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 ‘다볕유스윈드오케스트라’

     이런 연주단이 있다는 건 기적

     오직 아이들의 꿈만 보고 걸어

     25년 교직 관두고 문화에 전념

전진석 다볕문화 대표는 25년간 정들었던 교직생활을 그만 두고, 다볕유스윈드오케스트라를 세계적인 연주단체로 만들기 위해 혼신의 힘을 쏟고 있다. <서부경남신문>

“여기까지 오는 데 10년 걸렸다. 정명훈 같은 세계적인 지휘자를 배출해서 이 조그만 시골에 국제음악콩쿠르를 개최하고, 세계 사람들이 모여드는 음악과 문화예술의 메카로 만들고 싶다”

지난 20일 지리산 산골 경남 함양의 청소년 관악단 ‘다볕유스윈드오케스트라’(지휘자 전계준)가 함양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 ‘문화야 놀자-다볕골을 연주하다’ 공연을 펼친 후 만난 전진석 (사)다볕문화 대표의 포부다.

오케스트라의 살림과 후원을 도맡고 있는 전 대표는 척박한 산골 문화환경에서 아이들의 역량과 꿈을 세계 무대에 당당히 내세울 만큼 뒷바라지한 대찬 이력에 비해 농부같이 푸근한 인상이다.

전문예술법인 (사)다볕문화 산하 문화예술단체인 다볕유스윈드오케스트라는 초·중·고·대학·일반 등 총 90여명의 단원에다 석사 출신 강사 5명, 음대생 3명 등의 지도강사로 구성된 관악단이다. ‘청소년’이란 이름에서 오는 선입견이 무색하게 10년 내공의 탄탄한 실력을 자랑한다.

2005년 창단 이후 23회의 정기연주회와 13회의 특별연주회, 각종 초청공연과 협연 등 활발한 연주 커리어를 쌓으며 입지를 다지고 있다.

올 3월 예술의 전당 사장을 역임한 피아니스트 김용배가 이들과의 협연에 앞서 연주를 들어보고 “시골에 이런 연주단이 있다는 건 기적”이라며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는 일화는 다볕유스윈드오케스트라의 만만치 않은 수준을 짐작케 한다.

다볕문화센터.

◇아이들의 열망을 외면할 수 없어 시작된 10년 외길

함양은 1950~60년대에 청소년 관악단이 10개 넘게 활동하던 곳이다. 이런 음악적 기반이 퇴색하고, ‘관악단’이라는 이름조차 생소하던 2000년대 경남 지역에 학교예술교육 활성화 정책이 시행되면서 각 학교에 음악관련 부서가 잇달아 생겨나기 시작했다.

당시 창원시향의 단원이던 전계준 씨가 이때 창단된 함양 위성초등학교 관악부를 맡게 됐다. 열성을 다해 지도하던 아이들이 졸업할 무렵, 계속 음악을 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열망을 보고 고민하던 전 씨는 당시 위성초 교사로 재직하던 전진석 대표와 머리를 맞댔다.

전 대표는 “몇 년 동안 지켜봤다. 시간당 30~40만원하는 레슨도 마다하고 시골로 와서 진심으로 아이들과 함께하는 걸 보고 마음이 움직였다”며 다볕유스윈드오케스트라가 태동된 배경을 설명했다.

이렇게 의기투합한 두 사람을 주축으로 지도교사와 학부모들이 뜻을 모아 2005년 다볕유스윈드오케스트라를 탄생시켰다.

지자체나 기업체 등의 지원 없이 작지 않은 규모의 비영리 단체를 꾸려나가는 건 버거운 일이다.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전 대표와 지휘자, 지도강사, 학부모, 후원자들의 헌신적인 봉사와 뒷바라지가 있었다. 현재 다볕유스윈드오케스트라는 각종 공모사업, 후원사업, 후원회원 확보 등을 통해 연간 1억원 이상의 운영자금을 확보하며 자생력을 키워가고 있다.

지난 2013년에는 전 대표와 함께 교육운동에 몸담았던 경남도 조재규 교육의원의 도움에 힘입어 경남도와 함양군으로부터 지원받은 예산과 법인 자체 자금을 더해 다볕문화센터를 건립했다. 꿈에 그리던 연습실과 사무실 등을 갖춘 보금자리를 갖게 되면서 관악단의 행보는 한층 탄력을 갖게 됐다.

트럼펫 연습.

◇낙후된 지역의 문화수준을 전국적으로 끌어올려

전 대표가 내민 (사)다볕문화 소개서에는 ‘베네수엘라에 엘 시스테마가 있다면 한국에는 다볕유스윈드오케스트라가 있다’라는 글귀가 첫머리를 장식하고 있다. 자못 공감이 갔다.

1975년에 베네수엘라에서 시작된 엘 시스테마는 음악을 통한 사회개혁운동(Social Action for Music)이다. 극빈층 아이들을 음악 교육을 통해 범죄로부터 보호해 원활한 사회 진출을 돕고, 문화적 차별·소외·빈부격차 등의 사회 문제 해소까지 도모하는 것이다.

최근 들어 여러 지자체 등이 ‘선심성 시혜’ 식으로 시행하는 ‘한국형 엘 시스테마’와는 달리, 다볕유스윈드오케스트라는 아이들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자생한 일종의 사회문화운동이다.

전 대표는 “다볕유스윈드오케스트라는 엘 시스테마와 같은 목표를 가졌다”며 “문화적으로 낙후되고 소외된 지역의 문화향유 수준을 끌어올린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궁벽한 시골인 함양의 문화상품 소비자 수준이 전국적이다. 실제로 우리 악단의 거의 모든 공연이 매진 수준에 이르고, 청중의 매너나 성숙도, 공감능력 등이 예술의 전당 청중 못지않다”고 자랑스러워했다.

지역 문화운동 외길을 헤쳐나온 이력에서 나오는 자신감일 터다. 그는 25년여 교직생활 동안 어린이 연극 육성, 학교단위 관악교육시설 지원 등 지역의 문화예술교육운동에 헌신하다가 2006년 교직을 떠나 (사)다볕문화 일에 전념하고 있다.

전계준 지휘자가 단원들과 연습을 하고 있다.

◇빈 소년합창단 같은 세계적인 연주단체로 키우겠다

다볕유스윈드오케스트라는 지금 한국형 엘 시스테마 또는 지역 문화운동의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많은 지역 음악활동가들이 재정 확보 등 운영시스템을 배우기 위해 찾아들고 있다.

주민의 70%가 노령인구에다 재정자립도가 전국 최저 수준인 시골에서 문화운동의 꽃을 키워가고 있는 다볕유스윈드오케스트라가 앞으로 걷는 길이 한국 지역문화운동이 가야 할 지향점이 될 수도 있다.

전 대표는 “앞으로 문화예술재단을 설립하고 우리 관악단을 빈 소년합창단 같은 세계적인 연주단체로 키워보는 것이 목표”라며 “조직은 재생산하고 성장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 앞으로 우리 관악단 출신 아이들이 우리 활동을 이어받도록 하는 것이 작은 소망”이라고 말했다.

“아참, 우리가 모토처럼 삼고 있는 말이 있는데, ‘소리와 함께 크는 아이들’이다.” 말미에 툭 던진 그의 말이 귀에 맴돌았다.

다볕유스의 정기공연.

/ 만난사람= 박철 기자

박철 기자  barkc@seob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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