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윤교 수필가.

무색 매니큐어 바르는 남자가 있다. 육십 중반이 된 나이에 네일숍에 가는 이유가 궁금하다. 본인에게 물어봐도 좀체 입을 열지 않는다. 빙긋이 웃음 띤 얼굴에서 여유가 엿보인다. 답답한 당신들이 알아 맞춰보라는 투다.

동네 어귀에서 마주친 그에게 아주머니들이 전처럼 질문을 했다.

“남자가 뭣 때문에 손톱을 관리해요? 여자인 우리도 매니큐어 바르는 일이 쉽지 않은데.”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 자신의 손톱을 지그시 바라보며 다소 무겁게 말을 이어갔다. 자신의 전직이 음식물쓰레기를 치우는 일이었다고 하면서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 일과 손톱 관리가 무슨 연관이 있는지 얼른 연상이 되지 않았다. 그 일을 스스로 극한 직업이라고 생각했기에 오랜 세월 고생한 손에게 주는 자신의 선물이라고 하였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자신과 함께 춤을 추는 상대 여성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했다. 여러 사람들이 깜짝 놀라는 눈치였다. 춤이라는 말에 동네 아주머니들이 수군수군 거렸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을 남자가 스스럼없이 말해 뜻밖이었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그의 체격이 춤을 잘 추는 사람들의 외형을 얼추 갖추고 있었다. 어두침침한 조명 밑에서 묘령의 여성과 춤을 추는 그의 모습이 머릿속으로 그려졌다. 모두들 같은 상상하고 있었던 걸까. 일부 아주머니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상황이 이상스레 전개되었다. 재미있다는 듯 박수 치는 사람들과 쯧쯧 대며 못마땅해 하는 사람들로 의견이 갈렸다. “독신 생활의 스트레스도 풀 겸 콜라텍에 다니는 게 뭐가 어때?”라며 그 남자의 역성을 드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제야 아무도 그 말에 토를 달지 않았다.

그 남자는 늦깎이 자신을 살뜰히 챙기는 사람이 되었다. 지금이 인생의 최고 황금기라며 연신 기염을 토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이가 나름대로 재미있게 사는 사람이라 여겨졌다.

내 두 손을 본다. 나 역시 신체에서 가장 혹사당한 부위가 손인 것 같아 무르춤해진다. 내 손은 젊었을 때부터 뼈대가 세고 커서 곱지 않았다. 하여 지금까지 늘 애꿎은 바셀린만 꾸역꾸역 축내고 산다.

매니큐어 바르는 남자. 그는 지금 자기애가 충만한 사람이 됐다. 평생 험하게 수고한 자신의 손에 대한 보상이 매니큐어인 셈이다. 그러고 보니 이 남자도 나도 손에 대한 열등감이 마음 한구석에 오롯이 깔려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매니큐어를 바르는 의도 역시 그런 점에 기인한 것이리라. 갈퀴 같아진 내 손을 어떻게 보상해줘야 할지 생각해 본다. 이제껏 고생만 시켰으니 나도 이참에 네일숍에나 한번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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