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호(대전대 경제학과 교수 · 함양시민연대 고문) 님이 보내주신 칼럼입니다. 

그의 '함양사람' 발언은 그가 비록 선거에 의해 군수가 되었지만 초보적인 민주주의 훈련조차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반증한다. 대화를 하기 위해 공식적으로 방문한 시민대표에게 함양사람이 아니라고 힐난한 것은 시민대표의 자격을 원천적으로 부인하는 것이고, 대화상대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군수를 제대로 하려면 처세술로서의 능란한 인간관계에 앞서 민주적인 인간관계부터 공부해야 할 것이다. 
     
또한 그는 '함양사람'이라고 하는 미묘하고도 상대적인 개념을 절대화함으로써 스스로 자가당착에 빠지고 있다. '함양사람'이라는 단어를 절대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함양에서 태어나서 줄곧 함양에서 살아 온 사람들뿐이다. 그리고 그들의 눈에는 군수 역시 '함양사람'이 아니다. 군수가 시민단체 대표보다 '더' 함양사람일 지는 모르겠으나, 공개 석상에서 기선을 제압하는 수단으로 사용할 정도는 아닌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그의 텃세의식이다. 읍내에 살다가 인근 면으로만 옮겨가도 '들어온 놈' 소리를 듣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이런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정서가 완화되지 않고서는 함양으로의 인구 유입은 기대할 수 없다. 그런데 군수가 앞장서서 텃세를 부리고 있으니 이래 가지고서야 어떻게 함양의 군세를 키우겠는가. 인구 유입은 염불처럼 외고 다닌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그대들 머리 속의 낡은 바리게이트부터 철거하라.
 
내가 고향에 내려오기 위해 토지를 매입한 날 골프장 건설을 반대하는 공동대책위원회가 출범했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겠지만 나 역시 조용히 살고 싶어서 귀향하는 것이고, 따라서 고향 땅에서 내가 추구할 것은 그저 무사안일(無事安逸)인데, 어쩌자고 토지매입비 잔금을 치르자마자 골프장 건설 반대 시위에 참여하게 되었다. 지곡과 서상에서 오신 노인들과 소한 추위의 읍내 거리를 돌면서 나는 줄곧 '함양사람'에 대해 생각했다.

누군가 시위행렬 속의 나를 지목하여 "저 자는 함양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할지 모른다. 나로 인해 시위의 순수성이 훼손될 수도 있다. 나처럼 일찍이 출향했다가 고향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은 군수처럼 기세등등한 '함양사람'들 속에서 주눅 들린 채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 나이에 남의 눈치나 보면서 살라고 귀향하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내 눈에는 가짜 함양사람으로 보이는 자들의 텃세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350여명의 함양사람들이, 몸도 성치 않은 노인들이 거리에 나와 골프장 건설 반대를 외쳤다. 한 쪽 다리를 절룩거리는 할머니께 걱정을 했더니 "지금 다리 아픈 기 문제요? 죽기 살기로 해야제" 하신다. 모두가 칠순을 넘긴 듯이 보이는 연로한 함양사람들이 생존이 걸린 문제를 들고 군청에 도착했을 때 '함양사람' 함양군수는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엄동설한에 동네 강아지가 떨다가 들어와도 이렇게 하지는 않는다.
 
경찰이 겹겹이 방어진을 친 가운데 부군수가 나와서 구두로 골프장 건설 의지를 당당하게 피력했다. 무능하고 게으른 자들은 항상 남의 뒤꽁무니만 따라 다니는 주제에 신념은 앞서가는 사람들보다 더 강하다. 자신을 함양사람은 아니라고 전제한 부군수는 함양 전체의 발전을 위해서 해당 지역 주민들이 희생해 달라는 취지의 발언도 했다. 전체를 위한 부분의 희생! 유신시절에 많이 듣던 말이다.
 
새겨듣기 바란다. 부분은 구체(具體)고 전체는 추상(抽象)이며, 이 경우 대부분의 추상은 허상(虛像)에 지나지 않는다. 쉽게 말해서 지들 꼴리는 대로하고는 그걸 전체를 위해서라고 우긴다는 뜻이다. 더구나 골프장 건설 반대는 절대로 소수의 목소리가 아니다. 왜냐하면 함양의 어떤 마을이건 그 마을에다 골프장을 건설하겠다고 하면 열이면 열 모두가 반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전체는 부분의 합(合)이니, 모든 부분들의 반대는 곧 전체의 반대다. 골프장 건설논자들이야말로 한 줌도 안 되는 소수인 것이다.     
 
30년 만에 참여한 시위에서 나는 군수가 자신보다 더 함양사람인 지역주민들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았다. 기본적으로 그는 '함양사람'을 거론할 자격이 없다. 함양사람이 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함양산천과 함양사람을 사랑한다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대놓고 말할 수 있다. 함양주민을 무시하고, 그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산천을 파괴하려는 군수, 당신이야말로 '함양사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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