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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와 다락
한우자 시인.

어릴 적 내가 가장 좋아하던 곳이 마루였다. 부모님이 논밭에 나가시면 나는 마루를 반질반질하게 닦았다. 그러면 내 마음도 나뭇결처럼 정갈하게 빛났고 동그랗게 새겨진 옹이마저 예뻤다. 중앙 여닫이문을 열면 삐걱하는 소리와 함께 풀냄새와 아카시아 향기가 풍겨나고 초록빛을 머금은 바람이 어느새 이마의 땀을 훔쳤다. 가을이면 단풍 든 나뭇잎도 좋았지만 곧 다가올 추위에 미리 겁을 내기도 했다. 아무튼 겨울만 빼고 낮에는 줄곧 마루문을 열어놓고 지낸 것 같다.

안방뒤편에도 작은 툇마루가 있었다. 툇마루에서 장독간이 보였다. 할머니는 이른 새벽 장독대 위에 정화수를 떠놓고 가족들의 안녕을 빌었고 어머니는 볕 좋은 날 장을 담그셨다. 숯과 붉은 고추를 동동 띄운 간장, 빛 고운 고추장을 볕 좋은 날 익히시던 모습이 아련하다. 갑자기 비라도 내리면 누구라도 쏜살같이 달려가 장항아리 뚜껑을 덮었다. 또 건넌방 앞 조금 높은 툇마루에는 산나물을 채반에 담아 말렸고 껍질 벗긴 감을 실에 꿰어 처마아래 주렁주렁 매달아놓았다. 그 주홍빛이 얼마나 곱던지 매일매일 침을 삼키며 말랑해지기만을 기다렸다.

마루 다음으로 좋아하던 곳이 다락이었다. 다락은 내가 동경하던 이층집의 느낌이어서 더 좋았는지도 모른다. 특히 비 오는 날 다락에 올라가 창문을 열고 빗소리를 들으면 금상첨화였다. 가끔 혼자 다락에 올라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책을 보기도 했다. 방학 때 외사촌언니가 사나흘 놀고 갈 때는 섭섭한 마음에 인사도 못 나누고 다락에 올라가 울었다.

마루가 누구나 드나드는 열린 공간이라면 다락은 주로 어머니의 곳간이었다. 자주 다락을 찾다보니 어느새 나의 아지트가 되었다. 혼자 있고 싶을 때 올라가면 어찌나 아늑한지 눕고 싶은 마음이 먼저 들었다.

어느 해 늦가을이었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다가 집에 왔는데 아무도 없어 다락을 청소했다. 꼬깃꼬깃한 봉지들을 모두 소각장에 내다버리고 묵은 먼지도 털고 걸레질을 하니 마음이 매끄러웠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어머니가 깜짝 놀라며 다락으로 달려가셨다. 고추 판 돈 20만원을 검정봉지에 넣어두었다는 거였다. 소각장을 뒤져서 돈을 찾았지만 한해 고추농사를 깡그리 날릴 뻔했던 그때 일을 떠올리면 지금도 머리끝이 쭈뼛해진다.

그 다락이 이젠 없다. 부모님 떠나시고 오빠 내외가 집을 개조했는데 불편하다는 이유로 없애버렸다. 내겐 상실감을 넘어 고향집에 대한 그리움마저 앗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 후로 한동안 나는 집에 가도 마음 둘 곳이 없었다.

왜 이렇게 마루가 좋은 걸까? 뭐니뭐니해도 자연스런 나뭇결의 편안함과 촉감 때문은 아닐까. 일찍이 나무의 매력을 알았던지 눕고 싶고 만져보고 싶고 바라만 보아도 그냥 좋다. 어릴 적 마루에 놓였던 뒤주도 아직 눈에 선하다. 마루의 품격을 높여주었던 그 묵직한 뒤주 위에는 작은 꽃병이 하나 있다. 나는 가끔 먼지 앉은 그 유리병을 씻어 마당에 핀 장미꽃을 꺾어 꽂곤 했다. 맑은 물이 담긴 유리병은 마치 나를 씻은 듯 개운하고 상큼했다. 진작 씻어주지 못한 미안함에 더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던, 내겐 가슴 속 옹이 같은 정물이다.

지금 우리 집 거실에도 그런 뒤주 하나 놓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오직 그 하나만 두어 여백의 미를 살린다면 먹지 않아도 포만감이 하늘에 닿고 여유로운 맘 우주를 품으리라. 문득 ‘텅 빈 충만’이라고 하신 법정스님 생각이 난다.

서부경남신문  newsnur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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