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빈 들녘에 피어오르는 저녁연기
갈 길 가로막는 노을 따위에 흔히 다친다
내가 기억하는 노래
나를 불러 세우던 몇 번의 가을
내가 쓰러져 새벽까지 울던
한 세월 가파른 사랑 때문에 거듭 다치고
나를 버리고 간 강물들과
자라서는 한번 빠져 다시는 떠오르지 않던
서편 바다의 별빛들 때문에 깊이 다친다
상처는 내가 바라보는 세월

안팎에서 수많은 봄날을 이룩하지만 봄날,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꽃들이 세상에 왔다 가듯
내게도 부를 수 없는 상처의 이름은 늘 있다
저물고 저무는 하늘 근처에
보람 없이 왔다 가는 저녁놀처럼
내가 간직한 상처의 열망, 상처의 거듭된 폐허,
그런 것들에 내 일찍이
이름을 붙여주진 못하였다

그러나 나는 또 이름 없이 다친다
상처는 나의 체질
어떤 달콤한 절망으로도
나를 아주 쓰러뜨리지는 못하였으므로
내 저무는 상처의 꽃밭 위에 거듭 내리는
오, 저 찬란한 채찍

함양군 마천면 도마마을 다랭이논.

그리운 날은 상처일까, 기쁨일까. 죽을 것 같던 열병도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사라지듯이 지난 온 시간은 함께 바라본 세월이었다. 황금들판으로 빛나던 이 들녘도, 시간이 지나면 폐허가 되지만 그 속에는 또 싱싱한 봄을 품고 있는 것. “내가 기억하는 노래, 나를 불러 세우던 몇 번의 가을” 사랑과 청춘은 쓸쓸하고 달콤한 것. 좋았고, 슬프고, 고달팠지만 가슴 부풀고 설레는 시간이었다. <우민>  

서부경남신문  newsnuri@hanmail.net

<저작권자 © 서부경남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