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장 없는 신안에 장터 만들고

난관 극복하기 위해 ‘밴드’ 활용

문익점의 고향과도 가장 어울려

귀농귀촌인의 플랫폼 되길 희망

성경모 기획가와 아내 정남수씨.

2년 전 산청군농촌관광연구회 모임에서 성경모 기획자를 처음 보았다. 행사 사회를 보는데 매끄럽고 편안했다. 올해 있었던 답사모임 진행도 물 흐르듯 순조로웠다. 작년부터는 목화장터 소식을 문자로 받기 시작했고, 밴드에 초대받았다. 귀촌 초보들에게 밴드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임이나 나눔의 정보 창구가 되었고, 어느덧 산청살이의 중심이 되었다.

햇살 좋은 가을날 오후, 그의 집으로 찾아갔다. 마당 한 켠 테이블에서 소모임이 진행되고 있었다. 우리 마을 친구 두 명도 보였다. 빵 모임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옆에 화덕이 있다. 참, 다채로운 삶을 사는구나 싶어 부러웠다. 구워진 빵 한 접시를 앞에 두고 대화를 시작했다.

하는 일이 다양하니 무엇부터 얘기할까 했는데 목화장터 얘기가 저절로 나왔다. 성 기획자에게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물었다. 그는 “신안면은 규모도 크고 귀농귀촌인구로 인해 인구가 증가하는 지역인데 산청군에서 유일하게 5일장이 없어서 다른 지역처럼 장터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성 기획자는 2014년부터 아내 정남수와 함께 인근의 구례, 하동에서 열리는 프리마켓을 다니기 시작했고 주변사람들에게 희망을 말했다. 사람들도 이들의 생각에 동의했다. 그해 12월, 지인 20여 명이 모여 방법을 논의했다. 한 달에 두 번, 일요일 오후 3시간 동안 열고, 상품은 직접 만든 것이나 믿을 수 있는 농산물로 하자는 데 합의했다.

목화장터라는 이름은 아내가 지었다. 문익점의 고향인 산청군의 군화가 바로 목화이다. 따듯한 이미지의 목화는 산청을 홍보하는데 적합하다고 모두들 동의했다. 2015년 3월, 10여 명의 판매자들이 모여 첫 목화장을 열었다. 목화장은 거리를 중심으로 열리는 다른 장과 달리 소공원을 선택했다. 이는 문화기획자이기도 그의 아이디어 때문이다. 거리를 중심으로 한 장은 동선이 길다는 점에서 좋기도 하지만 아쉬움도 컸다. 목화장은 판매자간의 소통공간과 문화공간으로서 모두가 어우러지는 공간이었으면 했다. 마침 시외터미널 인근에 소공원이 있었고, 이들은 신안면장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성경모 기획자의 아내가 이름 지은 ‘목화장터’가 열리는 날에는 서부경남 곳곳에서 인파들이 몰려든다.

산청 신안면 얼레지피는 마을 ‘먼당교육농장’ 가족캠프 진행 모습.

그렇게 목화장은 문화가 있는 장터가 되었다. 작년에는 총 6회의 규모 있는 문화공연이 펼쳐졌고 문화공연이 없는 날에는 음악이 흘렀다. 공연비는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의 문화우물사업 지원비로 충당했다. 차츰 소문이 나자 청소년단체가 자체 문화행사를 장터에 접목하기도 했고, 지역의 실력 있는 공연자들이 재능을 기부했다. 장터가 점점 즐거워지니 인근의 함양, 거창, 의령, 합천에서도 판매자들이 왔다.

소문이 난데는 또 다른 요인도 있었다. 관광지도 아니고 장터 위치도 도로 뒤편이라 유인요인이 별로 없었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밴드를 생각했다. 회원은 산청에 국한하지 않고 타 지역으로도 넓혔다. 회원이 늘었고 타 지역 판매자들이 장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같은 물건도 배제하지 않는다는 원칙 아닌 원칙 덕분에 포용력 있는 장터가 되어갔다. 지난 9월부터 11월까지 장터 지도를 만들고 리스트를 정리해보니 판매자들이 64명까지 있었다.

규칙을 정하면 장터가 크는데 지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장터가 잘되니까 누가 운영하느냐고 물어보기도 하는데 목화장은 운영자가 없다. 성 기획자는 “자신은 기획봉사자이고, 장을 준비하는 사람 모두가 봉사자다. 차광막 설치하는 사람도 봉사자이고 무료솜사탕 만드는 분도 봉사자”라며 “장을 마치고 밥을 사주시는 분도 그저 즐거워서 할 뿐”이라고 했다. 그는 “물건을 떼어다 팔지 말자고 했지만, 그런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사보고 질이 좋다고 입소문을 내주었다. 삶에 도움이 되려고 나온 것인데 상처 주는 말을 어느 누가 할 수 있겠나, 팔리고 안 팔리고는 소비자가 판단할 것이라 생각했다. 플래카드를 붙이면 좋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운영자가 없으니 하고 싶으면 스스로 하라고 했다. 이렇게 운영자 없이 가는 것이 갈등 없는 요인 중 하나”라고 의견을 밝혔다.

타 지역 판매자를 배제하지 않는 것도 목화장의 특징이다. 동등하게 대하고 오히려 좋은 자리를 내주자고 한다.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니 오히려 그들이 구매자가 되었다. 동일한 상품이 나오면 빠지라고 하는 곳도 있지만 동일한 상품이라도 많이 나오면 파이가 커지고 방문객이 많아진다는 게 장터를 만든 이들의 생각이다. 실제로 방문객이 많아지면 한 사람만 잘 되는 게 아니라 다들 판매에 도움이 되고 즐거움도 커진다. 성 기획자는 “장터가 열리는 3시간 동안 팔면 얼마나 팔겠는가, 그 시간동안 이웃들과 대화하고 정보 나누고 문화를 즐기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것이 장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이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장터가 잘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까지 에너지가 많이 들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며 “그럼에도 지속하는 이유는 재미있고, 사람이 모이는 공간을 만들었는데 나도 즐겁고 다른 사람도 좋아하니까 성취감도 있으며, 주변 사람들이 버팀목이 되어주는 힘도 크고, 장을 여는 순간의 기운이 좋다”고 말했다.

귀농 11년차인 성 기획자는 목화장이 귀농귀촌인의 플랫폼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농촌에서의 소통과 나눔은 보통 소속 단체에 국한되어 있는데, 그런 것조차 어려워 외롭고 힘들게 사는 사람들에게 어울리고 친해지는 소통공간이 되길 희망한다. 그런 바램이 모꼬지모임(회원집을 돌아가며 각자 음식 한가지씩을 해 와서 먹고 나누며 즐기는 모임)이나 마수걸이모임(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에 열리는 다양한 강좌모임) 등으로 이어지고 있고, 밴드에서도 정보교류나 물건 나눔을 통해 지역주민들이 연결되고 있다.

성 기획자의 일은 무척 다양하다. 산청군농촌관광연구회 사무장을 7년째 하고 있고 ‘얼레지피는 농촌체험휴양마을’의 대표이면서 자체 운영하는 ‘먼당교육농장’에서 체험과 민박을 하고 있다. 문화우물사업의 문화기획자이고 다양한 곳에서 강의도 한다. 곶감 등 상품마케팅 일도 짬짬이 하고, 귀촌 전에 하던 보험영업도 지속하고 있다. 문화기획자로서의 자질은 귀촌 전에 하던 영업기획 경험이 바탕이 되었다고 한다. 사람을 만나고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자질도 한 몫 할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일을 하지만 모두 연관성 있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많이 바쁘지는 않다고 한다.

귀농귀촌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로 자연스레 이어졌다. 그는 “시골에서는 도시에서 한 가지 일만 하고 받던 월급수준을 유지하기 어렵다. 즉, 농촌에서는 다양한 일을 통해 수입을 얻으니 하나하나 작은 일이라도 소홀히 여기지 말 것”을 조언했다. 귀농한 사람들이 집에만 있지 말고 밖으로 나오면 일이 생기고 수익이 생긴다고 한다. 필자 역시 귀촌 후 다양한 일을 하고 있다. 박하차도 만들고 조합에서 생강차도 만들어 판다. 비폭력대화 강사도 하고 마을대표도 한다. 가끔 시간제 알바도 한다. 초반에는 나의 정체성을 무엇으로 할지 혼란스러웠으나 그 모든 것을 합친 것이 나 자신임을 최근에야 받아들이게 되었다. 지난 5월 유럽농촌연수에서 들었던 말이 떠오른다. 농민은 세 다리, 네 다리로 서야 한다고.

성 기획자에게 귀촌 계기를 물었다. “직장이 세상의 전부인 양 회사 일에 파묻혀 살았는데 어느 날 아내가 이렇게 살지 말자고 해 귀촌하게 되었다”고 했다. 아내는 한살림 생협 활동가로서 먹거리와 교육에 대해 나름 철학을 가지고 살았다. 처음에는 반대했는데 주말에 같이 다니다보니 농촌에 대한 생각이 바뀌어 나중에는 귀농학교에도 같이 다녔다. 그렇게 떠나온 도시인데, 체험과 민박을 하면서 도시사람들과 만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그는 “우선 시골이기 때문에 가족과 친구들이 찾아와서 얘기 나누고 자고 가다보니 서로 이해하고 친해지면서 관계가 더 좋아졌다”며 “외부 손님의 경우는 살아가는 방법과 교육적인 고민을 같이 나누면서 위안을 받고 가족 간의 애정을 느끼고 가는 것에서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먼당교육농장.

필자도 지난 여름 얼레지피는 마을에서 진행한 대산농촌재단의 가족캠프에 초대받아 대화시간을 진행했다. 체험위주의 가족캠프에 대화시간을 넣고 싶다는 제안을 받으면서 필자는 이 분이 탁월한 기획자라고 생각했다. 가족 간의 대화시간을 진행하다보니 도시에서 힘겹게 사는 이들에게 잠시나마 치유의 시간을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매번 알찬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덕분에 성 기획자의 체험마을프로그램은 늘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성 기획자에게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을 물었다. 그는 “지금처럼 부부가 만족하고 살기, 지역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즐겁게 살기, 주위의 어려운 사람이나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도움 되는 삶을 살고 싶다”며 “지원비나 사업비가 들어와서 경제적으로 크게 잘 되기를 바라지 않고, 여유 있고 진정성 있게 살면서 서로 성장하고 싶다”고 말했다. 성경모 기획자오의 두 시간 대화는 2년차 귀촌초보에게 큰 공부가 되었다.

윤인숙  yoonis@seob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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