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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의 고장이며 ‘새마을금고’ 발상지… “잊지 않을게요”찾아가고 싶고, 자랑하고 싶은 산청 하둔마을
  • 서부경남신문
  • 승인 2019.11.25 20:46
  • 호수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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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집 건너 장관과 차관이 나고
두 집 건너 교수와 박사가 나와

마을금고는 권태선 어르신 주도
하지만 공적비문에는 빠져 있어
배종순·오호영 할머니 기억·증언

밤하늘 성좌처럼 빛나는 인물들
지금도 사회지도층 역할에 기여

“사실을 내게 말하면 나는 배울 것이다. 진실을 말하면 나는 믿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 스토리를 말해주면 그것은 내 마음속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스토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인디언 속담이다.

일전에 이재근 산청군수를 만났다. 산청은 산청인수(山淸人秀)라는 말대로 인물이 많이 배출되는 고장이라고 자랑했다. 생초면 하둔마을을 언급하면서 한 집 건너 장관과 차관이 나고, 두 집 건너 교수와 박사가 난 마을이라고 소개하였다. 하둔마을을 찾아갔다. 생초면 소재지에서 추색(秋色)이 떠나가는 덕갈산 방향으로 십리쯤 들어가는 마을버스도 다니지 않는 오지마을이었다. 번성기 때에는 50호 가까이 되었으나 지금은 20여 가구로 쇠퇴되었다.

이 마을이 1960년대 상부상조정신에 입각한 주민의 자주적 협동조직인 우리나라 마을금고의 발상지라니 믿어지지 않는다. 마을 초입에 경로당이 있고, 경로당 앞에 마을금고 발상지임을 알리는 비석이 있었으나 언제 누가 세웠는지 지도자는 누구인지 등 내력이 전혀 없었다.

하둔마을은 산골이었지만 마을에는 김은호(1870~1943)와 권중두(1879~1960) 두 분의 선각자가 계셨으며 일찍부터 자녀교육에 열의가 있었다.

김은호는 생초면 초대면장을 지냈으며 3명의 아들을 두었다. 첫째 아들의 손자가 김두희 전 법무부 장관이고, 둘째 아들의 손자가 김상희 전 법무부 차관이고, 셋째 김신석의 외손이 삼성 이건희 회장의 부인 홍라희,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이다. 김두희, 김상희, 홍라희·홍석현은 6촌 내외종간이다.

김신석(1896~1948)은 부산상고를 졸업하고 조선은행에 근무했고 당시 금융업계에서는 회계업무의 제일인자로 평가받았다. 호남에서 인촌 김성수와 함께 양대 부자로 알려졌던 현준호가 광주·목포지역에 호남은행을 창립하면서 호남은행에 스카우트되었고 일제에 의해 강제 해산될 때 까지 호남은행을 크게 발전시켰다.

김신석의 딸 김윤남이 전 법무부장관과 내무부장관을 지낸 홍진기와 결혼하여 낳은 딸이 이건희 삼성회장의 부인 홍라희, 아들이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이다. 한편 현준호의 손녀딸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으로, 김무성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의 누나 김문희의 딸이다.

또 한분의 선각자 권중두는 법조인으로 남원법원에 근무했으며, 아들 권태선(1903~1970)을 권력을 누릴 수 있는 법을 공부시킬 수 있었음에도 일본 상업학교에 유학시켜 금융의 길을 가게 했다. 이는 권태선(1903)과 7살 차이로 같은 하둔마을에서 성장한 김신석(1896)의 영향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김신석은 전국적인 금융인이 된 반면, 권태선은 고향 하둔에 정착하여 하둔마을이 우리나라 ‘새마을금고’의 발상지가 되게 하였다.

산청군 새마을금고역사관 건립 추진협약. 왼쪽부터 이만규 산청군의회의장, 이재근 산청군수, 박차훈 새마을금고 중앙회장, 김기창 새마을금고 전무이사. <사진: 산청군>
새마을금고 발상지 하둔마을 방문. <사진: 산청군>

새마을금고는 1963년, 재건국민운동본부에서 향토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되었으며, 1963년 5월25일 경상남도 산청군 생초면 하둔마을 동사에서 새마을금고의 전신이 탄생된 것이다. 이 운동이 처음 출발했을 때 농촌에서는 절미저축운동으로, 도시에서는 가계비와 용돈을 절약하는 소비절약운동으로 시작되었다. 금액규모면에서는 다른 금융기관과 비교할 때 보잘 것 없는 상태였다.

초기의 새마을금고운동은 뚜렷한 이념과 체계적인 조직을 갖추지 못한 상태였으며 명칭도 금고가 아닌 신용조합이었다. 마을금고의 발자취를 추적하면 자금의 조성이용으로 회원의 경제·사회문화적 지위향상과 건전한 국민정신 함양을 위한 것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운동이 처음 출발했을 때에는 쌀 한주먹 덜어 모으는 ‘좀도리운동’이라는 절미저축운동으로 시작하였다. 하둔마을의 마을금고운동은 이 운동에 극성이었던 권태선이 주동이 되어 추진하였다. 당시 부녀회장으로 권태선 어른과 손발을 맞추었던 배종순 할머니(80)와 권태선 어른의 며느리 오호영 할머니(86)에 따르면 집집마다 부뚜막에 단지를 두고 밥을 지을 때마다 한 주먹씩 쌀을 덜어 단지에 모았다. 5일 장날마다 마을 쌀을 거두면 쌀 11되~13되 정도 모아졌다.

이 쌀을 시장에 가서 팔아 모은 돈으로 상부상조정신에 입각하여 필요한 사람에게 저리(低利)로 빌려주기도 하였다. 자금조성을 위해 구판장도 운영하고 마을 경조사 등을 통해 돈을 모으는 노력을 하였다. 마을금고운동은 낭비하지 아니하고 저축하여 알뜰한 살림을 꾸려나가려는 마음가짐에서 <마음의 근대화>, <생활의 개선>을 위한 것이다. 근면과 검소에 따른 개인생활의 경제화, 잘 살아보려는 정신의 근대화운동이었다.

권태선은 “잘 사는 길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낭비를 줄이어야 한다. 낭비는 백만장자도 당하지 못한다”고 강조하였다. 이처럼 마을금고운동에 헌신적이었던 권태선 옹의 공적이 비문에 빠진 것은 매우 아쉬움이 남는다고 하였다. 정부는 1972년 새마을 금고육성을, 새마을운동의 하나로 채택하여 추진하였다. 1973년에 마을금고연합회를 발족시켜 전국적인 조직체계를 갖추어 교육과 지도사업을 추진함으로써 이 운동이 비로소 본격화되었다.

제5공화국의 수립과 더불어 정부는 마을금고를 새로운 차원으로 육성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1983년 새마을금고법을 제정·시행하였다. 이때 마을금고를 새마을금고로 개칭하게 되었다. 안전기금과 상환준비금제도를 새로 마련하고 부실금고를 과감히 정비하는 등 새마을금고 육성을 위한 다각적인 시책을 폈다. 이 같은 일련의 조치들은 새마을금고의 공신력 제고와 내실안정을 다지는 새로운 전기가 되었다. 국민들의 새마을금고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졌다. 2018년 기준 전국의 마을금고는 1308개가 운영되고 있다.

산청군 생초면 계남리 하둔마을 새마을금고 발상지 비석. <사진: 서부경남신문>

‘하둔마을금고’는 마을 근대화를 위해 많은 역할을 하였다. 특히 학생들에게 큰 힘이 되었다. 부모들과 자녀들이 한마음으로 노력하여 밤하늘의 성좌처럼 빛나는 특출한 인물들이 배출되었다. 지금 그들은 사회의 지도층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 하둔마을이 낳은 인물은 김두희 전 법무부 장관, 김상희 전 법무부 차관, 오동호 전 경남부지사와 오동운 전 부장판사형제, 박신헌 카톨릭 상지대 교수와 박정준 산청부군수를 지낸 도의회 의사담당관 형제, 박정수 진주교대교수, 김희도 강릉영동대 교수, 박광우 부산 외국어대 교수, 박무성 부산 국제신문사장, 가수 너훈아(박승찬) 등이 이곳 출신이다. 50여 가구의 작은 마을에서 한 집 건너 판사와 검사가 나고, 두 집 건너 교수와 박사가 난 것이다. 이 마을에는 경주김씨의 제실 계남재(桂南齋)와 함양오씨제실 추사재(追思齋)가 잘 관리되고 있다.

하둔마을이 낳은 인물은 생초와 산청의 자랑을 넘어 우리나라의 자랑이 되고 있다. 인물은 고향을 자랑스럽게 하고, 그 고장을 풍요롭게 하고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인걸은 지령이라고 했던가. 땅의 신령함이 있다고 믿는 전국 각지에서 관심이 있는 많은 사람들이 하둔마을을 찾아오고 있다.

훌륭한 인물은 고장의 긍지이기도 하지만, 콘텐츠시대에는 문화유산으로도 가치가 있다. 마을 이야기는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아기울음소리 끊인 하둔마을에서 만난 할머니들이 전하는 “정기를 받은 사람들은 다 떠나가고 고부라진 쭉정이만 남았다”는 자조 섞인 넋두리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이 마을을 지키는 사람들은 훌륭한 인물들이 태어났던 고장이라는 긍지를 갖고 열심히 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오늘을 사는 우리는 물론 먼 훗날, 이 마을에 살다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전해지길 소망한다.

/이철우=본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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