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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부 사령관 하준수의 고향… 위세 당당했던 도천마을
  • 서부경남신문
  • 승인 2019.11.11 15:54
  • 호수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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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곡면 개평마을과 더불어
함양을 대표하는 반촌(班村)

면소재지 학교 위치하려하자
통학에 불편 준다고 반대
허허벌판에 학교 세워져

‘호정집’ 미국 도서관에 소장
독립운동 유공자 5명 태어나
남도부 사령관 하준수 배출

진산부원군 하륜(河崙) 부조묘. 하륜 선생은 1398년 1차 왕자의 난에 이방원을 도와 정사공신이 되고, 1400년 2차 왕자의 난에 이방원을 도와 태종으로 등극시킨 좌명공신이다. 진산부원군묘당은 외삼문인 대문간채와 내삼문, 사당, 그리고 맞배지붕으로 되어있는 문충세가 안채와 아랫채로 구성되어 있으며, 사당은 모도 단청에다가 벽면에는 벽화를 그려 넣었다. <사진: 서부경남신문>

[글= 이철우 본지 회장] 함양읍에서 위천을 거슬러 병곡·백전 방향인 북쪽으로 나 있는 1001번 지방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처음으로 마주하는 마을이 병곡면 도천마을이고 그다음 마을이 가촌이다. 가촌을 지나면 들 가운데 외따로 위치한 학교가 보이는데, 1932년 9월30일 개교한 병곡초등학교이다. 예나 지금이나 학교는 읍면소재지나 교통의 중심지인 마을에 위치하는 것이 상례이다.

그런데 병곡초등학교는 주변에 민가는 물론 구멍가게 하나 없는 허허벌판 가운데 위치하고 있다. 왜 이런 외진 곳에 학교를 세웠을까. 관심 있는 사람들을 궁금하게 만든다. 문제는 1932년 학교를 세울 당시 위세가 당당했던 도천마을 때문에 생긴 일이였다. 권세 있는 사람들의 횡포였다.

도천마을 사람들은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면소재지인 송평마을에 학교가 위치하면, 도천마을 학생들의 통학에 불편을 준다고 도천마을에 학교를 유치하려고 하였다. 송평마을을 비롯한 위쪽마을 면민들이 반대한 것은 당연지사. 타협안으로 도천마을과 송평마을의 중간지점인 들 가운데 학교를 세우게 되었다고 한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9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학교 주변은 건물하나 없다.

당시 학교장은 학교사택에서 거주하였는데, 후임 교장에 의해 세상에 알려진 개교당시 교장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일본인 야베 교장은 사택이 주변에 인가(人家)도 없는 외딴곳에 있어 밤이면 혹시나 밤이슬 맞고 다니는 손님이라도 들이 닥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는지 사택창문을 모조리 부목을 대어 못질을 하여 사용하였다고 한다.

1932년에 개교한 함양 병곡초등학교. 면소재지인 송평마을과 도천마을 중간 허허벌판에 학교가 세워졌다. <사진: 서부경남신문>

그럼 도천마을은 어떤 마을인가. 젊은 사람들은 빨치산 사령관 하준수의 고향마을 정도로 알고 있다. 하준수라는 걸출한 인물 때문에 다른 것은 묻혀버리고 있는데, 도천마을은 지곡면 개평마을과 함께 함양을 대표하는 반촌이다. 개평마을이 하동정씨와 풍천노씨의 집성촌이라면, 도천마을은 진양하씨의 집성촌으로 재력과 세도가 당당하던 마을이었다. 도천 하씨가 ‘하~하~’웃으면 정취 허씨는 ‘허~허~’치고 화답한다는 말이 있다.

도천마을은 마을의 터가 와우형(臥牛形)이라 소가 누워있는 형국이라 하여 우동(牛洞)이라 했는데, 우리말로 우루목이란 뜻과 서로 통하여 우루목으로 불리고 있다. 또 우루목은 물이 모이는, 물이 풍부한 마을이란 의미도 있다. 물은 재물을 뜻한다. 재물이 있으면 벼슬을 살 수 있고 명예도 살 수 있다고 했다. 우루목은 돈도 벼슬도 가진 사람이 많았다, 함양읍의 서쪽이라 서면이라 부르는 병곡·백전방향의 들판의 대부분이 도천사람 소유였다. 그래서인지 서면뜰을 일명 도천뜰이라 불렀다.

진양하씨의 입향조는 양암공(陽庵公) 하활(河活)이 조선 중종때에 진주 단목에서 옮겨왔다. 그 후손들이 번창하고 유수한 학자·효열·잠영(簪纓)이 속출하여 우루목 하씨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다. 마을 가운데 있는 문충공(文忠公) 종가(宗家)에는 문화재로 지정된 조선 영조 50년(1774년)에 창건된 진양하씨 문충공(文忠公) 하륜(河崙)의 부조묘(不廟)인 진산부원군묘(晉山府院君廟)가 있다. 부조묘란 불천위(不遷位)를 모시는 사당이다. 본래 제사는 고조까지 4대를 봉사(奉祀)하고 그 위의 조상들은 시제 때 모시게 되어 있으나 나라에 큰 공훈이 있거나 도덕성과 학문이 높으신 분에 대해 불천위에 봉해지면 영구히 사당에서 제사를 모시게 되어 있다. 불천위를 모신다는 것은 가문의 영광이라 정성껏 모신다.

오랜 세월동안 우루목 하씨가 숱한 부침을 거듭하면서도 사족으로서 명예를 높이고 긍지를 공고히 할 수 있었던 것은 고색창연한 부조묘를 정성을 다해 지켜왔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잘 관리하고 있다. 문충공 하륜의 재실인 경충재(景忠齎)는 조선 철종 6년(1855년)에 짓고 같은 해 경충재판 ‘호정집(浩亭集)’을 다시 간행한 곳이다. 경충재판 호정집은 일본 경도대학과 미국 버클리대학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조선 초기의 공신 하륜의 시문집인 호정집. 이 책은 일본 경도대학과 미국 버클리대학 도서관에도 소장돼있다.

하활의 아들인 하맹보 선생은 웃마을 우물 뒤에 터를 잡고 살았다. 그 부인이 매일 새벽 이 우물의 정화수를 떠 놓고 남편과 그의 아들을 위해 기도했다. 남편은 충·효·예를 갖춘 공신이 되었으며, 그의 아들 하제는 군자감을 지냈다. 아들 하제는 어머니의 정성을 기리기 위해 우물 위쪽에 한 그루의 소나무를 심었다. 그 나무가 점점 자라면서 용이 승천하는 모습으로 변해갔다는 수령 450여년으로 추정되는 경상남도 기념물 제213호인 함양 도천리 용천송(龍天松)이다.

동구 밖에는 효자 진양하씨 삼인 정려비각(孝子 晉陽河氏 三人 旌閭碑閣)이 있어, 지나는 길손들은 옷깃을 여미게 한다. 위천 강변의 솔숲은 양암공이 우루목에 거처를 정할 때에 조성되어 지금까지 후손들에게 대물림되고 있다. 강변을 따라 풍광 좋은 곳에는 원계정 (遠溪亭), 하한정(夏寒亭), 수옥정(漱玉亭)의 정자가 있다. 선조들이 자연을 즐기며 심성을 함양하고 때로는 소객과 더불어 풍류를 즐기던 귀중한 유산으로서 우루목 하씨의 학풍의 돈독함을 대변하는 듯하다.

경상남도 제213호 도천마을 용천송. 용이 우물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형상을 한다하여 용천송이라 불린다. 충·효·예를 상징한다. <사진: 서부경남신문>

문충공 하륜의 종가에서는 문충공을 추모하기 위하여 자(字)인 대림을 넣은 정자를 건립하려 누대에 걸쳐 노력해오던 중, 20대손 하종규가 2020년 11월 완공목표로 진행 중에 있다. 효행은 재속의 불씨처럼 꺼지지 않고 길이 유전된다는 옛사람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이 마을에는 하제연, 하재익, 하승현, 권도용, 윤영화 등 독립운동 유공자 5명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또 현대사에 이름을 올린 남도부 하준수라는 걸출한 인물이 있다. 하준수의 집안은 조선조 사마벼슬을 지내 하사마로 불리는 하준수의 증조부인 하재구로부터 아버지 하종택 대에 이르기까지 일군 재산이 천석꾼인 함양의 부호였다. 그의 아버지 하종택은 일제강점기에 22살부터 오랫동안 병곡면장을 지냈다.

하준수는 일본 주오대학 법학부에 다니던 중 태평양전쟁에 참전할 학병으로 징집되자, 징집을 거부하고 지리산으로 숨어들었다. 1945년 3월, 지리산 근처 괘관산에서 동지 70여명을 모아 조직한 결사단체인 보광당을 결성하기도 하였다. 이념적 성향은 여운형과 가까워, 여운형 주도의 조선인민당에 참여하여 함양군당위원장을 맡기도 하였다. 1949년 7월 조선인민유격대 개편시 태백산지구 부사령관으로 사령관인 김달삼과 함께 태백산 일대의 유격대를 지휘하였다. 휴전 후인 1954년에 대구에서 체포된 뒤 1955년 여름 처형되었다.

이병주의 소설 <지리산>의 주인공 하준규가 남도부 하준수를 모델로 삼은 인물이라, 이소설이 널리 읽히면서 유명해졌다. “전설적인 남한 유격대 총사령관 하준수 일대기”라는 문구와 함께 <남도부>라는 제목의 실화소설도 나와 있다. <지리산>에서 주인공 하준규는 은빛 강물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한다. “우리에겐 조국이 없다. 다만 산하만 있을 뿐이다.”

서부경남신문  newsnur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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