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태풍 루사와 라마순이 한반도를 강타하면서 무려 270명의 사망자와 6조1000억원의 재산피해가 발생해 국민들을 공포에 몰아 넣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났다. 그동안 정부는 '수해방지대책기획단'을 설치하였고, 국가예산 6조1152억원을 비롯해 9조486억원의 수해복구비를 긴급 투입했다. 지리산권인 경남 함양도 9명의 인명피해와 225가구 574명의 이재민, 1690억원의 재산피해를 입어 2463억원의 복구 금액이 투입됐다. 그리하여 9월 1일 현재 주택 85%, 농경지 100%, 공공시설 90%의 복구율을 달성했다. 본지는 지난해 수해로부터 얻은 교훈이 이번 하천사업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우리나라 수해복구사업의 문제점을 확인하고 개선방안을 지적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다가오는 홍수에 대책 없는 직선화된 하천
지역특성 무시한 무늬뿐인 자연형 하천공법

지난해 홍수피해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기록적인 강우량이었다. 당시 내린 비의 양은 어느 지역이 가장 극심한 기상조건 하에서 발생할 수 있는 최대가능강수량(PMP:probable maximum precipitation)에 거의 근접한 막대한 양이었다.

▲ 수해복구공사의 명목으로 하천이 병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천재를 더욱 키운 것은 해당 지역의 불합리하고 반환경적인 국토이용이었다. 산지에 도로를 내기 위해 깎아놓은 가파른 절개지와 작업도로 역시 산사태를 크게 한 원인이 되었다. 이렇게 들어온 토사와 유목은 강바닥을 메우고 다리를 가로막았다. 더구나 하천부지를 쓸모 없는 땅으로 여겨 농경지와 도로 등으로 전용해 온 기존의 하천관리 정책은 하천의 폭을 좁히고 물길을 왜곡했기 때문에 홍수의 흐름을 막고 피해를 키웠다.


우리나라의 산지와 하천은 가파르고 짧으므로 상류지역에서의 물이나 토석의 유출이 수해의 정도나 하류에서의 물 이용에 미치는 영향이 특히 심한 것을 간과한 것이다.

전국적으로 하천의 피해규모는 4445개소 1조1759억원 수준이고, 함양의 경우 95개소 1285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지난달까지 97%의 복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로 인해 전국적으로 하천의 거의 모든 구간은 공사장을 방불하게 할 만큼 많은 굴삭기와 크레인이 동원돼 공사를 진행했고, 산사태구간은 일부 지점을 제외하고 대체로 마무리된 상태다.
하지만 수해피해조사와 복구예산 배정 등의 절차가 지난해 12월에 이르러서야 마무리되고, 입찰과 설계 과정을 거쳐 올 3월부터 공사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공사의 부실화가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번 수해복구 공사로 인해 가장 우려되는 것은 하천이 직선으로 되어 있는 경우 강물의 속도가 빨라져 파괴력이 커질 뿐만 아니라, 짧은 시간에 하류로 흘러든 강물이 주거지를 침범하여 피해가 가중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하천의 자연적인 굴곡을 유지하고, 그 굴곡 중 강물이 강하게 와서 닿는 바깥쪽에는 그 강물의 힘을 완충시키는 완충석을 배치하여 피해를 줄일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이번 수해복구에서도 포크레인들은 강을 직선으로 반듯반듯하게 만들어 놓고 있다.

또 하천은 홍수시 불어난 강물이 흘러가는 길일 뿐만 아니라 생물의 서식처이자 오염물질을 정화시키는 자연 정화장치이며 아름다운 경관을 구성하는 주요한 원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름휴가 기간에도 수해복구 공사가 계속 이뤄져 모든 하천을 연일 흙탕물로 만들어 버렸다.

지리산국립공원인 백무동과 칠선계곡, 정자문화로 대변되는 함양 안의 화림동 계곡에도 지속적인 공사가 이뤄져 관광객이 전년도 보다 반 이상 줄어들었다. 뿐만 아니라 거연정을 불과 수십미터 남겨두고 공사를 진행하고 있어 아름다운 하천을 망가뜨리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수해복구 공사라는 미명아래 지역경제와 여름 휴가객을 무시한 채 버젓이 진행되고 있었다.

하천의 여러 구간에서는 홍수 때 떠내려 온 옥돌을 이용하여, 자연형 하천공법인 '자연형 돌담구조-자연석 쌓기'로 제방공사를 실시했다. 규모가 큰 하천은 돌망태를 이용했고, 규모가 작은 것은 전석을 사용했다. 그러나 강물과 땅이 만나는 하천의 가 부분은 하천 생태계의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됨에도 이 부분을 모두 콘크리트로 포장해 버려, 자연하천공법이란 허울만 남은 상태였다. 결국 하천을 하수구쯤으로 인식하는 무지한 공사가 의외로 여러 곳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이제 하천에 대한 과거의 인식을 수정할 때가 됐다. 생태계를 고려하지 않은 과도한 토목공사 위주의 하천정책이 강을 파괴하고 수해를 키웠으므로 이에 대한 냉장한 진단과 반성으로부터 새로운 하천정책을 시작해야 한다. 그 중에서도 하천의 과도한 왜곡, 습지의 파괴, 산림관리의 포기, 댐과 제방 위주의 수해대책, 사회의 대응 시스템 부족 등에 대해서는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

지형과 하천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자연의 흐름을 막아섰던 직선의 제방은 제 구실을 할 수가 없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환경을 파괴하는 획일적인 하천공사와 과잉 개발은 결국 자연이 의도하지 않은 또다른 피해를 자초하고 있지 않는가.

▲ 직선화되고 획일화된 하천

지속가능한 행정은 없는가?

우리나라 수해복구의 구조적인 문제점은 제도상의 문제에 있다. 자연재해대책법에 따르면 국민을 수해로부터 보호하고 수해가 발생했을 때 시설물을 복구할 '방재책임자'는 중앙행정기관의 장과 지방자치단체장이다.

현재의 수해복구체계는 철저히 중앙행정기관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지자체는 피해상황과 복구진척에 대해 수시로 보고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중앙기관이 합동으로 산정한 피해액과 복구방안 그리고 복구공사의 지침까지 따라야 하며, 수해복구와 관련한 모든 행정절차의 기준은 '원상복구'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번 수해복구 공사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장마철까지 원상복구를 완료할 것'이라는 원칙 하에 진행되었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지자체는 예산확보에 골몰한 나머지 지역주민의 의견을 수렴하고 전문가의 자문을 구하는 등 수해복구의 효율화를 위해 노력하기 보다 중앙의 눈치보기에 더 급급하게 되었다. 그 결과 전국 모든 곳에서 지자체의 특징을 반영하지 못하고 천편일률적인 공사가 진행되었다.

또 봄부터 공사를 시작하면서 무리한 일정에 맞추기 위해 현실에 맞지 않는 설계 따로 시공 따로인 공사가 생겨나고, 업체들은 자의든 타의든 부실공사의 위험과 환경파괴의 부담을 피해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우리사회를 홍수 등 자연재해에 강한 사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예방조치의 강화', '적절한 대비체계의 구축', '효율적인 긴급대응', '합리적인 복구'라는 일련의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 하천은 단순히 치수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에게 소중한 물을 주고 숲과 들과 더불어 생태계를 유지하는 젖줄임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수해복구가 단순히 도로와 교량을 복구하고 제방을 쌓는 일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하천생태계를 복원하고 안정화하기 위한 정책들이 포함되는 것이 타당하다. 이를 위해서는 수해복구 사업과정에 하천공학 전문가와 생태전문가 등 여러 분야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제도의 개선이 시급하다.

그리고 하천관리조직은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보장하고, 주민과 공동으로 운영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천과 늘 같이 살고 있는 지역주민의 경험이야말로 하천을 살리고 인간도 살리는 지혜의 보고다.

이와 함께 잘 보존된 숲은 마치 스펀지처럼 우기에 내리는 엄청난 양의 비를 흡수해 하천을 지키는 녹색댐의 역할을 수행하는데, 우리나라의 토목공사 위주의 치수정책은 숲 가꾸기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침엽수림을 3분의1만 개선해도 연간 57억톤의 홍수조절이 가능하다는 연구결과를 보면, 치산이 치수의 기본이라는 선조들의 생각이 훨씬 일리 있음을 알게된다.

특히 강조되는 것은 지난해 태풍 '루사' 이후 함양군 마천면 내마 마을 등 비가 오면 항상 불안에 떠는 위험지역 주민들은 이주시켜 수해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예산집행의 근거가 정비돼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수해로 인한 집단이주 조성에 관한 법률'(가칭) 등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지속가능한 정책이야말로 자연과 인간을 살리는 해법인 것이다. 

이영철 기자  leeyc@seobunews.com

<저작권자 © 서부경남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