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세태는 보수나 진보나 누구라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임을 이구동성으로 이야기 한다. 사람들이 모여 앉기만 하면 나오는 것이 세상이 너무 거칠고 살벌해져 간다는 통탄이다.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끔찍한 근친 살해사건이나 수십억원 대의 엄청난 사기횡령사건이 일어나는가 하면 도둑질이나 소매치기당하는 일쯤은 이제 이야깃거리조차 되지 못할 정도로 흔한 일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의 가난한 서민층은 아직도 착하고 부지런하고 참을성이 있으며 자기의 내적 자존심을 지켜 온 우리 조상들의 슬기와 강한 정신력을 이어왔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언제 어디까지나 특히 젊은 세대가, 내적 자존심만으로 물질주의 압력을 이겨내고 정직하고 양순한 시민의 구실만을 하기를 기대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남들은 일생 피땀 흘려 벌어도 꿈도 꾸지 못할 수천억원의 이익을 남기는 아파트 건설·분양과 50억원의 돈을 2~3년 근무하고 퇴직금으로 받거나, 엄마 아빠찬스를 통해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는 특권층의 실상을 보고 좌절 아닌 울분을 토하는 것이다.

더욱 걱정스러운 일은 비단 젊은 사람이나 가난한 사람만이 아니고 이미 돈이나 권력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도 똑 같이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청와대 민정수석의 아들이 취업을 위한 자기소개서에 아버지가 민정수석이라 회사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언급은 걱정스런 사고함정이라 할 수 있다. 좀도둑질 정도는 문제되지 않을 정도로 여기는 풍조의 만연이다.

세상이 거칠어지고 인심이 각박해짐을 개탄하는 지금, 우리들의 근심의 밑바닥에는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 사이에서 죄책감 자체가 사라져 가고 있으며 잘잘못을 가리는 데 필요한 도덕적 기준 자체가 무너져 가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 지금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위기는 외적 힘의 도전에서 오는 것이라기보다는 내적·정신적 응집력의 상실에서 오는 것이 아닌가 싶다.

집값과 물가는 천정부지로 오르는데 여야 할 것 없이 선거를 의식한 당리당략과 선심경쟁만 난무한다. 먹고사는 경제문제도 공짜만 즐기고 투자는 소홀히 넘긴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제정신을 가지고 국내외 여건변화와 다가올 미래에 대비하고 당면한 문제해결을 위해 책임을 다할지 모르겠다. 양심이니 상식이니 하는 것이 빈말이 아니고 부도덕한 사람이 오히려 큰소리를 치는 사례가 없어야 한다. 위정자여, 세월을 탓하지 마오. 반성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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