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채중 화산서원 원장.

1592년 음력 4월 13일 새벽 부산포 앞바다는 유난히 짙은 물안개가 끼어 한 치 앞도 분간하기 어려웠다. 근해에 고기잡이 나갔던 어부는 수평선 너머로 시커멓게 밀려오는 뭔가를 보고는 화들짝 놀라 동래현에 알렸다. 동래 부사 송상현은 왜구가 침략했다는 소식을 접하자 봉화를 띄워 알렸다. 하지만 거대한 왜군의 병선은 부산포 해안을 접수하고 곧장 한양으로 진격했다. 왜군은 별다른 저항 없이 무방비한 한반도를 휩쓸며 7년 전쟁의 서막이 시작되었다.

무능한 왕과 관리들은 도성을 떠나 피난길에 올랐다. 싸우지 않고 떠나는 임금의 행차를 가로막고 울부짖는 백성을 뒤로하고 초라한 어가는 갈 길을 재촉했다. 왜국은 조선과의 교역을 주장하면서 수시로 해안가 마을을 습격해 왔다. 이에 골머리를 앓던 조선 조정은 삼포 왜관을 만들어 주기로 하고 무마시켰다. 노략질을 일삼던 왜구들이 왜관의 주민으로 들어와 조선인들과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면서 행패가 심했다. 이들은 남해안을 거쳐 중국 연안까지 침범하여 마을을 습격하고 주민을 납치하여 중국도 골머리를 앓았다.

만 평 부지에 달하는 부산 왜관은 남동쪽 바다를 끼고 있는 왜관 선착장이 있고, 담으로 둘러 싸여 왜관과 조선인 마을의 경계가 분명히 나누어져 있다. 동래부 관할지역이지만 일본인이 거주하는 주거지로 자치권이 주어졌다. 이들은 조선인들과의 무역을 통해 상거래가 이루어졌다. 그들이 찾는 주요 물품은 조선의 도자기와 인삼으로 무역 거래 가격이 높아 서양인들의 화승총과 교환할 때 값어치가 높았다.

낙동강 하류 동래 읍성으로 가는 지름길에 사공은 범상치 않는 사내를 호위하는 무사의 날카로운 시선을 뭉개며 넌지시 말을 걸었다. “어디까지 가시오” “동래 읍성으로 갑니다” 이 사내는 광해(왕세자)다. 지방 민심을 살피기 위해 삼남지방 암행길에 올랐다. 이틀 전 사내는 진양에 유배중인 송강 정철을 은밀히 만났다. 유배되고 처음 보는 길이다. 배포두둑하고 넉살좋은 얼굴은 다소 야위었고 호탕한 목소리도 차분하게 가라앉아서 딴사람 같았다.

송강은 지나치게 오지랖을 부려 사사건건 조정의 시비거리를 만들었지만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는 사람이었다. 선조가 광해군을 견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송강은 세자책봉의 선두에 섰다. 선조는 송강부터 잡아 귀양 보냈다. 송강은 근자에 명과 오랑캐(후금) 국경분쟁이 심상치 않다는 소리를 듣고 명이 위태해지면 조선도 온전치 못할 것아 이라 걱정했다.

얼마 전 왜국에 통신사로 다녀온 황윤길과 김성일은 너무나도 다른 의견을 내놓아 조정이 시끄러웠다. 정사 황윤길은 왜인의 폭력성이 의심되고 전쟁준비를 하고 있어 대비를 해야 한다고 보고했지만, 부사 김성일은 감히 우리 조선을 침범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가당치 않다고 핏대 올려 주장했다. 대비를 해야 한다는 황윤길과 대비하지 않아도 된다는 김성일은 서인과 동인으로 당파간의 논쟁으로 어수선했다. 실세인 동인의 주장에 왜국은 조선을 넘보지 못할 것이라 판단했지만, 종묘사직은 안중에 없는 자들이라 광해는 조선의 앞날에 다가오는 먹구름에 말문을 닫은 채 술잔만 기울였다.

전쟁이 발발하고 다섯 해가 지나 정유년(1597년)이순신이 전선 13척을 이끌고 명량해전에서 왜선 133척을 격파했다는 승전보가 들려 왔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었다. 일본군이 도공을 데리고 퇴각했다. 잡혀온 도공들을 한곳에 모아 가마촌을 만들고 도자기를 만들어 전쟁으로 바닥난 재정을 메우기 위해 교역을 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일으킨 것은 도자기 때문이라 한다. 일본의 학계에서도 임진왜란을 ‘도자기 전쟁’이라 부른다. 그들은 조선의 경제권(도자기 산업)을 바탕으로 조선을 넘어 중국 대륙까지 도모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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