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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 ‘극단입체’ 40년… 한국연극계 결실과 미래 담아낸다이종일 연출가 “연극인생… 지금 돌아봐도 잘한 것 같다”

거창국제연극제 산파 ‘극단입체’
1983년 7월 첫 공연 ‘안티고네’
지역문화예술 공간의 핵심역할
거창이 연극도시로 변모된 원천

아비뇽페스티벌에 6회 공연초청
민간외교사절단으로도 역량발휘
한국문화예술위 ‘우수극단’ 선정

이종일 연출가는 지난 2020년 8월 경남문화예술진흥원 출판 지원으로 그동안 연출했던 작품 등을 모은 첫 희곡집 <조선료리집, 판문점> 출판기념식을 열었다.

국내 최대의 야외연극축제인 거창국제연극제의 산파 역할을 한 ‘극단입체’가 내년이면 창단 40년을 맞이한다. 1983년 7월 창단해 지금까지 260회의 공연을 무대에 올렸다. 연극을 향한 집념이 없었다면 결코 이뤄낼 수 없는 숫자이고 시간이다.

이종일 연출가는 낮에는 거창 대성중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교사생활을 하다가 밤에는 극단에서 공연 연습을 하면서 지역 내 교사들과 공무원, 직장인 등 연극에 관심이 있었던 인사들과 함께 극단입체를 창립해 거창문화공간의 핵심역할을 했다.

극단입체는 1989년 경남지역 연극인들의 화합과 소극장 활성화 운동의 일환으로 ‘시월연극제’를 개최했으며, 이후 시월연극제는 전국화를 시도해 5회째인 1993년 2개의 해외극단이 참여하면서 거창국제연극제로 확대됐다.

이종일 연출가는 거창국제연극제 집행위원장으로서 뿐만 아니라 연출가로서도 80여편의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또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거창겨울연극제, 전국에서 유일한 대학 경연페스티벌인 거창전국대학연극제, 어르신들을 위한 거창실버연극제를 만드는 등 한평생 연극에만 전념했다.

특히 연출가로뿐만 아니라 극작가로도 작품에 집중했는데 그의 희곡작품은 대체로 세 갈래로 나눠진다. 하나는 가족사에서 관통되어 온 일제강점기와 분단시대의 이데올로기 폐해, 다른 하나는 집단권력의 제도와 폭력에 희생되는 개체의 사회적 비극성에 대한 연민과 휴머니즘, 나머지는 물신주의에 종속되는 허약한 인간성에 대해 그렸다.

그는 현재 극단입체의 40년 공연미학과 흐름이 담긴 극단사(史)를 준비하고 있다. 곧 완성이 될 이 책이 나오면 한국연극계의 큰 결실이 아닐까 기대된다. 극단입체는 세계적인 연극축제인 프랑스 아비뇽페스티벌에 무려 6번이나 초정되어 공연을 했으며, 2015년에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부터 ‘우수극단’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리고 거창국제연극제에 대해서는 전문기업처럼 경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말로만 이비뇽이니 에든버러니 하지 말고 실행을 해야 한다”며 “관광객 100만명을 유입하면 경제유발효과가 3000억원이 넘어선다”고 밝혔다. 또 극단입체의 민간외교사절단으로 위상도 강조했다.

이종일 연출가는 “극단입체의 활약으로 거창국제연극제, 사계절연극제가 탄생되고 깡촌 거창이 연극의 도시가 된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며 “그동안 함께 한 동지들에 대해 고맙다”고 말했다. 연극에 전념하겠다고 했을 때 주변 교사들이 미쳤다고 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잘한 것 같다”는 그의 말 앞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지난 2010년 프랑스 파리가을축제 초청작으로 참가한 극단입체의 ‘‘해피! 오 해피!’.

- 요즘 근황이 어떠신지요.

“극단입체 40주년을 맞아 <극단입체 40년사> 책을 출판준비 중에 있고, 기념 공연도 준비하고 있어요.”

- 무슨 공연을 준비하시나요.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극작가인 오태석 선생님의 ‘어미’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 언제 어디서 막을 올리세요.

“이번 달 26일 27일 양일간 거창연극학교 장미극장에서 막을 올립니다.”

- 여전히 연극 일에 매달려 계시네요. 극단입체가 창단된 지 40년이 되었습니다. 입체를 실질적으로 이끌어 오신 소감이 어떻습니까.

“40년 동안 260회의 공연을 했더군요. 시간이 주마등같이 너무 빨리 지나가는 것 같아요. 극단이 40년 동안 버티고 있는 것이 자랑스러워요. 사실 대도시에서도 40년 된 극단이 많지 않아요. 하물며 깡촌에서 깡으로 버틴 것 같아요. 거창역사상 처음으로 창단된 극단입체의 활약으로 거창국제연극제, 사계절연극제가 탄생되고 깡촌 거창이 연극의 도시가 된 것에 자부심을 느껴요. 힘들었지만 후손들에게 할 일을 했다는 자부심으로 가슴이 벅찹니다. 그동안 저 때문에 고생한 연극동지들이 고맙기도 하고요.”

- 농촌 군지역에서 극단을 창단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요.

“1980년 9월 2일, 대성중학교에 영어교사로 와서 보니 거창의 문화환경이 도시에 비해 너무 열악하더군요. 문화를 경험하지 못하고 자랄 학생들이 측은했고요. 대학극회 출신인 제가 거창에 할 수 있는 일은 극단을 만들어 연극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죠. 동료 교사 등 몇 사람을 끌어 모아 1983년 7월 19일 극단입체를 창단했어요. 그 당시 거창에서 배우 구하기가 매우 힘들었어요. 대학휴학생, 방위병, 간호원, 심지어 고등학교 3년생들을 모아 소포클레스 작 ‘안티고네’ 공연을 지금은 없어진 거창극장에서 역사적인 막을 올렸죠. 눈과 코만 붙은 사람들을 데리고 연극을 한 것이죠. 하루를 두 번 살았어요. 낮에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밤에는 연극 연습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아찔해요.”

- 학교는 언제 그만두셨어요.

“1996년 10월 30일, 늦깍이로 일본에 유학가면서 그만두었어요. 학교 교사는 할 사람이 많은데 연극은 밥 굶어 죽으니까 할 사람이 별로 없잖아요? 결단을 한 거죠. 연극에 전념하겠다고요. 주변 교사들이 저보고 미쳤다고 했어요. 지금 돌아보면 잘 한 것 같아요.”

- 시골에서 단원은 어떻게 확보를 하셨나요.

“맨땅에 헤딩을 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생면부지의 사람을 한명 두 명씩 만나 술 마시면서 끈질기게 설득을 했어요. 그러다보니 어떤 날은 밤이 새도록 연극얘기를 하게 되는 거예요. 눈 딱 감고 무조건 공연을 지속적으로 하니까 배우들이 하나 둘 축적되기 시작했고 주변에 계시는 교사들이 스텝으로 동참을 하셨어요. 결국 공연에 참여하면서 극단입체의 단원이 된 셈입니다. 지금 알려지고 잘나가는 연기자도 많아요.”

- 지금 거창문화센터 공연장이 세워지기 전에는 입체예술극장이 거창공연문화의 코어 역할을 했었죠.

“1983년 극단을 창단하고 공연은 주로 예식장을 이용했고 지금의 사회복지회관 위치의 농민회관에서 했어요. 그러다가 1987년 10월, 이덕형한의원 3층에 40평 규모의 입체예술극장을 단원들이 손수 벽돌 나르고 나무 자르고해서 만들었어요. 꿈같은 보금자리였어요. 단원들이 상주할 공간이 생기니 밤낮으로 연극연습만 했죠. 1992년 11월에 지금은 없어진 중앙빌딩 5층, 80평으로 극장을 옮겼어요. 제대로 갖춰진 소극장이었어요. 거창이 생기고 첫 공연장다운 공연장으로 문화센터가 생기기전까지 거창문화공간의 핵심 역할을 했어요.”

- 그래서 거창국제연극제의 전신인 시월연극제가 입체예술극장에서 개최되었습니까.

“네, 그렇죠. 이덕형한의원 3층이 입체예술극장이었어요. 그 당시 경상남도연극제가 경연에 매달려 부작용이 벌어지자 경상남도에 있는 다섯 개 극단이 순수한 연극페스티벌을 지향하며 ‘시월연극제’를 만들었는데, 경남지역을 돌아가며 개최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다른 지역의 연극기반이 허약하다보니 자연히 거창에서 개최되는 연극제가 된 것이죠.”

거창국제연극제에서 거리 공연의 진수를 보여준 독일 스타피큐렌.

- 결국 거창에서 극단입체가 전적으로 거창국제연극제를 탄생시켰군요.

“그렇게 된 셈이에요. 거창국제연극제의 브랜드가 거창을 연극도시로 변모시켰죠. 극단입체가 거창국제연극제를 탄생시키고 발전시켰으니. 1983년 극단입체가 창단되고 40년이 된 이 시점에 문화의 불모지 깡촌 거창이 연극도시로 변화된 것은 사실 극단입체의 공(功)이죠.”

- 30년간 거창국제연극제를 이끌어 오셨는데.

“한국연극계에서는 산골 거창에 국제연극제가 들어서게 된 것을 혁명적인 일로 기적이라고까지 이야기해요. 거창이 연극도시가 되어 보람은 있지만 거창의 연극동지들이 고생을 많이 했죠. 말없이 따라와 준 동지들과 도와주신 군민들에게 고마울 뿐입니다. 연극제가 세계적인 축제로 발전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 30년을 이끌어 온 집행위원장으로서 거창국제연극제가 세계화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2007년에서 2013년까지는 거창국제연극제가 최고로 번창한 시기였어요. 유입관객이 20만명이고, 경제유발효과가 480억원이 되었죠. 군에서 예산을 지원하고 집행위에서 축제를 경영하는 민, 관의 황금비율의 조화력이 낳은 결과로 봐야죠. 그런데 국제연극제를 군으로 흡수하기 위한 문화재단 졸속 설립부터 거창국제연극제에 적신호가 켜지기 시작했어요. 예산을 지원하지 않으니 자연히 집행위가 여력이 빠져 빚더미에 앉게 되었고 결국은 상표권을 군에 이전하게 되었어요. 집행위원장으로 반평생을 보낸 만큼 국제연극제에 대한 애정은 여전히 각별합니다. 애를 낳은 부모의 심정이죠. 애가 잘 되기를… 축제는 전문적인 조직체, 예산, 콘텐츠가 핵심입니다. 예술감독 등 전문가들로 구성된 거창국제연극제의 ‘독립전문법인체’를 설립해야 합니다. 시급합니다. 국제연극제를 발전시키는데 흰 고양이, 검은 고양이가 어디 있어요? 다 같이 힘을 모아야죠. 지금의 아마추어 문화재단 시스템으론 향토연극제로 전락할 위험성이 다분합니다. 파격적인 예산이 투입되고 세계적인 공연단들이 초청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군에서는 유입되는 타 지역 관람객을 위한 숙박시설을 확충해야 합니다.”

- 올해 연극제에 해외공연이 빈약해 국제연극제의 국제가 무색해졌습니다만 해외공연 초청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좋은 작품에 많은 관객이 몰리는 것은 원리이고 상식입니다. 연극은 유명한 연출가가 만든 공연을 초청하면 흥행이 따라오는 것이죠. 독일의 팀 에첼, 미하엘 탈하이머, 리미니 프로토콜 연출가, 러시아의 예브게니 그리쉬코베츠 연출가, 이탈리아의 죠르죠 스트렐러, 피콜로 테아트로 연출가, 미국의 리 부루어, 캐나다의 로베르 르빠주 연출가, 영국의 데클란 도넬란, 케이티 미첼 연출가, 프랑스의 매르쉬 연출가, 일본의 미야끼 연출가 등이 현시대 세계연극을 움직이는 연출가 그룹인데, 해마다 이 연출가들의 작품이 한두 편은 초청되어야 퀄리티 있는 국제연극제가 되겠죠. 국내공연작품도 퀄리티가 있는 작품을 콜해야 합니다. 작품을 선정하는 시각이 있어야죠.”

- 예산은 어떻게 되어야 하죠.

“현 예산 규모로는 연극제를 세계화하기 어려워요. 유명한 축제는 정부나 지자체의 예산과 기업들의 스폰서가 대단하죠. 거창국제연극제도 50억원 정도가 지원되어야하며 점진적으로 100억원 정도가 되어야겠죠. 100억원 투자해서 3000억원의 수입을 확보한다면 할 만한 사업 아닌가요? 지자체는 주민들의 생활을 풍요롭게 해줄 책임이 있어요. 문화산업이라 일컫는 지역문화경제를 위해 투자를 과감히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미래비전을 제시해야죠.”

- 문화산업적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계신데.

“굴뚝 산업시대가 도태하고 상상과 창의의 문화시대가 도래했잖아요. 헐리웃 영화감독 스필버그감독의 ‘쥬라기 공원’ 영화수입이 현대차 100만대와 맞먹는다고 하잖아요. 한국이 낳은 BTS(방탄소년단)가 벌어들이는 수입도 천문학적 숫자입니다. 아비뇽페스티벌로 벌어들이는 관광수입이 아비뇽시 예산의 60%가 돼요. 이제 자연이 청정한 거창에서 거창국제연극제로 인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해야 됩니다. 관광객 100만명을 유입하면 경제유발효과가 3000억원이 넘어요. 소비성 연극제가 아니라 생산적인 연극제가 되어야겠죠. 이것이 바로 문화산업으로의 연극제입니다. 그러니 거창국제연극제를 전문기업처럼 경영해야 합니다. 프랑스 아비뇽이나 영국의 에든버러같이 말입니다. 거창국제연극제는 미래 거창의 블루오션이고 먹거리의 보고입니다. 말로만 아비뇽이니 에든버러니 하지 말고 실행을 해야 합니다. 후발주자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가 밀양시장의 전향적인 정책으로 거창국제연극제를 따라잡으려고 하잖아요.”

- 극단입체가 아비뇽과 거창의 자매결연을 위한 민간외교사절단으로 활약을 했다던데.

“극단입체가 아비뇽페스티벌에 일곱 번 참가를 했어요. 한국의 극단에서 유일하게 최다 참가한 극단이죠. 아비뇽시에서도 한국보다는 거창을 더 많이 알고 있는 실정이고요. 2000년도 ‘초분’을 가지고 아비뇽페스티벌에 참가하면서 아비뇽시와 거창과의 자매결연을 위해 민간외교사절을 해서 성과를 이루어냈는데 준비과정에서 거창군과 아비뇽시의 문화적 차이로 안타깝게도 결렬되었어요. 그때 자매결연이 성사되었으면 거창과 거창국제연극제는 벌써 세계화되었을 겁니다. 이처럼 극단입체의 아비뇽 참가는 산수급수적인 정량적 효과가 아닌 기하급수적인 정성적 효과가 나타났어요. 거창국제연극제가 단시간에 세계에 두각을 나타낸 것도 아비뇽페스티벌에 여러 번 참가한 극단입체의 여파가 컸기 때문이에요.”

- 왜 지금은 극단입체가 아비뇽 페스티발 참가를 안 하고 있어요.

“극단입체가 아비뇽에 참가할 때는 군에서 항공비를 일부 지원해주었는데 그 예산이 삭감되고 난 뒤부터 못 갔어요. 11억 예산의 국제연극제에 비하면 항공비 지원은 3000만원 정도였어요. 지금도 거창국제연극제를 살리려면 극단입체가 아비뇽에 참가해서 거창을 홍보하고 유명한 해외극단을 섭외하고 초청하는 작업을 해야 해요. 문화시대에 군과 군의회에서도 극단입체의 활약을 알아야 합니다. 아비뇽 페스티벌에서 극단입체 위상은 아비뇽에 참가한 한국극단에서 최고로 봅니다. 자주 참석해서 좋은 작품을 선보였으니까요.”

지난 2020년 이종일 연출가의 희곡집 출판기념회 모습.

- 극단입체의 활약으로 거창이 연극도시가 되었다고 볼 수 있겠네요.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사실이니까요. 연극의 도시를 일으켜 세운 극단입체는 거창연극의 자존심이잖아요. 군에서 관심을 갖고 극단입체를 성장시켜야 된다고 봅니다. 거창국제연극제는 보이는데 거창의 연극이 보이지 않으면 말이 되겠어요?”

- 극단입체 40년사 책을 출판 준비 중이신데.

“극단입체 40년의 공연미학과 흐름이 고스란히 담긴 극단사(史)가 될 것입니다. 그동안 동거동락을 했던 배우들, 스텝들과 귀중한 자료를 나누고 싶고 또한 극단입체를 사랑하신 관객들에게도 드리고 싶어요. 40년의 극단사를 출판하는 한국의 극단도 거의 손꼽히는 정도가 아닐까 싶어요.”

- 극단입체의 미래계획은.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해 마켓에서 판매를 하듯이 공장이 살아야 제품이 잘 나오는 것이 아니겠어요? 극단은 공장처럼 연극작품을 생산하는 곳으로 관객을 위해 출중한 작품을 창작해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어요. 외양 무늬만 연극도시가 아니라 거창연극학교를 통해 훈련된 배우들을 양성해서 연극도시답게 거창의 연극이 세계화 되도록 극단입체의 창작력을 고급화하는데 집중해야죠. 아울러 아비뇽페스티벌에 지속적으로 참가하여 연극도시 거창과 아비뇽이 교류되고 거창국제연극제를 홍보하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합니다. 폐석장을 활용한 야외 공연장을 극단입체의 전용극장으로 만들고 싶어요.”

- 마지막으로 연극을 왜 하세요.

“인간을 창조하고 인생을 사랑하는 진선미의 계시가 있어요, 연극은.”

 

거창 깡촌에서 꽃피운 ‘극단입체’

지난 2005년 주프랑스한국문화원 초청으로 연극 공연에 나선 극단입체 단원들.

‘극단입체’는 행동 감각이 선명한 동부 기질의 강한 토양 위에서 인간의 원형을 꾸준히 탐구해온 극단이다.

1983년 7월 19일 창단되어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260여편의 국내공연과 20차례의 해외공연을 해 오고 있다.

단원구성은 정단원 45명 준단원 32명에 이르며 스타중심의 연극보다는 집단적 공동작업을 중시하며 창조, 실험, 개척정신을 바탕으로 공동 창작 작업에 임한다.

공연의 완성도를 도모하고 연극단체의 역량을 심화시켜 우수한 공연으로 완숙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기위해 년 중 3차례의 정기공연을 가지고 있다. 또한 아동들의 건강하고 탄력 있는 창의력을 함양하기 위한 어린이연극교실 및 아동극공연인 어린이연극제와, 청소년들의 연극활동을 권장하여 창의적 사고를 증진시키고 협동심을 함양 전인교육의 현장으로 활용하는 학교간의 연극 활동교류를 위한 청소년연극제를 한데 묶어 매년 겨울연극제를 개최하고 있다.

그리고 세계의 연극 흐름을 한 눈에 파악하고 세계의 연극인들과 연극공연을 통하여 한국의 예술적 혼과 한국의 정서를 관객들에게 심화 시켜주기 위한 프랑스 아비뇽연극제를 비롯한 폴란드, 일본, 중국 등 다양한 각국의 국제적인 연극제에 참가하고 있다.

이와 같이 극단입체는 연극 작업과 축제를 통해 연극예술을 부흥시키며 세계적 문화예술 흐름의 주도적 극단으로서 사명감을 다하고 있다.

 

 

 

이영철 기자  achimstor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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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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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학동 2022-12-27 13:53:55

    문화 불모지와 같은 농촌에서 뿌리내린 거창연극제는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고생하셨고, 부디 계속 관심 갖고 조언해주시길 바라겠습니다.   삭제

    • 관객 2022-12-26 23:04:54

      거창군민이 키운 국제연극제 상표권 팔아서 한밑천 잘 챙겼다는 소문이 있던데....   삭제

      • 거창군민 2022-12-26 22:02:29

        오늘날 거창국제연극제를 있게한
        이종일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거창과 대한민국의 연극을
        이끌어 주십시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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