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희 산청가족문화센터 아이돌보미.

남편 직장에서 주5일제 근무를 실시하고부터 전국의 구석구석을 다녔다.

특히 국립공원, 도립공원, 군립공원에 속해 있는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전국 유명사찰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그러다 시간이 차츰 여유로워지면서 해외로 나갔고 전투하듯 많은 곳을 다녔다. 그 중 많은 눈물을 쏟았던 여행지 한 곳이 떠오른다. 바로 미국 그랜드캐니언이다.

새벽 세 시, 호텔을 출발한 버스는 어딘지 모를 암흑 속을 달리고 있었다. 도로 양쪽이 사막이라고 가이드가 안내했다. 버스는 세 시간 정도를 달렸다. 서서히 어둠이 걷히면서 동틀 무렵이 되었다.

버스가 멈추고 붉게 물들기 시작하는 산꼭대기에 시선이 멈췄다. 어렴풋이 뭔가가 보이기 시작했고 때마침 음악이 흘러나왔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웅장하고 애끓는 느낌으로 가슴을 뒤흔드는 연주였다.

순간 내 눈을 의심하는 장면이 펼쳐졌다. 발아래 끝없는 협곡이 펼쳐져 있고 까마득한 낭떠러지 밑으로 황톳빛 거센 물살이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 그 옆으로 끊길 듯 이어지는 좁은 길이 보였다. 지평선을 붉게 물들이며 떠오르는 태양은 협곡 구석구석을 비추고 있었다.

아름다운 모습을 뒤로하고 잠시 인디언들의 슬픈 삶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신대륙을 발견한 서구인들이 이곳에 몰려왔던 때 원주민들은 그들의 눈을 피해 깊은 저 협곡으로 숨어들었다고 했다. 아직 소수의 원주민이 물고기를 잡거나 사냥을 하며 삶을 이어 나간다고 했다. 그들의 처절했던 역사를 들으며 가슴이 아파왔다.

미국 애리조나 북부에 있는 그랜드캐니언 국립공원.

광대하게 펼쳐진 협곡은 웅장한 음악과 어우러져 내 가슴을 마구 뒤흔들었다.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터져 나올 듯 벅찬 감동이 치밀어 오르며 목울대가 뜨거워졌다.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난 누구지? 여태 나는 뭘 하고 살았지? 세상에 이런 곳이 있었구나, 이런 광대한 곳이 있다는 걸 모르고 살았네!’

거대한 자연 앞에 서고 보니 한없이 작은 내가 비로소 보였다. 별것도 아닌 일에 목을 매고 속 좁게 큰소리치며 살았던 날들이 떠올랐다. 지난날 어리석음에 대한 후회가 협곡의 물살처럼 덮치듯 나를 향해 밀려들었다.

글로 다 옮길 수 없는 감동과 황홀한 풍경을 보는 동안 지금 내가 가진 건강한 신체, 가슴으로 느껴지는 뭉클한 감정 등 새삼 내 주변의 모든 것이 고맙게 다가왔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면 품 넓은 엄마, 다정한 아내, 따듯한 이웃이 되어야지…, 온갖 생각이 뒤섞여 떠오르며 다시금 눈물을 쏟아냈다.

그랜드캐니언을 다녀온 이후로는 갇힌 사고에서 벗어나 조금씩 변화하려고 애를 썼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그날 받은 충격은 뼛속 깊이 스며들어 잊히지 않는 기억 속 여행지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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