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승극 산청군 단성면 석대마을 거주.

어쩌다 호갱이가 되었다. 그 봄날은 일찍부터 더웠다.

온 세상에 웬 염병이 들어오는 바람에 일자리가 없어졌다. 다시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기도 어려웠고 비어가는 잔고에 살림도 팍팍해졌다. 주머니에 몇 푼 남은 돈으로 애써 여유를 찾으려고 했더니 이마저도 여의치 않게 되었다.

얼마 전, 주방에서 쓰던 전기레인지가 오작동을 일으켰다. 오프 버튼을 눌러도 한 개의 화구가 꺼지지 않았다. 단순 접속 오류라는 생각이 들었다. 별 것도 아닌 것 같은데 괜히 수리한다고 만졌다가 영영 A/S를 못 받을 것 같아 고장 수리 접수를 했다.

기사가 집을 방문한 것은 일주일 만이었다. 도시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이 곳 시골에서는 다반사다. 늑장을 따질라치면 이곳에서는 평생 서비스를 받을 수 없을 것이다. 기업에서는 다만 비용의 효율과 수익의 극대화의 문제일 뿐이다. 그는 공구 가방을 들고서는 현관문 앞에서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부품을 구하느라 시간이 걸렸다며 서툰 말로 변명을 했다. 가벼운 웃음으로 답을 대신하고 그를 고장 난 전기레인지가 있는 주방으로 안내했다.

기사는 들고 온 무겁고 커다란 공구 가방을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먼저 그는 고장 난 전기레인지의 고장 현상을 육안으로 대충 확인한 다음 공구가방을 열었다. 각종 공구와 자재들 중 드라이버 하나를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레인지의 뚜껑을 열기 시작했다. 뚜껑을 연 상태에서 몇 군데 전선 커넥터 부분들을 휴대폰으로 찍고는 커넥터 부분의 나사들을 조심스럽게 풀어내기 시작했다.

뚜껑을 열어 본 전기레인지 내부는 조작용 부품 박스 1개, 거기에 연결된 또 다른 부품 박스 1개, 그렇게 2개의 부품 박스가 있고, 화구가 3개, 화구와 부품박스를 연결하는 커넥터 부분 2군데가 있었다. 그는 그 연결 전선들을 조심스럽게 풀어내고는 2개의 부품 박스를 차례로 조심스럽게 들어냈다. 그리고는 새로운 부품으로 2개를 교체하고 커넥터를 다시 연결하는 작업을 했다. 처음 찍어놓은 휴대폰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전선의 색깔을 맞추어가며 조심스럽게 연결 작업을 마쳤다. 그리고 열었던 덮게 부분을 원래대로 닫아놓았다. 마지막으로 전원을 꽂아서 정상 동작하는지 확인시켜 주었다.

“다 됐습니다. 참고로 인덕션을 사용하신 후에는 화구 위 냄비를 들어내 주어야합니다.” 그는 립서비스가 부족하다고 느꼈는지 사용 팁을 더해 주었다. 역시 말은 서툴렀다.

“수리가 부품박스 2개 교체한 게 다네요?” “네, 그렇습니다. 고장 현상을 확인 한 결과 그 두 개의 부품을 교체하면 된다고 해서요.” “제가 보니 안에 부품이 그 두 개의 박스밖에 없던데…”

그냥 말을 끊었다. 수리비가 십사만 원이 청구되었다. 무거운 공구가방을 힘들게 들고 와서는 달랑 드라이버 한 개만 써서 부품박스 두 개 교체하고는 십여 만원을 청구하다니 너무한 거 아닌가.

“수리비가 너무 비싸네요.” “네… 위에서 정해진 비용입니다.” 역시나 말이 서툴렀다. 아니, 그는 다른 할 말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저도 위에서 그렇게 하라니까 하긴 하는데… 조금 너무하긴 합니다. 저도 명색이 엔지니어인데 뜯어서 고치면 별 거 아닙니다. 근데 회사에서는 ‘이 고장은 이렇게 해야 한다’고 프로세스화가 되어있어요. 수리비도 고정적으로 책정이 되어있고요. 근데 고객님, 사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저희들도 못 먹고 살아요. 호갱님이 양해해주세요.

그날 주머니를 탈탈 털어 수리비를 계산해 주고 나니 주머니엔 먼지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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