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직하게 재현한 1979년 그날
신군부 세력의 반란 막기 위한
일촉즉발의 9시간 섬세히 그려

지난 역사 되돌아보고 반성해야
오늘도 제대로 자리할 수 있어

영화 <서울의 봄>은 1979년 12월 군사쿠데타의 밀도 있게 묘사해 역사를 환기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영향력을 갖고 있다. 아직도 지난 역사를 반성하고 있지 않을 때 지난 시대의 뒤틀린 역사를 조명하는 것은 의미가 크다. <사진: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한국 현대사에서 5·16에 이어 두 번째 군사쿠데타인 12·12 군사반란을 밀도 있게 묘사한 <서울의 봄>은 지나간 역사를 환기한다는 점에서 영화가 갖는 사회적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그 시대에 없었던 20~30대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연일 화제를 불러오면서 천만 영화 기대감을 높이고 있을 정도다.

1979년 유신독재자 박정희가 김재규에 의해 암살된 이후 상황을 그린 <서울의 봄>은 2시간이 넘는 상영시간이 훌쩍 지나갈 만큼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뻔히 아는 역사적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긴장 속에 볼 수밖에 없는 영화는 지난 역사의 불행을 목도하게 한다. 전두환을 중심으로 노태우 등의 신군부 일당은 불법적으로 권력을 찬탈했고, 이는 이듬해 1980년 광주시민들에 대한 피의 살육으로 이어진다.

12·12 사태로 불리던 신군부의 군사반란은 김영삼 정권이 들어서며 단죄됐다. 성공한 쿠데타는 무죄라는 논리를 편 검찰의 기회주의적 태도가 머쓱할 정도로 하나회 숙청으로 이어진 역사 바로세우기는 당연했다.

감독의 변 ‘선과 악의 대결’

<서울의 봄>은 <남산의 부장들>로 10·26 사태의 이면을 영화화했던 제작사 (주)하이브미디어코프가 기획한 시나리오 제안을 받은 김성수 감독의 작품이다. 그는 <비트>와 <태양은 없다>에서 1990년대 후반 가진 것 없는 청춘의 세계를 스타일리시하게 그리면서도 리얼리티를 놓지 않았다. <감기>는 당시 관객이 겪은 적 없는 바이러스로 인한 생생한 재난의 참사와 사투를 그렸고, <아수라>에서는 물고 물리는 악인들의 세계를 독한 리얼리티로 완성한 바 있다.

<서울의 봄>을 내놓으며 12·12 사태의 기억을 회상하며 연출의 변을 이렇게 밝히고 있다.

“나는 겨울밤의 찬 공기를 조용히 삼키면서 20분이 넘도록 총성을 들었다. 한남동에 살던 19살 무렵 경험한 그 순간은 오랫동안 기억 속에서 재생되었다. 잔뜩 웅크린 채 두려움에 떨면서도 ‘누가 왜? 누구와 싸우는지’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을 느꼈다. 훗날 ‘12·12 군사반란’으로 자세한 내막이 알려졌을 때 나는 오래된 의혹이 해소됨과 동시에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아니 저렇게 쉽게 권력을 빼앗겨? 그것도 하룻밤 만에?’ 당시 반란을 일으킨 신군부의 대담한 작전과 탐욕에 대해 분개했고, 허망하게 무너져 내린 대응 방식도 안타까웠다. 철저히 감춰졌던 이 사건으로 나의 20대가 패배의 상실감과 매캐한 최루탄 연기에 갇혀 흘러갔구나를 깨달았다. 세월은 또 흘러갔지만, 그 속상함은 내내 사라지지 않았고 문득 밤하늘을 뒤흔들던 총성이 떠오르곤 했다.

2019년 가을 제작사 대표에게 <서울의 봄>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나는 혈관 속 피가 역류하는 듯한 전율을 느꼈다. 처음에는 정중히 거절했지만 내 마음은 어느새 잔뜩 겁에 질린 열아홉 살이 맞닥뜨린, 숨 막히는 그 겨울밤 속으로 정신없이 내달리고 있었다. 내가 감히 한국 현대사의 운명을 바꾼 그날을 제대로 그려낼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다음 해 여름 나는 용기를 내어 시나리오를 움켜쥐었고, 한 가지 화두를 꼭 붙잡고서 각색에 몰두했다.

12월의 몸서리치게 추웠던 기나긴 밤, 명분은 왜 탐욕과의 힘겨운 싸움에서 끝내 물러서지 않았는가? 반란을 주도한 ‘탐욕의 왕’에 끝까지 맞서는 진짜 군인 한 사람을 떠올렸다. 이 완강한 남자를 중심에 두면 관객은 그의 시선으로 신군부 세력이 저지른 만행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제 관객을 12·12의 숨 막히는 현장 속으로 밀어 넣기만 하면 될 것 같았다.

불과 하룻밤 사이에 벌어지는 흥미진진한 ‘선과 악의 대결’을 관객들이 긴장감 있게 봐줬으면 한다. 영화가 재미있다면, 자연스럽게 ‘대체 1979년 12월에 우리나라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지?’ 하고 되물을 것이다.

열아홉 살의 내가 품었던 의구심과 지금 영화관을 나서는 관객의 호기심이 만나게 되기를 희망하며, 44년 동안 마음속에 응어리졌던 숙제에 대한 답을 이 영화로 갈음한다.“

공교로운 영화 개봉일

<서울의 봄>의 타임라인은 10·26 대통령 시해 사건 당일에서 시작된다. 보안사령관인 전두광이 계엄법에 따라 합동수사본부장에 임명되는 것에서 시작해 군사반란 직전까지의 국가적 혼란 속 아슬아슬한 국면을 따라간다.

그래서 12·12 군사반란 당일 한국 현대사의 흐름이 바뀌는 분수령이 된 9시간의 공방은 그 어떤 영화보다도 드라마틱하고 역동적이다. 하룻밤 사이에도 공수가 몇 차례 바뀌는 일진일퇴의 공방은 물론, 수많은 이들의 욕망과 명분이 뒤얽힌 그날 밤의 심리적인 긴장감까지 담아냈다.

제작사에 따르면 관객이 현장에 있는 것 같은 실감, 대규모 대치 씬과 총격전 등의 스케일, 그럼에도 인물의 감정을 놓치지 않는다는 것이 촬영 원칙이었다. 철저한 사전 작업과 함께, 매 장면 리허설을 통해 현장에서 발견한 더 리얼한 해법을 찾아 나간 <서울의 봄>은 인물의 감정과 함께 호흡하는 카메라 워킹으로 12·12 그날의 이야기를 드라마틱하게 그렸다.

<서울의 봄>을 통해 전두광으로 나오는 전두환에 대한 재평가가 나오는 것은 의미 있다. 한국 현대사를 쿠데타와 학살로 더럽힌 역사적 죄악를 들춰낸 덕에 젊은 세대의 분노가 치솟고 있고, 2021년 사망 후 파주 쪽에 안장할 계획도 틀어졌다.

공교롭게도 <서울의 봄>이 개봉한 날은 전두환 씨가 사망했던 11월 23일 하루 앞두고 있던 11월 22일이었다. 아직도 쿠데타 세력이 지난 역사를 반성하지 않고 있는 때에 한 편의 영화가 지난 시대의 뒤틀린 역사를 조명하는 것은 의미가 크다.

합천에 전두환의 호를 딴 일해공원이 있다. 이제는 군사반란의 수괴이자 양민학살의 주범을 기리려 했던 것에 부끄러움을 느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성하훈 영화저널리스트

성하훈 영화저널리스트  doomeh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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