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설아 산청 방목리, 전직 초등교사.

단성고등학교를 지나 방목마을로 들어오는 입구 우측에는 구불구불 경호강이 흐르고 있다. 보기만 해도 시원함이 느껴지는 초록빛 맑은 물과 지리산부터 굴러굴러 먼 여행 온 돌들이 자기만의 개성을 살린 옷을 입고 있다. 돌이라고 다 같지가 않다. 색깔과 모양, 돌에 새겨진 무늬가 제각각으로 자신만의 얘기를 들려주는 것 같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어디서부터 왔는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상상해 보게 된다.

경호강 물 색깔도 사철 다르게 흐른다. 봄에는 유채꽃 닮은 노란색이라면 여름에는 짙푸른 녹음의 초록빛이 된다. 가을엔 울긋불긋 단풍이 들고 겨울에는 방목의 하늘이 내려와 푸른색이 된다.

경호강에서의 또 다른 재미는 다슬기 잡기이다. 올봄 유난히 가뭄이 심한 탓에 수량이 많이 줄어 다슬기 잡기가 쉬워졌다고 했다. 물속에서도 사용이 편한 신발과 옷을 준비하고 다슬기 잡는 통도 준비했다. 물속이 춥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강물은 장작불을 지펴 데워놓은 것마냥 따뜻했다. 다슬기 잡는 통을 현미경 들여다보듯 눈에 가까이 붙이고 물속을 들여다보았는데 다슬기는 보이지 않았다. 돌을 뒤집었더니 몇 마리씩 보였다. 보물찾기하듯 조심스레 돌을 뒤집고, 행여 물결에 떠내려갈새라 조심스레 건져 올렸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잡다보니 제법 되었다. 싹싹 문질러 씻고 밤새 담가두었다. 다음날 아침에 소금을 조금 넣고 물을 팔팔 끓여 다슬기를 삶았다. 초록물이 진하게 우러났다. 바늘로 까서 우려낸 물에 넣고 국을 끓였다. 부추와 땡초를 고명으로 얹어 먹으니 그야말로 별미였다. 방목에서의 재미가 더해지는 순간이었다.

집 마당에 서서 고개만 돌리면 눈앞으로 석대산이 펼쳐진다. 사시사철 변화하는 모습과 그 위에 펼쳐지는 푸르디푸른 하늘색에 매료되어 방목으로 이사를 결정했다. 가끔씩 석대산을 오르곤 하는데 송이버섯이 나오리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지난해 추석 즈음, 형님이 송이 다섯 개를 따서 맛보라고 두 개를 주고 가셨다. 저녁에 깨끗이 씻은 송이를 잘게 잘게 찢어 소금 살짝 넣은 참기름장에 찍어 먹었다. 자연에서 자란 송이 향이 먼저 강하게 코를 자극하고 입안에서 춤을 추며 목 안으로 타고 내려갔다. 방목에서만 느끼고 맛볼 수 있는 송이 향이었다.

사철 자연의 변화를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시골생활에 차츰차츰 재미를 붙이며 살고 있다. 텃밭에 심어놓은 상추, 고추, 가지, 오이가 키를 키우고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어가는 모습은 마냥 예쁘고 신기하다. 자그마하게 화단도 꾸며놓았다. 봄에는 영산홍이 매무새를 뽐내고, 오월에는 장미가 제 모습이 제일 예쁘다 자랑하는 것도 밉지 않다. 유월의 화단은 접시꽃이 장식하고 한여름엔 백일홍, 원추리, 백합이 서로 잘났다고 으스댄다. 천리향과 동백꽃도 언제나 제자리를 지키며 나에게 기쁨을 준다. 방목마을 유래는 잘 모르지만 ‘가축을 놓아기르는 방목’으로 해석하고 마냥 자유롭게 방목 생활을 하기로 했다.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 주던 사람들에게 이제는 말한다. “나 방목에서 바쁘게, 나를 방목하면서 재미나게 살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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