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윤교 수필가.

나무의 재질은 모른다. 처음에는 원목 색감 그대로였는데 시간이 감에 따라 점점 치자 빛을 띤다. 안방 장롱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일찌감치 내쳐진 사방탁자. 외딴방 윗목에 자리 잡고 있은 지 어언 이십 년이 넘었다.

세월의 더께가 앉더니 묘한 기운마저 풍긴다. 고색창연하지는 않지만 묵은 내가 제법 난다. 이제는 나뭇결마저 색에 묻혀 보일락말락하다. 한 층에는 자잘한 도자기 소품이 놓여있고 아래는 수석이 자리 잡았다. 제일 밑에는 작은 경첩이 달린 문이 두 개 맞물려 있다. 황동으로 된 경첩은 소담하여 정감이 있다.

사방탁자의 원래 주인은 ‘희야’다. 그 사방탁자가 나에게 오기까지는 그녀의 남다른 사연이 숨어있다. 그녀는 아픈 엄마 병구완을 하느라 혼기를 놓쳤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에는 홀로된 아버지와 함께 살며 결혼은 저만치 밀쳐뒀다. 아버지의 치매 증상이 심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녀를 좋다고 하는 사람이 없지는 않았다. 집안 사정을 생각한 나머지 스스로 희망의 끈을 놓아버린 것이다. 자기 의지대로 결정한 길이지만 막막하고 외로워서 더러는 눈물을 흘렸으리라.

아버지 병구완은 오롯이 그녀 몫이었다. 세월이 흘렀고 또 아버지를 떠나보냈다. 집 한 채 남아 있었으나 그것마저 남동생이 저당 잡힌 뒤였다. 사업자금 보탠다고 그녀의 돈마저 다 들어간 상태였다. 그녀는 뒤늦게 생계를 위해 집을 나서야만 했다. 그녀는 세상을 달관한 사람처럼 살았다. 욕심을 다 놓아버리고 허허 웃던 그녀.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매사가 거침없었다.

어느 날, 그녀 친언니한테서 전화가 왔다. 대화를 하다가 그녀는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해거름이 다 되어서야 겨우 한다는 소리가 “총각이면 다냐고”라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녀가 탐탁지 않게 여기면서도 맞선을 보러 가기는 갔다. 제일 아끼던 옷을 입고 나갔던 걸 보아 언니의 체면을 고려해서 최소한 예를 갖춘 듯했다. 그녀에게 들은 바로는 노총각 직업이 목공예가였다. 한쪽 다리를 저는 게 흠이라면 흠이었으며 꽁지머리를 한 사람이라고 인상을 얘기해 주었다.

사방탁자는 그 공예가의 작품이었다. 그녀가 몇 번이나 사양했는데도 집으로 보냈다고 들었다. 부담 갖지 말라 했다지만 그녀는 사방탁자가 부담스러웠다. 청년에 대한 마음은 좀체 바뀌지 않았고 가구는 무거운 짐짝이 되어 그녀를 짓눌렀다.

어느 날 그녀가 내게 말했다. “언니, 저거 마음에 들면 가져가” 나는 깜짝 놀라 그녀가 내 마음을 꿰뚫어 보는 게 아닐까 싶었다. 내가 사방탁자를 좋아하는 걸 느꼈던 걸까? 하긴 시간만 나면 사방탁자를 자주 쓰다듬었던 것을 부인할 수 없었다. 눈치 없이 굴었다 싶어 속내를 들킨 것 같아 대답을 바로 하지 못하였다. 사방탁자는 미색 나뭇결을 자랑하며 그렇게 내게 왔다. 비록 안방에는 진입하지 못했지만, 외딴방이라도 차지해서 다행이었다. 다음 날부터 그 방 문지방이 닳도록 들락거렸음은 물론이다.

그녀는 후에 나이 지긋한 사람과 짝을 이뤘다. 아내와 두 자녀가 먼저 세상을 떠난 혈혈단신인 사람이다. 줄곧 식구 단출한 사람만 찾더니 원을 이룬 셈이다. 그녀의 밝은 성격이 외로운 배우자에게 빛처럼 다가갔을 게 뻔하다. 목공예가 청년은 지금쯤 결혼을 했을지 사방탁자를 볼 때마다 궁금하다. 비록 희야와 인연은 맺지 못했지만 아마 좋은 사람을 만났을 것 같다. 그가 만든 사방탁자를 볼 때마다 마음속으로 잘 되길 빌어주었으니까.

세월이 흘러 이제 사방탁자를 원래 내 것인 양 여기며 산다. 가구에 얽힌 우여곡절은 시간과 더불어 묻히고 지금은 외딴방 지킴이 노릇을 하고 있다. 웬만하면 고색창연해질 때까지 곁에 두고 볼 참이다. 그때 엉겁결에 받기는 했지만, 못다 이룬 청년의 애정이 스며있어 그런지 가끔 옛일이 슬며시 떠오른다. 사방탁자가 오늘따라 더 홍조를 띠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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