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애 산청군 시천면 마근담마을.

어린 시절 나의 보물은 ‘종이학 천 개’였다.

부모님이 주신 용돈으로 먹고 싶은 과자 사먹는 것도 마다하며 색종이를 사서 몇날 며칠을 접은 종이학! 학교 다녀오면 책상 위에 놓인 종이학 상자를 엎어서 혹시 한 개라도 날아갔을까 봐 세어보고 또 세어보며 보물단지처럼 소중히 여겼다. 학교 공부를 그렇게 정성 들여서 했더라면 지금쯤 내 인생도 달라졌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는 누가 뭐라 해도 종이학 천 개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줄 수 있다는 그 기쁨으로 빛났던 보물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유치하고 우스운 일이지만 그래도 그때는 그랬었다.

흘러가기에 세월이라 했던가.

결혼하고 ‘첫’이라는 단어가 주는 설렘과 기쁨으로 첫 아이를 낳았다. 하지만 기쁨도 때로는 힘듦으로 바뀌었다. 밤에 잠을 자지 않고 울며 보채는 아이를 업고 달래려 밤새 골목길을 왔다 갔다 했던 난감했던 날들이 있었다. 아이를 키운다는 녹록지 않은 어설프고 낯선 일들로 밤과 낮을 새면서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날들을 무수히 보냈다.

하지만 엄마라는 이유로 힘들었던 일들은 금세 잊히고 오로지 아이로 인한 기쁨과 행복이 더 크게 남았다. 누가 잡으면 날아갈 새라 불면 꺼질 새라 보물단지처럼 껴안고 쓸고 닦았다. 그랬던 그 보물단지는 어느새 요즘 말대로 남의 아들이 되었다. 전화 한 통화하는 일도 신경 써서 해야 하고 밥 잘 먹고 다니냐는 말도 눈치 봐가면서 물어야 한다.

괜스런 말로 아이들 마음 상하게 할까 봐서 그렇다. 세상이 변하고 아이는 내 곁을 떠나 각자의 길을 가고 있지만, 누가 뭐래도 내 아이들은 영원한 나의 보물이다.

박경리 선생의 시집 ‘옛날의 그 집’에 이런 시가 있다.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편안하다”

이 시를 읽으면서 눈물 나게 공감되는 것은 어느새 나도 그 길 위에 올라서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고 보면 젊은 시절 나는 어서 나이를 먹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 했었다. 그때는 사는 것이 힘들고 버거워 어쨌든 나이가 들면 지금보다는 편안한 내가 되어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 때문이었던 것 같다.

누군가는 나이듦을 준비해야 한다고 하지만 산다는 것이 그리 만만하던가. 눈앞에 떨어진 것들 주워 담아 쓸고 닦고 하다 보니 어느새 귀가 순해진다는 이순(耳順)이다. 이제 그 이순도 넘어 몇 개 더 주워 담은 나이가 되었다. 그래서 지금이 좋다.

내가 젊은 시절에 기대했던 것처럼 어떤 걸림도 없이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고 박경리 선생님 말씀처럼 하나하나씩 버리며 사는 지금이 가벼워서 좋다.

세월의 무게만큼 나이도 몸도 무거워지긴 했지만, 마음은 하늘을 훨훨 날아다닐 만큼 가볍고 어떤 것에도 걸림이 없는 자유로운 지금, 나이 든 지금이 지금의 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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