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은 마을주민들과 함께
아티스트들이 서로서로
관객이 되어주는 작은 축제

흥미로운 비평적 논쟁과
만남의 밀도가 높은 예술

아시아 유일 솔로 퍼포먼스 축제인 ‘아시아1인극제’ 공연 모습. <사진: 아시아1인극제>

[글=김소연 연극평론가]

‘아시아1인극제’의 시작은 1987년 아시아1인극협회를 결성하고 이듬해 바탕골소극장에서 개최된 제1회 아시아1인극제이다. 이후 ‘아시아1인극제’는 말레이시아, 인도, 타이완, 일본 등 아시아 각지에서 개최되다가 1996년부터 공주에서 그리고 2007년부터는 거창에서 개최되고 있다.

현재 아시아1인극협회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후에도 아시아 각지에서 자체적으로 축제가 이어졌다고 한다. 이러한 축제의 면면은 이 축제를 시작한 심우성 선생에서 비롯된다. 심우성 선생은 민속학자로서 탈춤, 풍물, 민요 등 전통연희 채록 연구만이 아니라 기획자, 연출가 그리고 스스로 무대에 섰던 연희자였다. 선생은 떠나셨지만 그러한 선생의 노력이 한국민속극박물관과 아시아1인극협회가 주최하는 아시아1인극제·거창으로 현재에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아시아1인극제는 심우성 선생의 유지를 이어가는 축제가 아니다. 또한 전통연희(라고 통상 범주화되는) 축제도 아니다. 심우성 선생의 민속극, 전통연희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실천이 옛것의 보존에 머물지 않고 현재로 이어지고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당연하다. 지난해부터 유진규 예술감독이 이 축제를 맡으면서 2007년부터 아시아1인극제를 개최하고 있는 한대수 집행위원장과 함께 심우성 선생에서 시작된 이 축제가 ‘전통에 기반한 솔로 퍼포먼스’라는 축제의 콘셉트를 새롭게 만들어가고 있다.

축제 첫 공연을 신원 박산 합동묘역에서의 이삼헌의 <진혼무>(제의)로 시작하는 것이나 이은결의 <가시적 그리고 비가시적인 것들>(퍼포밍일루션), 김관희의 <파이어 앨범 Vol.5>(파이어퍼포먼스) 등 프로그램의 면면을 보면 ‘솔로 퍼포먼스’라는 형식이 관통하고 있을 뿐 퍼포먼스의 장르 등에서는 자유로운 접근을 보여준다.

이러한 자유로움은 참여하는 퍼포머들도 마찬가지인데 춤, 마임, 인형극, 판소리 등 익숙한 장르로 자신의 공연을 소개하기도 하지만 창작연희퍼포먼스, 스탠딩연희, 환술, 전통+전자음악 등 스스로 장르를 명명하기도 한다. (공연소개에 적힌 각 공연의 장르는 참여자들이 직접 제안한 것이라고 한다) 낯선 ‘정보’이지만 자신을 어떻게 설명할지 궁리하는 퍼포머들이 떠올라 흥미로웠다.

이러한 자유로움은 무엇보다 이 축제의 콘셉트 혹은 제안인 ‘솔로’ 퍼포먼스의 여러 가능성으로 이어진다. 마술, 불꽃 등 다양한 솔로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지만 축제 프로그램은 ‘전통 기반’의 창작공연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또한 앞으로의 활동이 더욱 주목되는 ‘젊은’ 퍼포먼들의 비중이 높았는데, 기존의 장르에 자신의 이야기를 담는 것부터 낯선 장르 명명처럼 기존의 전통연희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것까지 매우 다양한 시도를 보여주었다.

아티스티들과 관객들이 하나되어 축제를 즐기고 있다. <사진: 아시아1인극제>

조갑동 <페인팅>(타악+퍼포먼스)은 기존의 사물 악기를 전자악기로 개조한 연주를 들려준다. 단지 악기의 개조만이 아니라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연주가 믹싱되면서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낸다. 연주만이 아니라 로봇 가면을 쓰고 등장한다거나 앉은반 선반 등 퍼포먼스를 다채롭게 구성했다. 박효진의 <욕구에 대하여>(퍼포먼스)는 탈과 가야금연주 그리고 설치퍼포먼스에 가까운 인형 등의 조형물로 무대를 구성했다. 전통연희의 여러 요소들을 조각조각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과감함이 인상적이었다.

낯선 시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김솔지 <기체후 일향만강 하신지요>(스탠딩연희)는 관객들과 함께 진행되는데 관객들을 무리로 나누고 각각 징, 북, 꽹과리, 장구를 입장단으로 연주하게 하면서 사물놀이 합주를 만든다. 김솔지의 재담 그리고 관객과의 호흡이 돋보였는데, 이어진 여현수 <용기놀이>에서도 빛났다. <용기놀이>는 용이 그려진 대형 깃발의 전통놀이를 발굴하여 새롭게 구성한 퍼포먼스다. 그림과 글씨를 달리하여 전통놀이에서와는 또 다른 맥락으로 퍼포먼스를 만들어간다. 달집태우기와 강강술래에서부터 큰 깃발이 등장해서 어둠과 어둠을 밝히는 불과 마당을 뛰는 관객들과 어우러지는 놀이판을 고조시켰다.

강강술래에 이어진 <용기놀이>는 앞선 대동놀이의 흥을 이어가면서 전개되었다. 대형 깃발의 시각적 장관만이 아니라 깃발이 허공을 가르면서 만들어내는 바람의 감촉까지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거기에 김솔지의 재담이 더해져 흥을 돋구었는데, 예를 들어 관객들의 머리 위를 깃발이 가르며 지나가자 “복 받으세요”라고 재담을 얹고 기복을 위한 퍼포먼스가 아님에도 관객들은 머리 위를 가르는 깃발에 환호하고 깃발을 쫓으면서 다시 판이 출렁였다.

김윤희 <이야기쑈>는 소소한 일상을 다루는 또랑광대 창작판소리를 떠올리게 하는데, 고부갈등을 예리하게 포착하고 그것을 희극적 과장으로 인물화 사건화하여 판소리에 얹었다. 박창호의 <큰엄니>는 탈춤의 ‘큰어미’ 춤을 재구성했다. 기존 탈춤에 몇몇 에피소드를 추가했는데, 전통연희에 대한 흥미로운 시도였으나 여성 인물에 대한 감상적 접근이 아쉬웠다.

문진수의 <천의무봉(설중사우)>은 설장구에 대한 재해석 혹은 재창조라 할 것인데 굳이 도드라진 다른 점이라면 구음이 곁들여진 반주이지만 악기와 연주, 연주에서 벌어지는 퍼포먼스의 관계가 새롭게 재구성된다. 설장구 자체가 기존의 풍물판굿에서 벌이던 개인들의 악기놀음이 솔로퍼포먼스로 재구성된 것으로 설장구가 화려한 가락연주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면 문진수의 퍼포먼스는 가락의 화려함에 머물지 않고 섬세한 여러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한편 발디딤새, 채를 든 팔의 놀림 등에서 설장구의 퍼포먼스를 촘촘하게 확장한다.

솔로 퍼포먼스 공연 모습. <사진: 아시아1인극제>

이외에도 전통마술을 보여준 송다민의 <환희: 꿈같은 장난>(환술)과 박정욱의 <배뱅이굿>(서도소리> 등이 주목되었다. 또한 김환의 <레퀴엠 바리, 바리 공주여!>(영상쇼)도 인상적이었다. 김환이 직접 기록한 영상과 사진을 편집한 것으로 이제는 낯선 80, 90년대 무속굿의 현장을 담고 있다. 김환의 영상은 무당의 화려한 퍼포먼스가 아닌 무당과 그를 둘러싸고 그에게 간절히 기원하는 자를 함께 담고 있다. 굿을 주재하는 무당들의 모습은 기원하는 자들에 둘러싸여 제대로 보이지도 않거나 땀에 절어 있고 원을 풀고자 하는 이들과 함께 엉엉 울고 있기도 하다. 인류학적인 보고서도 아니고 퍼포먼스로서의 굿의 현대성도 아닌, 사람들 속에도 그들의 삶과 고통과 죽음과 함께했던, 함께하고 있는 ‘굿’을 만나게 된다.

아시아1인극제·거창2023은 삼봉산문화예술학교에서 펼쳐졌다. 거창 시내에서도 한참 들어가는 삼봉산 자락에 있는, 한때는 작은 산골학교였던 이곳에서 벌어지는 축제는 마을주민들은 물론 참여하는 아티스트들이 서로서로 관객이 되어주는 작은 축제다. 하루 프로그램이 마무리되면 뒷마당에 마련된 테이블에 모여앉아 서로의 공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때로는 그 이야기가 흥미로운 비평적 논쟁이 되기도 하는 축제다. 크고 화려한 축제도 많지만 이만큼 관객과 아티스트 그리고 아티스트와 아티스트들의 만남의 밀도가 높은 축제는 흔치 않다. 이 축제가 솔로퍼포먼스의 가능성, 전통과 전통연희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넓히는 이유다.

※이글은 월간 <한국연극> 2023년 8월호에도 게재되었습니다.

서부경남신문  newsnuri@hanmail.net

<저작권자 © 서부경남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