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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맘의 쉼터 순천만
김순이 수필가, 소나무5길 문학회.

순천만 습지를 어느 계절에 가면 좋겠냐는 질문을 종종 듣는다. 그때마다 나는 사계절이 모두 좋다고 힘주어 말한다. 결코 성의 없는 대답이 아니다. 순천만은 사계절 다 어여쁜 계절이기에 그렇다.

서른 중반이던 오월에 나와 순천만의 첫 만남이 이루어졌다. 아이들에게 손이 많이 가던 때여서 친구들과 여행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하지만 나와 같은 처지인 친구는 일 년에 한두 번씩 먼 곳으로 여행을 다녔다. 그러고 나면 본인도 행복하고 식구들에게도 더 잘 할 수 있는 힘을 얻어 온다며 가끔 나를 설득시켰다. 내내 시큰둥하다가 그날은 왠지 친구를 따라가고 싶었다. 친구는 나를 전라남도에 있는 순천만 습지로 데리고 갔다.

끝이 쉬이 보이지 않는 푸른 갈대밭 들머리에 섰을 때였다. ‘우와!’ 하는 탄성이 앞을 다투며 터져 나왔다. 그리고는 이내 ‘이 넓은 초록 들판에 누렁이를 풀어두면 정말 좋아하겠다. 누렁이는 얼마나 자유로이 풀을 뜯어 먹을 수 있을까? 여기서 소꼴을 베며 금방 꼴망태에 가득 되겠다.’ 는 말이 불쑥 나와 버렸다. 그때까지도 나는 시골티를 벗지 못한 것이었다.

불현듯 유년시절 집에서 키웠던 누렁소 생각이 났다. 나는 중학교 마칠 때까지 시골에서 살았다. 그 당시만 해도 모두가 소에 매달려 살아야만 했다. 지금은 농사짓는 일마저 모두 기계화가 되어버린 시대라 일소들은 거의 사라졌지만, 나 어릴 적 시골에서는 집마다 소를 키웠다. 오빠가 없다 보니 집에서는 남자여자 일을 따로 구분해 두지 않았다.

나의 시골생활을 되돌아보았을 때 외양간을 치웠던 시간도 기억에 남는 열손가락 안에 꼽히는 일이다. 다른 자매들과 달리 내 덩치가 믿음직스러웠는지 부모님은 언니들보다 내게 남자들이 하는 힘쓰는 일을 더 많이 요구하셨다. 그 중에는 외양간을 치우는 일도 들어있었다. 어느 샌가 나도 모르게 외양간 치우는 일은 일도 아니었다. 단지 처음 외양간을 치울 때가 힘들었을 뿐이었다. 소똥을 묻히지 않으려 장화를 신었고 냄새를 맡지 않으려고 숨을 참아가면서 서툴고 어둔하게 치웠다.

그 당시에 나는 주로 외양간을 해질녘에 치웠다. 이를 테면 누렁이 이부자리를 봐주는 시간이었다. 먼저 오물이 질펀한 외양간 바닥을 말끔히 들어내고 난 뒤 바싹 마른 짚을 깔아주었다. 그러면서 누렁이가 폭신한 짚에 누워 밤새 편히 잠들기를 바랐다. 낮에는 누렁이를 몰고 들로 냇가로 풀을 먹이러 나가기도 했고 소꼴을 꼴망태기에 가득 채워 어깨에 시퍼런 멍이 들도록 메고도 왔다. 누렁이가 나를 경계하며 뒷발질해도 겁이 나지 않던 그때 그 시절이 순천만 습지에 와서 그만 풀려나오고 말았다.

순천만 습지는 언제 어느 때 찾아와도 감동이었다. 특히 해질녘 썰물 때 시간을 맞춰서 용산전망대에 올라보면 안다. S자 곡선 물길 위로 붉게 해가 넘어가는 모습이 얼마나 황홀한지를. 이런 광경을 보지 못하더라도 붉게 펼쳐진 칠면초를 보면 온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순천만 습지는 가만가만 두리번두리번 걸어야 한다. 오로지 정상을 향해 발등만 보고 걷는다면 순천만의 진정한 멋을 알지 못할 것이다. 서너 시간쯤 여유를 갖고 천천히 걷는 즐거움이 순천만의 매력이다. 그래야만 개펄에 뛰노는 짱뚱어와 게들을 자세히 볼 수 있다.

나는 아마도 도시 생활의 체질이 아닌지 늘 쫓기듯 산다.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마음이 긴장되고 바쁘다. 무엇이든지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다. 마음을 아무리 다잡아 보아도 자꾸만 어딘가로 나를 몰아세우며 쉴 틈을 주지 않고 등을 떠민다. 이런 나를 다 잡아 주는 것이 바로 여행이다. 언젠가부터 순천만은 일 년에 한 번은 찾는 내 맘의 쉼터가 되었다.

서부경남신문  newsnur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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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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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eobomin 2020-05-25 14:56:19

    순천만가면 이글이 떠오를 것 같아요. 해질녘 용산전망대에 올라보고 싶어요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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