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숙 산청지리산도서관 글쓰기 회원.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최근에 다시 읽으며 생각이 많았다. 책을 읽을 당시 나이나 상황, 그간 경험에 따라 느낌이 많이 달라진다. ‘나무’와 ‘소년’이 어린 시절부터 함께하면서 서로가 어떤 존재로 다가가는가에 대한 글이다. 아주 짧은 글인데  감동의 깊이가 지금 내 나이만큼 깊게 와 닿았다.

‘나무와 소년’ 이 둘은 어린 시절부터 아무 사심 없이 놀면서 우정이 싹텄고, 사랑했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소년은 성장하면서 돈과 집과 배가 필요했다. 그때마다 나무는 기꺼이 열매와 가지와 몸통을 내주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행복했다.

소년은 자신이 필요할 때 외엔 찾아오지 않았다. 나무는 쓸쓸함을 다독이면서 소년을 기다릴 뿐 원망의 마음은 없었다. 세월이 흘러 소년은 더 이상 세상에 대한 야망이 꺾였는지 아님 원하는 바를 이뤄보니 허망해서인지 나무를 찾아온다. 밑동 밖에 남아있지 않아 오히려 미안해하는 나무에게 소년은 그저 앉아 쉬고 싶은 마음으로 찾아왔노라 한다. 나무는 기쁘게 자리를 내어주었고, 그 또한 행복했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소년이 이기적이다 생각되어 싫었다. 그런 소년에게 화내지 않고 아낌없이 주면서도 행복해하는 나무를 받아들이기도 힘들었다. 내가 성인이 되어 가정을 이루고 남편과 아이들을 열심히 뒷바라지하면서도 내 의식은 여전했다. 때로는 내가 주는 만큼 돌아오지 않는다고, 나도 사랑받고 싶다고, 내가 부족해도 이해해주고 따뜻이 보듬어주면 안 되느냐고 원망을 많이 했다. 아마 내게도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절실히 필요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러다가 문득 어제의 내 의식이 살짝 뒤틀어지는 순간이 있었다. 받으려고만 하는 대신 내가 그들에게 ‘그런 나무’가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내게 힘들다고, 외롭다고, 함께 갈 친구가 필요하다고하면 분석하고, 비판하는 대신 아낌없이 들어주며 괜찮다고, 다들 그렇게 흔들리며 사는 거라고, 네가 정상이라고 인정만 해보자고.

강한 바람보다 따뜻한 햇볕이 겉옷을 벗게 하듯이 상대를 오롯이 받아들여 주는 것만이 ‘너’에게 다가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아닐까.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보니 바뀌게 되었다.

내가 가장 소중한 만큼 남도 나와 똑같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걸 안다. 서로 손잡고 가는 세상살이지 누가 누구를 위해 사는 세상이 아니었다. 각자마다 고유의 빛나는 세계를 지닌 멋진 존재들이다.

최근에 본 ‘나의 해방일지’라는 드라마 한 장면이 떠오른다. 한 죄수가 마약사범으로 사형을 언도받았는데 죄 없는 다른 친구가 오로지 우정 하나로 친구 무게를 덜어주려고 감옥에 들어갔다. 결국 사형을 받게 되자 그 장면을 목격한 친구가 창살에 대고 이렇게 소리친다.

‘나 여기 있어!’

세상에 나 혼자라는 생각이 얼마나 인간을 외롭게 할지, 지켜보는 친구는 알았으리라. 죽어가는 친구 역시 감사의 눈물로 생의 부끄러움을 덮었겠지.

아무나 ‘그런 나무’가 될 수 없다는 걸 안다. 마음가운데 ‘그런 나무’ 하나 심어놓고 보듬으며 잘 가꿔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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