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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기억해야 역사가 된다광복 72주년, 한반도 통일을 위해
  • 서부경남신문
  • 승인 2017.08.14 20:44
  • 호수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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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나 눈이 오나
차디찬 의자에 앉아 있는 소녀가 있어요.
입을 꼭 다문 채, 눈을 똑바로 뜨고
건너편 일본 대사관 쪽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작은 소녀가 있어요

- ‘평화의 소녀상’ 中에서 -


올해는 광복 72주년이다. 일제강점기부터 셈하면 무려 107년이 흘렀다. 나라 잃은 설움은 1937년 중·일 전쟁이 터지고, 1938년 물자·산업·사람·교육 등 전쟁에 필요하면 무엇이든지 강제로 동원할 수 있는 국가 총동원법이 공포되면서 극한에 달했다.

전쟁에 미친 일제는 1940년 독일·이탈리아와 군사동맹을 맺고, 1941년 미국 하와이의 진주만을 습격하면서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다. 1939년 시작된 제2차 세계대전은 일본까지 끼어들어 전 세계로 확대됐다.

전쟁이 계속되는 동안 우리나라의 수많은 젊은이들은 전쟁터로 끌려 나가며 수없이 죽어갔다. 그리고 전쟁에 필요한 광산개발과 철도, 군용도로, 비행장 건설에 강제로 동원됐다.

여성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제는 1944년에 12세 이상 40세 미만의 여자들을 ‘근로정신대(정신대)’라는 이름으로 강제 동원하여 전쟁 물자를 만들게 했다. 그러나 일제의 가장 수치스러운 범죄는 군대 위안부 운영이었다.

여성들을 강제로 끌고 가 만주, 중국, 필리핀, 오키나와, 홋카이도 등 일본군이 가는 전쟁터마다 보내졌다. 이들은 1930년대부터 1945년 일본이 패망하기까지 강제로 전선으로 끌려가 일본 군인들의 성노예로 인권을 유린당했다.

당시 위안부에 끌려간 소녀들의 수는 약 20만명. 이 가운데 한국으로 돌아온 소녀들은 238명에 불과하다. 당시 소녀들의 평균 나이는 16세였다.

광복 72년이 됐지만 아직도 일제가 남긴 상흔은 여러 곳에 남겨져 있음에도 제대로 된 반성과 사과는 요원하다. 이런 아픔에도 불구하고 일제강점기 식민지 해방의 꿈을 갖고 독립운동을 위해 자신의 청춘을 바친 이들이 있기에 오늘이 있는 것이다. 불행한 역사도 기억해야, 다

/글= 이은정 기자 · 사진= 정백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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