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디찬 겨울 목 놓아 울던 청년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로

     요즘 시대 지탱하는 단어 ‘존버’

     고향에서 신풍류운동 펼칠 예정

작가 이외수의 특강. <사진제공 : 정상목>

초등학교 3학년이 길을 떠났다. 가난 때문에 정들었던 고향과 친구들을 등지고 대구로, 강원도로 먼 길을 떠났다. 부모님 손을 잡고 길을 나섰던 10살의 어린 소년이, 칠십이 넘은 어른이 되어 내년 초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 어린 소년은 200만명이 넘는 팔로워를 거느리고 있는 ‘트위터 대통령’이자 대한민국 문단의 거장이 됐다. 이외수(70) 그가 가슴 속의 회한과 그리움을 늑대처럼 삼키고, 이제 고향의 품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작가 이외수는 지난 2008년 한국대학신문이 창간 20주년을 맞아 전국 대학생 2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좋아하는 문인’ 1위로 뽑혔다. 고정 독자 40만명을 가진 작가로 트위터 팔로워(Follower) 224만명을 거느리고 있다. 그의 글을 읽는 정기 구독자가 200만명이 넘는 것이다. 이외수가 트위터에 올린 글은 200만 대군에게 알려지고, 그의 친구들은 다시 퍼뜨리기(RT) 기능을 이용하여 재전송이 된다. 이 과정에서 전달 속도는 빠르고, 거센 흐름은 주류를 형성하게 된다. 경남 인구가 345만명이니 그 영향력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이외수는 2009년 6월 19일 140자로 제한된 트위터 글쓰기 속으로 들어갔다. 그의 글이 간결하면서도 중의적인 뜻을 내포하는 점에서 트위터의 적성에 딱 들어맞았다. 이를 잘 활용하면서 소설가보다 더 유명한 ‘트위터 대통령’이 된 것이다. 강원도 산골의 ‘감성마을’이 주목받은 것도 이외수라는 인물이 트위터를 통해 인터넷 세상으로 드러낸 덕분이다. 만약 이외수가 없었다면, 감성마을은 그저 강원도 작은 산골마을로 남아 있을 것이다. 지금도 작가 이외수는 140자의 마법으로 세상사의 다양한 담론을 쏟아내고 있다. 지난 2012년 18대 대통령선거에서 문재인, 박근혜, 안철수 대선 후보들이 잇따라 강원도 화천군 ‘이외수 문학관’을 찾아 러브콜을 던지며 트위터 소통을 시도한 것이 단적인 예이다. 그만의 네트워크가 형성된 것이다.

작가 이외수는 1946년 경남 함양군 수동면 상백리에서 태어났고, 춘천교대를 자퇴한 후 홀로 문학의 길을 걸어왔다. 이외수는 혹독한 가난 속에서 자라왔다. 젊은 시절 3일 정도는 일상적으로 굶었고, 라면 한 개로 일주일을 버틴 적도 있다. 감자튀김 20원어치 사 먹고 다음날 종일 굶고, 번데기 20원어치 사 먹고 다음날 굶고, 돈이 없어 겨울에도 대개 불을 떼지 못했다. 1970년대 강원도 춘천에 살던 이외수는 가난에 숨죽이며 울다가도 “작가가 되겠다는 놈이 이런 고생쯤이야”라는 마음으로 버텨냈다.

그는 원래 긴 머리가 트레이드 마크였다. 라면 값이 15원, 이발비가 25원하던 시절 라면을 먹자고 머리를 자르지 않은 것이 습관처럼 굳어진 것이다. 하지만 2014년 가을 무렵 위암 확진을 받으면서, 의료진들이 불편할까봐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를 자진해 잘랐다. 어쩌면 그는 평생 살아왔던 것처럼 그 무엇에든 최선을 다하고 싶었을 것이다. 위를 잘라내는 수술 후 1년여 동안 8차에 걸친 항암치료를 견디며 마침내 완치 판정을 받았다. 3차 항암치료 시에는 백혈구 수치가 터무니없이 떨어져서 치료를 잠깐 중단하기도 했다. 항암치료는 견디기 힘든 고통 그 자체였다. 하지만 암 투병을 하는 중에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항암일기를 쓰는 등 대중들을 위해 끊임없이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지금도 힘들어 하는 대중들에게 멘토(mentor)로 자리하는 이유다.

어쩌면 이외수는 화가가 됐을지도 모른다. 그의 그림 실력은 많이 알려져 있다. 가난 때문에 홍익대 미대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후회는 없을 듯하다. 그는 국내 최초 생존 작가 1호 문학관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지 않은가. 2012년 8월 강원도 화천군이 감성마을 1243㎡ 면적에 ‘이외수 문학관’을 세운 것이다. 여기에 그의 문학작품과 미술품, 친필 원고 등 소장품을 전시했다. 2만3000명이 넘는 관람객이 찾아오고, 매달 정기적으로 오는 문하생만도 70여명이나 된다. 이외수 작가와의 인터뷰는 지난 15일 함양군 서하면 다볕자연학교에서 열린 강연회를 토대로 진행됐다.

지난 15일 함양군 서하면 다볕자연학교에서 이외수 특강 ‘먹방시대’ 강연회가 열렸다. 그는 고향에서 ‘신 풍류운동’을 펼쳐 나갈 예정이라고 했다. 200만 대군을 거느린 ‘트위터 대통령’ 이외수의 60년만의 귀환이다.

부정과 부패에 대한 돌직구 던져

그는 ‘이외수 특강-먹방시대’ 강연에 위, 아래 흰 옷을 입고 등장했다. 우리나라에는 세 명의 대통령이 있는데 “청와대에 사는 대통령, 어린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뽀통령(뽀로로), 그리고 트통령(트위터 대통령)이 있다”고 유머를 던지며 강의를 시작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트통령이라는 별명이 달갑지 않다고 했다. 대선 이후, 인터넷상에서 시달려 온 마음을 대변한 듯 했다. 그는 준비된 의자와 탁자를 치우고, 불편한 몸인데도 불구하고 꼿꼿하게 한두 번을 제외하곤 1시간 동안 줄곧 서서 강의를 이어갔다. 세심한 부분에도 신경을 쓰고, 진심으로 소통하고자 하는 면목이 엿보였다.

이외수는 강의를 시작하면서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먼저 묵상했다. 선친께서는 6·25참전용사로 화랑무궁훈장을 받으셨다. 이외수 본인도 경남병력으로 논산서 훈련을 받았다. 화천군 홍보대사, 산천어축제 홍보대사, 15사단 홍보대사에다 명예헌병수료증까지 수료했다. 그는 “이런 내게 부정부패를 일삼는 놈들이 ‘종북좌빨’라고 누명을 씌운다”며 원색적 비난도 서슴지 않았다. 그의 이런 발언은 화천에서 세계평화안보문화축전을 4년 동안 열고 있는데도, 아직도 종북이나 좌파니, 보수니 비생산적 대화에 일침을 가하고자 한 것이다.

그는 현재 5개의 채널과 홈페이지를 갖고 있다.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카카오스토리채널, 폴라를 하면서 그가 가진 상상력과 창의력이 시공간을 떠나 자유로이 세상과 교신하는 것이다.

이외수는 강의의 큰 줄기를 “대한민국은 가난하지 않다. 다만, 창고에 쥐새끼가 많을 뿐이다”며 포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외국인은 아는데 한국인은 모르는 한국인의 세 가지 특징을 열거했다. △너희가 얼마나 잘 사는 나라에 사는지 모른다 △너희가 얼마나 위험한 나라에 살고 있는지 모른다 △너희가 얼마나 굳세게 버티고 있는지 모른다.

사실 대한민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12위의 경제력을 자랑한다. 그럼에도 국민들은 여전히 가난한 줄로 착각하고 살고 있다. 한국이 행복지수 꼴지, 청소년·노인·국민 자살률 1위이기 때문이다. 청년들이 우리나라를 ‘헬조선(지옥 같은 대한민국)’으로 부르기도 한다. 여기에는 연애·출산·결혼을 포기하는 3포 시대의 자포자기적인 심정을 더한 것이다.

강연 중간 이외수 작가가 “그럼 우리는 무엇 때문에 사는가. 다 행복한 삶을 위해서가 아닌가”하고 힘주어 말하는 이 부분에서 핵심이 드러났다. 인간이 살아가는 이유는 행복해지기 위해서라는 것. 이외수 작가는 “내 가슴 안에 사랑이 충분히 넘쳐흐를 때 인간은 비로소 행복해진다”고 했다. 사랑을 받으려고 하는 것보다는 사랑을 주는 것이 좋고, 대통령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 강연 서두에서 꺼낸 세 명의 대통령의 의미가 결코 유머가 아니었던 게다.

이외수를 지탱하게 한 단어는 ‘존버’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존나게 버티자’는 뜻이다. 그는 이 단어를 이날 강연에서도 들려줬다. ‘존버’라고 외칠 때, 좀 버틸 기운이 생기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요즘 시대는 욕 나올 정도로 어려운 시대이지만, 좋지 않은 일은 뒤로 하고, 우뚝 일어서자는 주문이다. 사람들과의 갈등, 선택, 그리고 생각의 실타래 속에서 너무 많이 머뭇거리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로도 들려왔다.

작가 이외수는 강연이 끝나고,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행사장을 찾은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사진제공 : 정상목>

이외수 고향에서 <벽오금학도>를 꿈꾸다

특강을 마치고, 이외수 작가에게 궁금한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강연은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이었지만, 질문은 ‘형이하학적(形而下學的)’ 이라 몹시 미안한 마음을 머금고 말이다. 의례적인 질문과 스쳐 지나가는 대화 속에서 뜻밖에 ‘대어’를 낚았다.

이외수는 고향에서 ‘신 풍류운동’을 펼치고 싶어 했던 것이다. 그가 일 년의 절반은 강원도 화천에서,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함양에서 보내면서 신라시대 최치원(857~미상) 선생의 풍류정신을 신 화랑운동과 연결시키고 이를 다시 한류로 재해석해내겠다는 것. 화천이 문학중심이라면, 함양은 새로운 정신의 뿌리를 내릴 수 있는 터전으로 여겼다. 더구나 함양은 최치원 선생이 태수로 부임하여 홍수를 막기 위해 조성한 인공림 상림숲이 있는 곳이다. 지금도 이 숲은 천년 넘게 이어져 오고,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을숲으로 꼽히기도 했다. 그의 소설 <벽오금학도>에서 최치원 선생은 함양과 전북 장수 경계에 있는 백운산 정상에 지팡이를 하나 꽂아 놓은 채 황학을 타고 하늘로 날아갔다고 적고 있다. 이 내용은 야사기록에도 전하여 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벽오금학도>는 이외수가 3년 가까이 자신의 방에 감옥 철창을 치고 쓴 글로 1992년 출판했다.

그는 자신을 낳아 준 고향땅에서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옛 정신을 되새겨 새로운 그 무엇을 창조해내고 싶어 하는 마음을 인터뷰 도중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함양은 ‘좌 안동 우 함양’으로 불리는 선비정신과 유교의 본산지이기도 하다. 그에게 선비정신은 지사(志士)적 정신에 입각해 실천적 행동을 하는 사람이다.

이외수의 본질은 육안(肉眼)과 뇌안(腦眼)을 떠나 심안(心眼), 영안(靈眼)에 가 있는 듯 했다. “영안은 우주의 본질과 신의 본질, 나의 본질이 같다고 깨닫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 시대의 지성이기도 한 그는 “지성에 사랑이 더해져야만 지혜를 얻을 수 있다”며 “인생은 초와 같은 존재로 의지와 정신을 가질 때만이 빛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강연의 초점이기도 한 대목이다. 또 그는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이유에 대해 “손을 내밀어 일으켜 세우고, 목적지 까지 함께 갈 수 있기 때문”이라며 “만물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인간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작가 이외수. 그는 독특한 상상력과 기발한 언어유희로 자신만의 색깔이 뚜렷한 문학세계를 구축해 온 예술가다. 특유의 기벽으로 바보 같은 천재, 광인 같은 기인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다양한 작품들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문학과 철학의 범주를 넘어 우주의 본질까지 지평을 끌어왔다. 그가 앞으로 벌여나갈 새로운 운동에도 관심이 더해진다. 그는 200만 대군을 거느린 ‘트위터 대통령’이 아닌가. 작가 이외수와의 인터뷰가 끝날 때쯤 그의 눈동자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묻고 있는 듯했다. “당신 가슴 안에는 사랑이 충만합니까?” /만난사람=이영철 기자

이영철 기자  leeyc@seob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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