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문화 영화
편향된 권력에 대한 거장의 일침… 나와 내 가족도 포함영화 <소년들>
  • 성하훈 영화저널리스트
  • 승인 2023.11.28 00:07
  • 호수 126
  • 댓글 0

17년 만에 무죄가 입증되기까지
세 소년의 아픈 삶과 이면 담아

데뷔 40주년 정지영 감독 신작
무관심하거나 외면하는 시대에
현실과 과거 오가며 진심 전달

영화 <소년들>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사건을 바로잡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17년 만에 무죄가 입증되기까지, 세 소년의 삶에 새겨진 주홍글씨와 그 안에 가려진 사건의 이면을 뜨겁게 담아냈다. 따라서 이 영화는 1999년 과거의 잊혀진 사건이 아니라, 2023년 현재 모두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사진: 씨제이 이엔엠(CJ EMN)>

1999년 전북 삼례의 작은 슈퍼마켓에서 강도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경찰의 수사망은 단번에 동네에 사는 소년들 3인으로 좁혀지고, 하루아침에 살인자로 내몰린 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감옥에 수감된다.

이듬해 새롭게 반장으로 부임 온 베테랑 형사 ‘황준철’(설경구)에게 진범에 대한 제보가 들어오고, 그는 소년들의 누명을 벗겨주기 위해 재수사에 나선다.

하지만 당시 사건의 책임 형사였던 ‘최우성’(유준상)의 방해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고, ‘황반장’은 좌천된다. 그로부터 16년 후, ‘황반장’ 앞에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였던 ‘윤미숙’(진경)과 소년들이 다시 찾아오는데…

한국영화의 거장 정지영 감독의 신작 <소년들>은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지방 소읍의 한 슈퍼에서 발생한 강도치사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소년들과 사건의 재수사에 나선 형사,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다.

강도 살인사건 9일 만에 소년 3인이 검거돼 범행 일체에 대한 자백과 함께 수사는 일사천리로 종결되지만, 사건에 관련된 모든 증거와 자백은 조작된 것이었고, 소년들은 살인자로 낙인찍힌 채 억울한 수감생활을 하게 된다. 이른바 ‘삼례나라슈퍼 사건’이었다.

완주 경찰서 강력반에 수사반장으로 부임한 ‘황준철’은 의문의 제보전화를 계기로 우리슈퍼 강도치사사건의 재수사에 나선다. 사라진 현장검증 영상부터 어긋난 진술, 조작된 증거까지 사건을 파헤칠수록 검거된 세 명의 소년들이 범인이 아니라고 판단한 그는 진범을 잡아 잘못된 수사를 바로잡으려고 한다.

그러나 ‘황준철’의 재수사는 전북청 수사계장 ‘최우성’을 비롯한 당시 사건의 책임자였던 이들의 방해로 가로막히고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이자 피해자인 ‘윤미숙’은 사건에 대한 재검토 요구를 외면한다.

법정 실화극 <부러진 화살>, 금윰범죄 실화극 <블랙머니>에 이어 사건 실화극 <소년들>로 돌아온 정지영 감독은 과거 잘못된 수사와 판결로 인해 아직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사건들이 많은 현실에 이와 같은 일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삼례나라슈퍼 사건’을 영화화하기로 결심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진행된 사건의 전말을 관객들이 몰입해서 들여다볼 수 있도록 정의롭고 열정적인 형사 ‘황반장’이라는 인물을 설정하고, 관객들이 그가 느끼는 사건에 대한 의구심과 분노에 동참할 수 있도록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2000년 재수사 과정과 2016년 재심 과정을 점층적으로 배치하는 구성을 택했다.

<소년들>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사건을 바로잡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검찰독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형평성을 잃고 편향적인 법집행과 내로남불식의 수사 등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현실에서 정지영 감독이 현실 공감과 공분을 자아내는 뜨거운 영화로 부당한 사회를 비판한다.

정지영 감독은 “어떤 사건이 사건으로만 그치는 것이 안타깝다. 그 사건 하나를 잘 들여다보면 거기에 나와 내 가족, 내 이웃도 포함되어 있다”며 영문도 모른 채 한순간에 살인범으로 지목된 것을 시작으로 17년 만에 무죄가 입증되기까지, 세 소년의 삶에 새겨진 주홍글씨와 그 안에 가려진 사건의 이면을 뜨겁게 담아냈다.

따라서 <소년들>은 1999년 과거의 잊혀진 사건이 아닌 2023년 현재, 외면해서는 안 될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전하며 관객들로 하여금 우리가 발을 디디고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되짚어보는 특별한 시간이다.

설경구, 유준상, 진경, 허성태, 염혜란 등 배우들의 앙상블도 짜임새 있다. <사진: 씨제이 이엔엠(CJ EMN)>

설경구, 유준상, 진경, 허성태, 염혜란까지 신뢰감 주는 연기로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는 배우들이 <소년들>을 위해 의기투합한 것도 볼거리다.

“잊혀서는 안 될 사건, 영화를 통해 다시 한 번 각인됐으면 한다”(설경구), “단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시작에 가깝다”(유준상), “사건을 다시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진경), 재심 사건들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돌이켜 볼 수 있는 작품”(허성태), “사건을 잊지 않고 자세히 들여다보는 용기에 대해서 말하는 영화(염혜란)” 등 작품에 임하는 배우들의 남다른 마음가짐에는 영화의 진정성이 느껴진다.

우리슈퍼 사건의 재수사에 나선 완주서 수사반장 ‘황준철’ 역을 맡은 설경구 배우는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기 때문에 외형적인 변화에 욕심이 있었다”고 밝혔는데, 혹독한 체중 감량을 통해 2000년과 2016년 사이, 세월의 간극을 극명하게 표현해냈다. 뿐만 아니라 진범을 잡기 위한 형사의 열의와 현실의 벽 앞에 무기력해진 좌절감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악역으로 나오는 유준상의 변화도 흥미롭다. 실력파 배우 진경과 <오징어 게임> <카지노>를 통해 글로벌 배우로 우뚝 선 허성태 등 배우들의 앙상블은 영화의 깊이를 더하게 한다.

정지영 감독은 6·25 전쟁이라는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통찰한 영화 <남부군>(1990)을 거창 월성계곡에서 촬영하기도 했고, 베트남 전쟁으로 인해 내면이 파괴된 참전용사의 삶과 전쟁의 폐해를 고발한 <하얀 전쟁>(1992), 영화에 미쳐 비극적인 삶을 사는 한 남자의 일생을 그린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1994) 등 1983년 데뷔한 이래 올해로 40주년을 맞이한 한국영화계의 명장으로 끊임없이 우리 사회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작품을 선보여 왔다.

2007년 발생한 석궁 테러 사건을 소재로 한 법정 실화극 <부러진 화살>(2012)은 사회 부조리를 저격하는 통쾌함과 영화적 재미를 선사하며 작품성과 흥행성 모두 인정받고 최고의 화제작으로 등극했다.

이어 2003년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을 다룬 금융범죄 실화극 <블랙머니>(2019)는 대한민국을 뒤흔든 거대한 금융 스캔들의 실체를 파헤치며 관객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이번엔 1999년 삼례나라슈퍼 사건을 소재로 하루아침에 무고한 소년들이 범인으로 조작된 사건의 실체와 그 이면의 진실을 추적하는 사건 실화극 <소년들>은 거장의 존재감을 알리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이것은 단순한 수사물이 아니다
힘없는 약자의 처지를 대변한다

- 정지용 감독의 말 -

정지영 감독.

살인자로 몰린 세 소년과 진범 3인이 대질신문을 통해 마주한다. 수사관이 이들의 혐의를 확인하는 동안 소년들도 울고, 진범들도 울었다.

소년들은 무섭고 억울하고 분해서, 진범들 중 누군가는 무섭고 미안해서 울었다. 그들은 왜, 무엇이 무서웠을까? 복잡한 감정, 수많은 감정이 교차한 그 순간 <소년들>은 시작되었다.

이것은 단순한 수사물이 아니다. <소년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을 이 세상 또 다른 ‘소년들’의 고통을, 힘없는 약자들의 처지를 대변한다. 언제 어떻게 내 가족 내 이웃이 사건의 피해자가 될지 모른다.

아니 내가 직접 그런 처지가 <소년들>을 통해 1999년 과거의 잊혀진 사건이 아닌 2023년 현재, 외면해서는 안 될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전하며 관객들로 하여금 우리가 발을 디디고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되짚어보는 특별한 시간을 선사할 것이다.

모른다.

우리는 왜 그러한 사회의 구조적 취약함에 눈 감고 있는 것일까? 함께 아파하고 같이 싸워줄 수는 없을까?

이 사건이 밝혀지기까지 포기하지 않고 큰 용기를 낸 소년들, 이제는 장년이 된 세 소년이 앞으로도 용기를 잃지 말고 살아갔으면 한다.

 

성하훈 영화저널리스트  doomehs@gmail.com

<저작권자 © 서부경남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성하훈 영화저널리스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