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새옹지마
냇돌
임윤교 수필가.

내 얼굴에 버짐이 한창일 무렵, 온가족이 고향을 떠났다. 옹색한 살림과 함께 앓던 손톱이 떨어져 나가듯 고향에서 떨어져 나갔다. 부푼 가슴으로 떠날 때는 오직 시원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자나 깨나 그리던 도시는 왠지 마음 붙이기 힘들었다. 바랐던 세상은 외려 나를 왜소하게 만들었다. 잦은 이사를 하면서 그전 버릇이 도졌다. 마음이 허하면 생뚱맞게 가직한 곳의 들과 냇가로 돌을 찾아다녔다. 마음 가는 것이라고는 그것밖에 없었다. 집 담벼락 밑에 모인 돌은 내 편인 양 든든하였다. 돌을 포개면 염원을 담은 탑이 되기도 했다. 시간이 흐른 만큼이나 마당가까지 돌이 가만가만 쌓여 갔다. 전혀 무정한 돌이 아니었다.

그중 죄다 얽은 돌 하나가 시선을 끌었다. 둥글넓적한 돌의 표면은 온통 상처투성이였는데 물살에 오래 부대낀 모양새였다. 거친 표면을 보고 깊은 상념에 빠져들었다. 들어찬 상처들이 어딘가 모르게 내 모습과 닮아 보였다. 마모되고 촘촘히 패인 흔적들이 삶의 굴곡을 투영해내고 있어 힘들어 보였다. 나직한 수반에 마사를 깔고 얽은 돌을 얹었다. 천천히 물을 부어보니 돌 표면이 그늘지듯 젖어 들어갔다. 돌연 그 돌이 애련해 보이기 시작했다. 얼마나 물을 그리워했을지 생각하니 그동안 못할 짓을 했나 싶었다. 뒤늦게 수반 위에 두고 위한들 무슨 위로가 될까.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는 물가인데. 그날부터 제자리로 돌려보낼 준비에 들어갔다. 냇돌이 있어야 할 자리, 빛이 날 자리는 역시 축축한 물가여야 했다.

삶은 때때로 냇돌이 치른 아픔처럼 구르고 곤두박질쳤다. 인생의 여정이 평탄하면 좋으련만 시련은 원하지 않아도 예고 없이 도래했다. 나 또한 그랬다. 고통은 겨끔내기로 다가왔고 겪어낸 흔적은 오롯이 내 안에 남았다. 그 흔적은 소심함으로 이어져 욕망을 거세당한 자처럼 살게 만들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이 전신을 덮쳤다. 예전처럼 또 시간이 멈춰짐을 느꼈다. 창을 닫고 어둠 속에서 움츠리며 들숨 날숨이 없었다. 집안 상황 때문이었다.

그 어름에 폭풍우가 몰아쳐 내가 범람했다. 물너울을 타고 냇돌 굴러가는 소리가 비명처럼 들렸다. 그 소리에 명치가 아파 오목가슴이 되어 숨쉬기조차 어려웠다. 냇돌이 내 모습처럼 인식되던 여름밤이었다. 과거에 맴돌고 있으면 한 발짝도 앞으로 내디딜 수 없음을 깨달았다. 변화하기 위해 믿음의 전진이 필요했다. ‘가능성이란 단어가 종종 믿음의 동의어로 쓰인다’라는 것을 피력한 어느 작가의 글처럼, 정말 그랬다. 과거의 올무에서 빠져나온 나는 그제야 천천히 어기적거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냇돌은 내게 있어 생명력이다. 세파에 시달려 단단히 야문 내가 되기까지 냇돌을 보면서 소생할 수 있었다. 거센 탁류에 떠내려가지 않을 흐름도 탈 줄 알게 됐고 버틸 힘도 생겨났다. 그리고 무게중심을 재편하여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수반에 있는 냇돌을 물가에 옮기려고 마음먹는다. 얼금숨숨한 냇돌을 느슨히 쉬게 할 물가는 어디에 있을까. 된여울을 피해 이제는 실개울 근처에 두었으면 싶다. 더는 냇돌이 상처로 인해 아프지 않았으면 싶어서다.

조만간 나는 냇돌과 함께 고향의 어느 외진 물가에 가 있을지 모르겠다.

서부경남신문  newsnuri@hanmail.net

<저작권자 © 서부경남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서부경남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