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정희 수필가, 소나무5길문학회 회원.

중부내륙고속도 서울 방향으로 승용차가 달린다. 평일인데도 수도권을 향한 수많은 차량들이 스쳐간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앞차 꽁무니를 지켜보던 중 나의 시선을 끄는 차량이 있다. 달리는 탑차 뒤편 사각의 문 양편에 웃는 표정의 스티커가 붙어 있는. 스티커의 웃는 표정에서 귀엽고 통통한 이미지, 호감 가는 이미지 등 다양한 얼굴 형상이 떠오른다. 차주나 운전기사가 그려 붙인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왠지 그 차량을 몰고 가는 운전기사의 따뜻한 심성이 전해진다. 모든 탑차가 다 붙인 것은 아니지만 스티커를 붙인 차를 보고 슬며시 미소가 머금는다. 누가 저런 아이디어를 내었을까. 빙그레 웃는 탑차를 만나면 반갑기도 하고 친근감도 들며 훈훈한 느낌을 받게 된다.

짐을 싣고 가는 차량에서도 그런 느낌을 갖는데 사람들의 뒷모습은 어떻게 남겨질까 싶다. 남들에게 보여지는 나의 뒷모습은 어떨까 궁금해지는 때가 있다. 갑자기 생각나는 일이 떠오른다. 몇 년 전 문학단체에서 청도 ‘아름다운 길 걷기’ 행사가 있었다. 단풍이 아름답게 물들고 낙엽이 소복이 쌓인 운문사 산책길을 걷는 행사였다. 나무 사이로 수북이 쌓인 낙엽을 밟을 때마다 나는 사각거리는 소리가 미안스러울 지경이었다.

무사히 행사를 마치고 돌아와 지인이 찍어 준 사진을 받았을 때였다. 사진 속 나의 뒷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 아름다운 풍경 속의 여러 사진 중에 구부정하니 어정쩡 걷는 나의 모습이 그 한 컷의 사진 속에 있어서이다. 늘 앞모습만 찍은 사진을 받았었는데 나의 뒷모습이 찍혀진 사진은 처음이었다. 늘씬한 뒷모습은 생각지도 않았지만 반듯한 자세로 걷는 모습이려니 했는데 이렇게 무참히 함몰된 자세일 줄이야. 큰 충격을 받고 그 후부터 가끔은 거울을 보며 걷기 연습을 하기도 하며 거리를 걸을 때는 두 무릎을 살짝살짝 스치며 걸으려고 애를 쓴다. 하지만 잠시 방심하면 나도 모르게 양다리에 힘이 풀리고 팔자걸음이 되는 것을 알게 된다. 뒷모습도 아름답게 유지하려면 매사에 신경을 쓰고 부단한 노력이 있어야 함을 사진을 통해 알게 되었다.

얼마 전 20여 년 동안 사용하던 냉장고가 고장이 났다. 내가 한창 활동적이던 40대부터 함께 보낸 사연들이 주방에 켜켜이 쌓였는데 맥이 빠진 대형 박스가 되어 뻣뻣이 서 있었다. 새 냉장고 가격을 알아보니 상상도 못하게 치솟았고 쉬이 보내기도 아쉬워 고장 난 냉장고를 보름동안이나 끌어안고 버텼다. 냉장고는 자신이 아프다는 걸 광고하는지 끄응 끙, 끊임없이 신음 소리를 냈다. 며칠을 못 들은 척 했더니 한밤중 벼락을 치듯 발악하여 폭발이라도 나는 줄 알고 깜짝 놀랐다. 두어 번 그러더니 끙끙 앓기만 했다. 그를 떠나보내던 날 아침부터 마음이 뒤숭숭했다. 내 마음 위안을 삼고자 그가 서 있던 자리며 실려가는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이십년지기로 함께 했던 떠나가는 냉장고의 뒷모습은 나에게 긴 여운을 남겼다.

어느 책의 앞표지에 실린 산길을 걷는 수도승의 뒷모습이 생각난다. 단 한 컷에 지나지 않았지만 단순하면서도 절제된 뒷모습에서 무한한 상상을 하게 만든다. 수도승의 담백한 삶이 글로써 표현되고 기록으로 남았기에 향기로운 체취가 나는지 모르겠다.

달리는 차량이나 모든 사물 자연에서조차 흔적이 남고 여운이 남는데 과연 나는 어떤 뒷모습을 남기게 될까. 반듯한 자세로 걷는 걸음새 고운 할머니의 모습일까. 뒷모습을 생각하면서 친정어머니 살아오신 반듯한 모습에 딸로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의 다음 세대를 잇는 나의 모습도 어머니다웠으면 좋겠다. 앞으로 십 년 이십 년 후의 나의 뒷모습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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