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자 산청지리산도서관 글쓰기 수업반.

내 고향은 경남 산청군 단성면 백곡리다. 1936년 아버지 정무약 씨와 어머니(택호가 북동댁) 사이에 3남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나를 출산하던 중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3년 정도 당숙모들이 돌아가면서 나를 키워주셨다. 아버지는 동네마다 물레방앗간을 두고 운영해서 그 당시에는 꽤 부유했다. 하지만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술로 힘든 세월을 달래며 사업을 등한시하였다. 크나큰 집안 살림과 많은 자식들을 집안어른들이 돌아가면서 돌봐주셨다. 특히 나보다 아홉 살 많던 언니는 야학을 다니면서 나를 업고 공부하러 갔고 친구들을 만날 때도 나를 업고 다녔다.

새어머니가 들어오고 집안이 안정이 되었고 나는 새어머니 손에서 자랐다. 새어머니는 자손이 귀한 집안의 외동아들에게 시집을 갔는데 자식을 낳지 못했다. 새어머니는 미안함에 남편의 새 장가를 직접 주선해주고 그 집을 나왔다고 한다. 자식을 낳지 못한 어머니는 아이들이 많은 우리 집에 오셔서 좋아하셨고 집안을 일으켰다.

우리 집이 학교 바로 앞에 있었지만 불행히도 나는 학교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었다. 오빠 친구가 학교선생님으로 있어 동생 교육을 부탁해서 학교에 가긴 했었다. 새어머니가 큰 집안 살림을 맡아 살려니 일손이 항상 부족했다. 새어머니는 일하다가 일손이 딸리면 화가 나서 부지깽이를 들고 학교에 있는 나를 찾으러 왔다. 결국 나는 학교를 그만두어야 했다. 내가 학교를 다니지 못한 더 큰 이유는 아홉 살 즈음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졌기 때문이다. 당시 새어머니는 방앗간 사업에 5명의 자식을 혼자 돌봐야 했기에 나라도 힘을 보태야했다.

산골에 있다 보니 해방이 되는 줄도 몰랐다. 학교에 다녔으면 일본말이나 한글을 배워서 해방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겠지만 난 아무 것도 모르고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 이후로 벌어진 한국전쟁으로 지리산골짜기까지도 피비린내가 났다. 이념이 뭔지 사상이 뭔지 모르는 마을사람들은 무자비한 총부리에 죽어갔다. 그런 중에도 나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서 서울로 부산으로 옮겨 다니며 정말 열심히도 살아왔다.

내가 살아온 세월을 책으로 쓰고 싶은데 나는 이제 겨우 한글을 뗐다. 마침 산청지리산도서관에서 자서전 쓰기를 한다기에 딸에게 이끌려서 등록하게 되었다. 마음속에 가득 쌓인 내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내고 싶었으나 글쓰기는 너무 힘들었다. 그러다가 좋은 방법을 찾아냈다. 내가 이야기를 하면 내 아이들이 그걸 받아 적는 거였다. 그렇게 해서 한 편 한 편 글을 완성하게 되었다.

이제 내 삶이 책으로 나온다. 작고 소박한 책이지만 나에게는 너무도 소중하고 값진 책이다. 내 아이들이 나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어서 고맙기 그지없다. 누구나 자신의 삶은 특별하고 귀하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딸이랑 글쓰기 수업에 빠지지 않고 나갔다. 의자에 오래 앉아있으려니 허리가 아프고 마스크를 써야 해서 답답했지만 출석이라도 꼬박꼬박해야 덜 미안할 것 같았다. 이런 기회를 주신 산청지리산도서관에 감사하고, 내 글을 함께 읽으며 응원해준 <지리산 행복 글쓰기> 모든 분들께도 감사드린다.

※ 정정자 님은 85세로 한글을 이제 막 뗀 분이시다. 글은 자제분이 받아 적었다.

서부경남신문  newsnur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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