 안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우리나라가 자살율이 제일 높다고 한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서는 잠시 한발 물러서서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생활 속에 가두었든 나의 편견과 오류는 무엇일까?” 등 삶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들을 성찰해보는 생활철학이 필요한 이유가 있다 할 것이다.

그리고 자본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 아닌 행복한 사람을 위한 교육, 창조적 사고력을 가진 인간! 그래서 프랑스처럼 초등학교에서부터 철학교육도 있었으면 하는 게 필자의 견해다.

학문의 아버지, 학문의 왕 중 왕 철학! 구순의 아버지! “자식은 결코 하찮은 학문을 하지 않았습니다. 궤변가는 더욱 아닙니다. 자식의 눈에 남아있는 당신의 어깨엔 늘 지게가 있었지요. 그래서 온 몸으로 당신을 사랑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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