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견 시인. 소나무5길문학회 동인.

시월의 마지막 날이다. 달력 한 장을 뗐다.

서른 하룻날을 매달고 있던 스프링이 종이달력을 찢어내는 소리 경쾌하다. 나도 지난 한 달을 저토록 가벼운 마음으로 보내었던가. 이제 달랑 두 장을 남겨놓은 달력이 곧 떨어질 포도나무 잎처럼 쓸쓸해 보인다. 이맘때면 누구나 자신을 들여다보며 자기 검열하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올해는 내가 속한 <소나무5길 문학회>가 스무 해를 맞는 뜻 깊은 해다. 농부가 농사를 짓듯 우리 동인들은 한 해 동안 지은 작품들을 갈고 닦고 다듬어 한 권의 동인지로 묶어왔다. 서가에 꽂힌 컬러풀한 열아홉 권의 동인지를 보면 그간의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는 않았다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해진다. 내 생애 3할이 기록된 것이기에 더욱 값지게 느껴진다.

흔히 하는 말로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되지 않는다고 한다. <난중일기>가 없었더라면 이순신 장군의 진면목이 칠천량의 파도 같은 느낌으로 마음 깊숙이 와 닿진 않았을 것이다. 지금껏 내가 기록한 것들이 종이만 낭비한 의미 없는 글이었는지 모르지만 나를 여기까지 달려오게 한 동력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그간 우리 동인들은 잠재한 창작의 텃밭에 씨를 뿌리고 가꾼 작품들로 유수 문예지로 등단을 했고 각종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한 문화소외지역을 찾아서 시화전을 열었고 지역도서관이나 문학관에서 글쓰기를 지도하는 등 문학을 통한 봉사활동에도 열성을 다해왔다, 무엇보다 오랜 세월 서로 독려하며 함께한 동인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10집도 내기 어렵다는 동인지를 20집까지 출간하게 되었으리라. 여러 동인들의 끊임없는 노고에 감사의 꽃다발을 안겨드리고 싶다.

이십 년의 시간이 엊그제인 듯 잡힐 듯 스쳐간다, 말로는 도저히 표현되지 않고 무작정 걸어 봐도 시원치가 않던 시절, 뭔지는 모르지만 가슴에 샘물처럼 꽉 차오르는 것을 써내려가던 그때의 초심으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찻집에서 차가 식는 줄도 모르고 합평회를 마치고 한밤중에 귀가하면서 부자가 되면 이런 기분일까 생각하며 돌아오곤 했다. 다시금 생각해봐도 동인들과 함께 나눈 그때의 행복감은 가을들녘을 바라보는 농부의 마음과 같으리라.

우리가 자주 만났던 그 찻집을 지날 때면 그날의 뜨거웠던 심장을 주워오곤 한다. 무성한 그늘을 만들던 포도나무 잎이 진 자리마다 드높은 창공이 자리하듯 우리가 흘린 땀으로 묶은 스무 권의 동인지가 푸른 하늘 보석으로 펼쳐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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