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을 어둠에 묻고 싶지 않아

     소설보다 더 가혹한 현실 다뤄

     카페는 글쓰기 등 강좌도 열어

     ‘목화장터’ 밴드 지역 소통창구

산청 원지 카페 ‘푸실’은 지역주민들의 도서관, 공예품점, 로컬푸드점, 문화공간 등 다양한 소통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윤인숙 기자>

지난해부터 산청군 원지에는 프랜차이즈 카페 열풍이 불었다. 작은 면소재지에 프랜차이즈 카페가 이미 세 곳이다. 그 때문에 뒷길에 있는 작은 카페가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난 5월 협동조합에서 조합원들과 일을 하고 원지에 나와 점심을 먹었다. 후식으로 카페에서 커피 한잔하자고 했더니 한 명이 ‘푸실’에 가자고 한다.

카페에 들어서니 예전에 왔던 곳인데도 뭔가 다르다. 아기자기한 인테리어 소품과 전시된 물건들이 공간을 환하게 한다. 책이 전시되어 있길래 주인장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분이 소설가라는 걸 알았다. 나도 책을 썼다고 말하며 나중에 만나면 한 권 드리겠다고 했다. 그리고 목화장터 모임이 열리던 7월 어느 날 두 번째 이곳을 방문했다. 지난주에는 무더위를 피해 이곳에서 서너 시간 책을 읽기도 했다. 신문사에서 인터뷰기사 요청을 받고 첫 번째 대상으로 떠오른 분이 그 푸실의 주인장 이진숙 작가다.

이 작가는 신안 증도가 고향이다. 동생이 김해에 살다가 산청으로 먼저 이사를 왔고, 가끔 동생을 보러 오가다가 지리산 풍광에 반해 5년 전 이곳으로 옮겨오게 되었다. “섬에서 나고 자라서인지 지리산 자락이 색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다. 바닷가는 습하고 사방이 잿빛 뻘이라 삭막한데, 산자락은 쾌적해서 정신이 맑아지는 것 같다. 나를 작가로 키워준 곳이 바다이고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가 살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산골에서 사는 게 더 좋다.” 그는 산자락에 깃들어 살게 된 내력을 이렇게 밝힌다.

커피를 좋아하는 자매는 커피가 맛있고 분위기 좋다는 찻집을 찾아 하동, 함양, 담양, 남해 등을 여행 삼아 찾아다녔다. 그리고 작년에 고향으로 돌아가 카페를 열었다. 고향은 어느새 관광지가 되어 있었고, 카페에는 손님이 넘쳐나 힘이 들었다. 그래서 카페를 접고 산청으로 이사를 왔다. 차를 마시러 원지에 들른 어느 날, 카페를 내놓는다는 방을 보았다. 그걸 보고 들어와 물으니 “프랜차이즈 카페 때문에 장사가 되지 않아서”라고 주인장이 솔직히 말하더란다.

이들에게는 그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자매는 산청에 와서 염색을 하고 그 천에 수를 놓아 다른 북카페에 납품했는데, 그곳에서는 납품가의 두 배를 받고 팔았다. 그래서 자신들이 직접 판매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던 차에 그런 장소로도 제격이고, 공부모임이나 회의장소, 글 쓰는 공간 등으로 사용하면 좋겠다 싶었다. 그러니 북적이는 장소보다는 조용한 이곳이 더 좋았다. 그렇게 자매는 카페를 인수해서 올 1월 카페 푸실을 열었다.

이진숙 씨의 본업은 소설가다. 카페에는 동생과 번갈아 나오고, 카페에 나오지 않는 날에는 집에서 글을 쓴다. 나는 두 번째 만남에서 내 책 ‘마음을 정하다’를 드리고 이 작가의 첫 단편집 ‘카론의 배를 타고’를 선물 받았다. 이 책은 제3회 형평지역문학상을 받은 단편소설집으로, 주제 하나하나가 묵직한 사회적 이슈를 다루고 있다. 작품 속 인물은 대부분 상처가 많고 소외된 삶을 사는 이들이다. 결핍과 결손, 희망이라곤 하나도 보이지 않는 비참한 삶을 살다가 생을 마감하는 가혹한 작품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글이 칙칙하다는 평가를 자주 받는단다.

그런 글을 쓰는 이유를 물었다. “불행이라는 어둠을 어둠속에 그대로 묻히게 하고 싶지 않아서, 소설보다 더 가혹한 현실이 있음을 독자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서.” 우문현답이 돌아왔다. 덧붙여 그는 “남들은 그런 글을 쓰면 작가 자신도 칙칙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난 전혀 그렇지 않다. 글쓰기의 부수적 효과로 마음이 가벼워지고 홀가분해진다”며 미소 짓는다. 힘든 걸 글로 풀어내서이기도 할 것이고, 불행을 알리는 이유가 더 나은 세상을 바라는 마음이기 때문이리라.

이진숙 작가 출판기념회.

이 작가는 산청도서관과 산청읍에서 글쓰기 강좌도 하고 있다. 조만간 글쓰기 강좌를 푸실에서 할 계획도 있다. 현재 카페에서는 로컬푸드 정기회의, 간디중학교 독서토론회, 젊은 엄마들의 교육토론회, 바느질 모임, 지역문인들의 출판기념회 등이 수시로 열리고 있다. 그리고 겨울이 오면 한 달에 한번 작은음악회나 영화감상회 등도 열 계획이라고 한다. 짧은 시간 내에 동네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렇게 단기간에 많이 알려지게 된 것은 ‘목화장터’라는 밴드 덕분이다. 산청 지리산 목화장터는 매월 둘째, 넷째 주 일요일 오후에 열리는 프리마켓이다. 인근 함양, 합천, 남원 사람들도 참여하는 밴드는 회원수가 550명으로 지역주민들의 소통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까페 푸실 전경.

‘원지’라는 곳에 대해 물었다. “시골인데 시골스럽지 않고, 항구 같은 곳”이란다. “원지에는 터미널과 대형마트가 있어서 주변사람들이 모여든다. 그렇게 사람들이 모였다 흩어지는 곳이어서 좋았다.”라고 풀이한다.

면소재지인 원지는 군청소재지인 산청읍보다 사람들이 많이 드나든다. 인근 큰 도시인 진주가 가깝기도 하거니와, 이동성이 높은 젊은 귀촌인들이 덕산, 갈전, 둔철 등 주변지역에 몰려 살기 때문이다. 나 역시 10㎞ 떨어진 갈전리에 사는데 자동차로 10분 거리인 원지에 오면 대부분의 것들이 해결된다. 시골에 살지만 어려움이 전혀 없다. 원지에는 고층아파트 단지도 서너 군데나 돼서 젊은 엄마들이 많다. 원지 주민들은 원지를 ‘원지특별시’라고도 한다.

애초엔 카페 앞에 있는 아파트의 젊은 엄마들이 올 거라 기대했는데, 오히려 주변 귀촌인들의 사랑방이 되었다고 한다. 산골 여기저기 흩어져 살기에 가끔 얼굴 보러 오기도 하고, 물건을 맡겨두었다 찾아가기도 한다. 그런 인연으로 최근에는 지역민들이 수확하거나 만든 참깨, 콩, 된장, 간장, 계란, 미숫가루, 박하차 등을 판매대행해 주고 있다. 이렇게 푸실은 카페, 도서관, 공예품점, 로컬푸드점, 문화공간 등 다양한 문화여울목 역할을 하고 있다.

앞으로 푸실이 어떻게 되었으면 좋겠냐고 물었다. “지금처럼 동네 사랑방이 되기를 바란다. 작은 공간이지만 더 많은 활동이 이루어져서 알차게 활용되었으면 좋겠다.” 나도 조만간 비폭력대화 공부모임을 이곳에서 열어보고 싶다.

만난사람/ 윤인숙 기자

윤인숙  yoonis@seob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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