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협적으로 보이는 유조차 앞에서도 한결같은 자세로 삼보일배중인 성직자들

우리는 아직도‘온 세상의 생명과 평화’를 염원하며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온몸이 부서질듯한 고통을 이겨냈던 문규현 신부, 수경스님, 김경일 교무, 이희운 목사를 기억하고 있다.
초고속을 들먹이는 시대에 가장 느린 속도로 절을 하며 뙤약볕이 내리쬐든 비바람이 불든 한결같이 땅바닥에 고개를 숙이며 65일간 삼보일배로 걸어온 네 명의 성직자를 보고 있노라면 무엇이 이들을 길 위로 나오게 했는지.

과연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삼보일배였을까? 시간이 흘러도 뇌리를 떠나지 않는 기나긴 울림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찾아야 할까? 그 시간속으로 거슬러 가볼까 한다.

수행과 실천이 하나임을 보여준 성직자

시작한지 하루만에 까져버린 무릎을 감싸기 위해 덧댄 천과 감는 붕대는 하루하루 늘어가는 고통의 무게만큼이나 많아진다.

매일밤이면 걱정이 되어 여기저기서 달려온 의료진들의 침과 뜸, 주사, 마사지, 부황, 테이핑요법, 냉찜질, 온찜질 등으로 천막안은 전쟁터의 야전병원을 방불케한다. 삼보일배동안 다녀간 의료진만 해도 수십명이었지만 그 아무리 유능한 의사들도 상태를 보고나면 “삼보일배를 중단하고 휴식을 취하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라는 한결같은 대답뿐이다. 다음날 아침이면 매일같이 일어나기도 힘든 통증이 찾아오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고 그만둘 사람들이 아니다. 이들은 기어서라도 서울까지 가겠다는 분들이 아닌가?

삼보일배기간 내내 따라다닌 육체적 고통과 더불어 또 하나의 어려움은 날씨다. 처음 삼보일배를 시작할때는 3월말인데도 불구하고 매서운 바닷바람과 맞서야했고, 새벽이면 서리가 내린 천막에서 눈을 떠야했다. 추위가 물러갈쯤엔 비가 말썽이었다. 처음 시작할때 원칙은 비가 오면 쉬기로 했지만,“앞으로 가야할 먼길을 생각하면 비 때문에 하루도 지체할 수 없다”는 고집을 아무도 막을 수가 없다. 그러다 한술 더떠 비는 장대비로 바뀌고 천둥번개까지 친다. 이렇듯 말릴 수도 없는 상황이 되면‘이렇게 보고 있느니 차라리 내가 삼보일배를 하는게 낫겠다’는 마음이 굴뚝같아진다.

비가 좀 갠다 싶으면 이제는 더위가 기승이다. 잠시라도 손바닥을 대고 있기 어려울 정도로 잘 달궈진 아스팔트 위로는 네 분 어르신의 땀방울들이 선을 그리며 간다. 한낮에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열기와 도심으로 갈수록 더해지는 공해는 모두를 질식시키기에 충분하다. 정말 시원한 바람 한 줄기, 그늘 한 점이 그토록 간절하고 고마울 수가 없다.

하루종일 걸어야 6km이상 가기가 힘든 삼보일배의 속도로 305km를 갈 수 있으리라고는 누고도 예상치 못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삼보일배 순례단을 서울까지 오게한 숨은 공신들은 바로 계란장수의 계란 한판부터 시작해 휴지, 우유, 생수한통, 찐감자, 날품팔이 할머니의 허리춤에서 나온 꼬깃꼬깃한 만원짜리에 이르기까지 넉넉지 않은 이웃들이 내놓는 작은 정성과 격려이다.
그런가하면 도심으로 갈수록 차 막히는거 안보이냐며 아침부터 욕을 마구 퍼붓고 가는 사람도 많다. 한번은 천안에서 욕을 하고 갔던 운전자가 며칠 후 평택을 지날 때 다시 만나게 되자“죄송합니다. 지난번에 그것도 모르고 욕한 제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이거 제가 지금 가진게 이것밖에 없어서”라며 주머니를 털어 미안한 마음을 전했던 적도 있다.

일반인이라면 평생이 걸려도 못할 2000배의 절을 매일같이 올리며 바닥에 떨어진 담배꽁초와 이마가 닿건 말건 전혀 개의치 않고 한없이 자기를 낮추는 네 분의 성직자를 보고 있노라면 지금 우리는 과연 무엇을 위해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걸까 싶다.

남녀노소 종교 지역 떠나 대화합 이끌어

네 분의 성직자가 보여준 삼보일배는 단순히 세 걸음 걷고 한 번 절을 하며 자신의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의 결과를 참회하는 불교의 수행법만은 아니다.

동서고금을 통털어서 4대 종교계의 성직자들이 305km라는 거리를 삼보일배로 갔다는건 전례가 없던 일이다. 이들이 한자리에 모이게 된 것이 단순히 새만금 간척사업을 반대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새만금사업이 분명 촉각을 다투는 중요한 사안이지만 본질은 오늘날 환경위기를 초래한 물질 위주의 삶과 정책을 한번쯤 돌아보자는 뜻에서 시작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한걸음 한걸음 구슬땀과 함께 올린 절은 개발의 논리로 죽음과 생명 파괴가 난무하는 이 시대의 뭇 생명들에게 하는 참회의 몸짓이요, 평화와 화합을 기원하는 간절한 기도였기 때문이다. 지금 이순간에도 여러 곳에서는 투쟁을 위한 욕설과 비난이 난무하고 있다. 삼보일배가  온국민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소리없이 자신의 몸을 최대한 낮춰 참회하는 진심 때문이었다.

환경과 조화되는 삶을 화두로 삼아

하루, 이틀 몸으로 견디며 할 수는 있지만 일주일이 넘어서면서부터 체력이 아닌 정신력으로만 이어 갈 수 있다.

과천 정부청사에서, 57일만에 서울에 들어오게 됐을 때 쓰러졌던 수경스님이 휠체어를 타고 나타났을때 신부와 스님, 교무와 목사가 포옹을 하며 흘린 뜨거운 눈물로 각각 다른 종교에 속한 성직자들은 하나가 되었고, 그 모습을 보는 이들은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비폭력과 침묵이 가진 힘이 그 어떤 연설보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저절로 움직였고 무지한 우리들에게 갯벌이 가진 가치와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일깨워줬다.

“닳고 닳은 우리에게 감동을 할 가슴이 남아있을까?” 

문화비평가 진중권씨는 삼보일배를 보고서야“이들의 모습은 삭막한 시대를 살아가는 황폐한 가슴들에게 글자 그대로 감동을 주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네 명의 성직자들이 우리에게 안겨준 것이 비단 감동만은 아닐 것이다.
우
리 모두가 급속하게 발전하는 사회속에서 잠시 잊고지냈던 화두를 넓은 마당으로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세계는 지금 발전이냐 생명이냐의 문제를 놓고 대치하고 있다. 부시의 욕심이 낳은 이라크전쟁이 그렇고 새만금을 비롯한 곳곳에서 많은 뭇생명들이 위협받고 있는 현장들이 그렇다. 갯벌과 산과 바다는 우리에게 수만년 동안 무한한 해택을 주었는데, 이제와서‘개발’이냐‘생명’이냐 하는 문제로 짓밟을 수는 없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세와 간절한 침묵으로 네분이 보여준 65일간의 삼보일배는 우리 모두의 마음을 움직이고 잠자고 있던 의식을 일깨워준 소리없는 가르침였다.

인간과 자연이 본래 둘이 아닌 하나임을 잊지 않는다면 삼보일배가 준 교훈을 거울삼아 개발과 환경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하나 둘 풀어가는 것은 이제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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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준비호1>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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