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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만에 인정받은 ‘부마민주항쟁’… 국가기념일 지정
  • 특별취재팀
  • 승인 2019.10.29 15:04
  • 호수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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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4대 민주항쟁
기념일 지정에 40년 걸려

이제야 제대로 된 평가받아
민주인사 등 3000여명 참가

문재인 대통령 기념식 연설
“민주주의의 새벽을 열었다”

‘부마민주항쟁’이 40년 만에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16일 경남대 교정에서 열린 기념식. <사진: 청와대>

1979년 10월16일부터 20일 사이 부산·마산에서 발생한 ‘부마민주항쟁’이 지난달 24일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부마만주항쟁은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이끈 1960년 4월 혁명,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1987년 6월 항쟁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4대 민주항쟁 가운데 하나로 꼽히지만, 유일하게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지 못했었다. 국가기념일로 지정되는데 40년이 걸린 것이다.

부마민주항쟁은 40년 전 유신 독재를 무너뜨린 결정적 계기가 된 사건임에도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이 항쟁은 4·19혁명 이후 20년 만에 유신철폐와 독재타도를 외치면서 대중투쟁의 전통을 부활시켰다. 이후 1980년 서울의 봄, 5·18광주민주화운동, 1987년 6월 민주항쟁 정신으로 이어졌다. 그 민주정신은 오늘날 촛불 혁명으로 다시 계승돼 이 땅의 진정한 주인이 민주시민임을 대내외에 보여주는 역사적 원동력이 됐다.

정부는 민주화운동의 도화선이 된 ‘부마민주항쟁’ 40주년을 맞은 지난 16일 경남지역 항쟁의 발원지인 경남대학교에서 대규모 기념식을 가졌다. 이번 기념식은 국가기념일 지정 이후 처음으로 정부가 주관하는 행사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부마민주항쟁은 서슬 퍼런 유신독재에 맞서 억눌린 자유와 민주주의를 되찾고자 하는 학생과 시민들의 용기와 헌신, 열망으로 피워낸 뜨거운 민주의 불꽃이었다”면서 “4·19 혁명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6·10 민주항쟁과 함께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국가기념일로 기리게 되어 경남시민들께서도 더욱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마산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성지이다. 3·15의거로 4·19혁명의 도화선이 된 곳도, 1987년 6월항쟁의 열기가 주춤해졌을 때 항쟁의 불꽃을 되살려 끝내 승리로 이끈 곳도 바로 이곳 마산이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기념식에는 문 대통령 외에 부마민주항쟁 관련자와 부산·창원의 예술인은 물론 부마민주항쟁을 비롯한 민주화운동단체 대표 등 시민 3000여명이 참석했다. 김명수 대법원장과 유남석 헌법재판소장, 권순일 중앙선거관리위원장,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김경수 경남지사, 오거돈 부산시장 등도 참석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도 참석해 문 대통령과 악수를 나눴다.

문재인 대통령이 기념사를 하고 있다. <사진: 청와대>

# 부마민주항쟁의 의미

1979년 10월16일 박정희 대통령 18년 군부독재에 맞서 부산대학교에서 시작된 항거는, 부산의 도심으로 번졌고 18일에는 마산으로까지 나아가 유신독재 최초이자 최대의 시민항쟁으로 타올랐다. 서슬 퍼런 유신독재 시기에 부산과 마산의 시민은 “유신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며 18년 군부독재가 무너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부마민주항쟁의 10월 정신은 이듬해 5월 광주에서 5·18민주화운동으로 이어져 군부독재에 대한 저항은 더욱 강력해졌다. 1979년 10월 부마와 1980년 5월 광주는 모두 군부독재에 대한 저항에서 출발한 하나의 사건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1987년 6월 전국적인 규모로 계승된, 군부독재에 대한 저항은 이 땅에서 군부독재를 영원히 몰아냈다.

부마민주항쟁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면면히 이어질 수 있게 한 시발점이자 원동력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촛불혁명으로 그 정신은 계승되어 평범한 시민이 이 나라의 진짜 주인임을 알게 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살아 있는 역사이다.

# 부마민주항쟁의 배경

1979년 5월3일 신민당 전당대회에서 ‘민주회복’의 기치를 든 김영삼이 총재로 당선된 후 정국은 여야격돌로 더욱 경색되었다. 8월11일 가발수출업체인 YH무역 여성 노동자들이 신민당사에 들어가 부당폐업을 반대하며 농성을 벌이다가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으로 22세 여성 노동자가 사망하고 수많은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어 9월8일 김영삼에 대한 총재직 정지 가처분 결정, 10월4일 김영삼의 의원직 박탈 등 일련의 사건이 발생함으로써 유신체제에 대한 야당과 국민의 불만이 크게 고조되었다. 이러한 가운데 10월13일 신민당 의원 66명 전원이 사퇴서를 제출하였으나 공화당과 유정회 합동조정회의에서 ‘사퇴서 선별수리론’이 제기되어 부산 및 마산 출신 국회의원들과 그 지역의 민심을 크게 자극했다.

1979년 10월 초 김영삼 신민당 총재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박정희의 유신독재를 강력히 비판했고, 이를 빌미로 박 정권은 김영삼을 의원직에서 제명했다. 그러자 김영삼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닭의 모가지는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며 유신정권을 정면 비판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으로 시민들은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독재와 공화당에 염증을 느끼게 되었으며, 그 분노가 부산과 마산에서 대규모 항쟁으로 나타났다.

# 부산·마산 지역의 경기침체

1970년대 말 수출 중심의 한국 경제는 제2차 오일쇼크라는 세계자본주의체제의 위기와 결합해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 물가가 상승하고 경기가 침체되었으며, 불황으로 서민들의 삶은 더욱 힘들어졌다. 경제적 모순이 극명하게 드러난 곳은 저임금 노동자를 바탕으로 한 수출지향적 경공업 도시였던 부산과 마산이었다. 정부는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중소자본가, 봉급생활자, 도시 노동자와 농민 등에게 안정화 비용을 부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 이러한 부가가치세 도입은 사회적 불만을 더욱 증폭시키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부마민주항쟁 타임라인

‘부마민주항쟁’ 국가기념일 지정을 환영하는 모습. <사진: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 1979년 10월16일
부산대학교 구내 도서관 앞에서 약 500명의 학생이 모여 반정부 시위를 벌이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동아대학교 학생들까지 합류하여 시위대는 부산 시내 중심가까지 진출하였고, 이를 막으려는 경찰과 곳곳에서 충돌했다.

○… 1979년 10월17일
17일 시위에는 시민들이 합세하기 시작했다. 야간시위에서 시위대는 3만에서 5만명에 이르렀다. 시위대에는 화이트칼라, 노동자, 상인, 업소 종업원, 무직자, 반실업상태 자유노동자, 고교생들도 동참했다. 밤늦게까지 계속된 시위에서 시민·학생들은 KBS부산방송국과 도청·세무서·파출소 등을 파괴했고, 일부 경찰차량과 보도기관의 취재차량도 피해를 입었다. 이는 바로 정부의 독재, 언론의 소극적 태도, 부가가치세 도입에 대한 불만의 폭발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 1979년 10월18일 
10월18일 경남대학교 학생 1000여명이 기동 경찰 300여명과 대치하다 투석전을 벌였고 3·15 의거탑에서 1000여명이 스크럼을 짜서 유신철폐와 독재타도 및 언론자유를 요구하는 시위를 전개하는 등 시내 곳곳에서 대규모 시위가 전개됐다. 이날 저녁부터는 학생들과 시민 수천 명이 시내 중심가를 메우고 경찰과 투석전을 벌이는 대규모 군중 시위를 전개했다. 사태가 심상치 않게 확대되자 부마항쟁에 대해 박정희 정부는 강경책으로 대응했다. 정부는 18일 새벽 0시를 기해 부산 일원에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 1979년 10월19일 
19일에는 더욱 치열해져 마산 시내는 한때 무정부 상태가 되었다. 이날 저녁 8시경, 시위대는 경남대학교와 마산산업전문대학교, 그리고 일부 고교생까지 합세하여 약 8000명에 이르렀다.

○… 1979년 10월20일 
부산 일원에 계엄령을 선포한 지 2일 뒤인 10월20일 정오를 기해 정부는 경상남도 마산 및 창원 일원에 위수령을 발동했다. 이와 함께 마산 지역 작전사령부는 마산 일원에 군을 진주시켜 공공건물에 대한 경계에 들어갔다. 계엄령이 선포된 부산 지역에는 공수부대가 동원되어 시위하는 시민과 학생에 대해 강도 높은 진압이 이루어졌다.

○… 1979년 10월26일 
항쟁이 소강상태에 빠진 상황에서 일주일도 안 되어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대통령 박정희를 저격한 10·26 사건이 발발하였고 유신체제는 막을 내렸다.

특별취재팀  newsnur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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