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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은 최치원과 상림을 상품화하는 길을 찾자1. 최치원과 상림
  • 이철우 본지 회장
  • 승인 2024.01.10 20:48
  • 호수 130
  • 댓글 1

고운이 함양을 떠나면서 나무를 심던 금호미를 숲 속 나뭇가지에 걸어두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뒷날, 이 숲에 개미·뱀·개구리 같은 추물이 생기고. 소나무와 대나무가 스스로 나면 내가 이 세상을 떠난 줄 알아라.” 그런데 세월이 흘러 어느 날부턴가 상림에 소나무와 대나무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최치원이 우화등선(羽化登仙)하였다고 믿었다.

천년의숲 상림공원 내에 있는 조선시대의 누각인 ‘함화루’.

함양의 명승지는 상림과 지리산, 개평마을, 안의삼동 등이 대표되고 있다. 상림은 신라시대 함양 태수를 지낸 최치원이 치수를 위하여 조성한 인공림이다. 상림 숲은 위천을 따라 상림에서 하림까지 4㎞에 걸쳐 조성되었으나 지금은 1.6㎞ 정도가 보존되어 있다. 멋과 운치가 있어 사계절 내내 사람들이 즐겨 찾는 군민의 쉼터요 함양의 자랑거리다. 함양의 전통성과 역사성을 상징하는 군민축제인 ‘천령문화제’는 신라시대의 고운 최치원 선생이 고을 태수로 부임하여 이룩한 치산치수의 유업을 추모하고 선현의 유덕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해 1962년 처음으로 개최된 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신라시대 거목의 그림자가 오늘날까지도 그 덕을 베풀고 있는 것이다.

고운 최치원은 함양군 역사 속에서 찬란한 별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함양의 목민관을 지낸 사람은 많다. 그들 가운데 우뚝하게 빛나는 인물은 고운 최치원과 점필재 김종직이다. 최치원은 아득한 시대의 인물로 지금도 상림과 학사루로 그의 자취를 남겨놓고 있다. 고운(857년~ ? )은 ‘동국문종(東國文宗)’이라는 칭호와 함께 고려 현종(顯宗) 때에 문창후(文昌侯)로 추봉(推封)되었다. 오늘날의 한국 한문학(漢文學)의 초석을 이룬 학자이면서 한·중 교류의 정치, 사상가로서 높이 평가받아 시대를 넘어 존경과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신라 헌강왕 원년(857년) 경주 사량부에서 태어났다. 구름처럼 왔다가는 인생이기에 자를 고운 또는 해운이라 하였다. 구름이 무심한 듯하면서도 비를 뿌려 자취를 남기는 것처럼 고운은 높은 포부를 품은 채 신라와 당나라를 구름같이 오가며 우리 한국사에 걸출한 자취를 남긴 신라 말엽의 대학자요, 대시인이다.

고운은 몰락의 기운이 감도는 신라 말기 경문왕 8년, 12세의 어린 나이로 당나라에 유학하였다. 아버지 견일(肩逸)은 재주가 뛰어난 아들이 육두품 신분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유학 밖에는 없다고 보고 중국 유학의 길을 선택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아버지의 애틋한 격려를 가슴에 안고 신흥 가문 출신의 기백을 살려 유학 6년 만인 18세에 당나라의 과거시험인 빈공과에 급제하였고 19세에 지방관이 되었다. 그 후 해남절도사 고병의 종사관이 되어 황소의 난을 진압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24세 때 황소의 난이 일어나자 ‘토황소격문’을 지었는데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너를 죽이려 할 뿐 아니라, 아마 지하의 귀신들까지도 쥐도 새도 모르게 너를 죽이려 이미 의논했을 것이다.”라는 구절에 놀란 황소가 자기도 모르게 말 위에서 떨어졌다는 일화가 전해내려 올 정도로 명문이었다. 당시 중국인들은 “황소를 토벌한 것은 칼의 힘이 아니라 최치원의 글의 힘이었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이 사실은 최치원의 이름과 함께 중국 정사인 <신당서원문지>에 실려 있다. 고운은 17년간 중국에 머물다가 29세에 귀국하여 서산·태인 태수를 거쳐 천령 태수를 지내는 등 10여년 간 현실 정치에 참여하였다.

고운은 시문(詩文)의 천재로 학문과 그 명성이 자자하였으나 육두품 출신으로 자신의 정치적 이상과 현실 속에서는 여전히 갈등을 겪을 수 밖에 없었다. 894년 진성여왕에게 시무십조(時務10條) 개혁안을 올렸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사십 대의 한창나이에 입산시(入山詩)를 남긴 채 관직을 버리고 은거하는 길을 택하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림을 조성한 최치원 선생의 애민사상과 지혜를 기리기 위해 건립한 최치원 역사공원 전경.

중아, 너 청산 좋다 말하지 말라 (僧乎莫道靑山好)

산이 좋다면 무엇 하러 다시 왔나 (山好何事更出山)

나중에 나 어찌 하는지 보거라 (試看他曰吾蹤迹)

들어가면 다시는 나오지 않으리 (一入靑山更不還)

2013년 6월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방문 때 시진평 중국 국가주석이 한·중 정상회담 자리에서 최치원의 “돛 걸고 푸른 바다에 배 띄우니 긴 바람에 만 리를 통하네(掛席浮滄海 長風萬里通)”라는 범해시(泛海詩)를 인용하면서 한국과 중국의 문화교류가 유구하다는 것을 보여줄 정도로 최치원이 한·중 두 나라의 우호증진에 영향을 미쳤다.

고운은 관직에서 물러나 은둔의 세월을 보내다가 죽었다는데 상림의 금호미 전설처럼 신선이 되었다고도 한다. 고운이 함양을 떠나면서 나무를 심던 금호미를 숲 속 나뭇가지에 걸어두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뒷날, 이 숲에 개미·뱀·개구리 같은 추물이 생기고. 소나무와 대나무가 스스로 나면 내가 이 세상을 떠난 줄 알아라.” 그런데 세월이 흘러 어느 날부턴가 상림에 소나무와 대나무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최치원이 우화등선(羽化登仙)하였다고 믿었다. 고운은 금호미 이야기를 통해 전설 속으로 들어가 아직 죽지 않고 천년을 살아오고 있다. 상림은 우리나라 문헌상 최초의 인공 조림 숲이라는 식물학적 가치와 함께 큰 휴식처가 되는 큰 숲, 대관림(大館林)을 조성한 백성과 나라를 사랑하는 고운 최치원의 마음이 절절히 배어 있는 것이다.

상림공원 내부에서 사시사철 흘러가는 물줄기의 모습.

유명인의 생애는 살이 붙고 이야기가 각색되어 전설이 되고 신화가 되게 마련이다. 고운의 운수행각은 우리나라 명산대찰을 비롯하여 발길이 닿은 곳곳에 전설로 이어지고 있다. 태수를 지낸 태인과 서산은 물론 경주 남산, 부산 해운대, 마산 월영대, 사천 다솔사, 하동 쌍계사, 합천 해인사 등 흔적이 남은 곳이 실로 많다. 최치원이 최후로 지팡이를 꽂아둔 것이 살아있는 푸조나무(경상남도 기념물 제123호) 한 그루와 그가 지은 ‘화개동천시’가 전해오고 있으나 상림 숲과 연밭 등 뚜렷한 자취가 남아 있는 함양이 단연 유리하다.

지역 마케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타 지자체에서 가지지 않는 비교우위에 놓인 것을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치원 선생 흉상.

상림 숲에 현재 연꽃을 심어놓은 곳까지 나무를 심어 면적을 확대해야 하고, 방치되어 있는 필봉산을 최치원 문학공원으로 조성하는 것이 좋다. 필봉산을 몽마르트르공원처럼 가꾸자. 문학공원과 산책로를 걷다 보면 고운이 남긴 문학의 향훈과 그를 기리는 추모의 뜻이 서로 상승 작용하게 될 것이다. 이용객이 적은 최치원 사당의 상림관과 역사관을 청소년 한옥도서관으로 만들면 전국에서 최초라는 수식어도 듣게 되어 찾는 발길도 많아질 것이다. 고운 역사관이 단순히 보존과 전시의 역할에 그치지 않고 지역 문학인 전체의 활동공간과 청소년·군민 모두의 문화휴식 무대로 활용되는 생기 있는 역사관·문학관으로 운영될 것이다. 위천 건너 ‘군민의 종’에서 하한정 솔숲까지 제2의 상림숲 조성과 위락시설을 만드는 등 상림을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 상림이 좋다고 자랑만 할 것이 아니라 보존·관리를 잘해나가야 한다.

일본 후쿠오카의 태재부 천만궁은 일본 헤이안 시대의 천재학자인 스가와라 미치자네를 학문의 신으로 모시고 있는 곳이다. 매년 입시철에는 학업 성취나 합격을 기원하는 참배객이 장사진을 이루고 천만궁 정문 앞에는 ‘매화가지 떡’이라는 명물 ‘우메가에 모찌’를 별미의 간식으로 판다. 이 떡은 좌천당한 스가와라 미치자네를 딱하게 여긴 한 노파가 창살 틈으로 이 떡을 매화가지에 꽂아 건넨데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천만궁에 가서 이 찹쌀 떡을 먹지 않으면 갔다 오지 않은 것처럼 되어서 중요한 관광자원으로 자리 잡았다.

우리도 고운의 학문과 시문의 천재성은 학문의 신으로 학업 성취와 합격을 기원하는 참배객을 유치하고 금호미를 소품으로 만들어 불사신의 전설을 얹고, 숲을 산책할 때 짚은 지팡이, 쉬어 간 돌덩이, 간식으로 먹은 떡과 막걸리 등을 상품화하고, 건강과 복을 기원하는 사람들에게는 복조리와 고운이 건립한 장수를 상징하는 노인성(老人星)을 볼 수 있는 상연대를 연계시켜 관광 자원화하면 지역경제에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관광은 고유한 역사와 문화환경, 자연환경을 바탕으로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함양은 최치원과 상림을 상품화하는 길을 찾자. 그렇게 하면 신선이 되었다고 믿는 고운이 우리 고장에 다시 나타나 잘 살려는 우리의 소망을 이루어줄지도 모를 일 아닌가.

이철우 본지 회장  lc34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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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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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앙군민 2024-01-21 08:09:32

    함양 미래발전 위한 좋은 글 입니다.
    특히 청소년을 위한 상림 도서관은 꼭 필요합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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